본문 바로가기

작가의 마을 - 새 수필19

부모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이시은. 2016년 K팝스타 시즌 5에 나왔던 가수다. 특이하게도 매번 경연에서 떨어졌지만 매번 심사위원들의 구제, 혹은 방청객들의 압도적인 투표에 의해서 Top 4까지 진출했었던, 나에겐 그 깨끗한 고음으로 기억나는 그런 가수였다. 그녀가 첫 예선 무대에서 부른 "노래할께요"라는 제목의 노래에 잠시 빠져 있을 때 뜬금없이 심사위원이던 양현석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왜 나왔어요" "...... 제가 TV에도 나오고 잘 되면 그 모습을 보시고 부모님이 행복하실 것 같아서요" 89년 12월. 당시에는 학력고사 시대였다. 우선 가고 싶은 학교/학과에 지원을 한 후 학력고사 당일 그 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이 모두 모여 지원자들끼리 경쟁하는 그런 과정이었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 한 학년 정원이 300명밖에 되지.. 2022. 9. 5.
미국에서 산다는 것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아니면 화장실을 간다거나 아주 간단한 일을 한다거나 할 때면 유튜브를 틀어 놓고 보는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아이들도 공부/숙제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질 때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을 보며 너무 그런 것만 보는 거 아니야 싶다가도 나도 그러고 있는 모습에 어쩔 수 없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튜브는 일단 내가 관심있는 분야부터 찾아보기 시작하고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나 예능의 소위 짤, 에피소드 등을 찾아 보다가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구독하기도, 좋아하는 테크 리뷰, 역사 이야기등의 채널도 구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유튜브는 구독하는 내용 뿐만이 아니라 소위 알고리듬을 통해 연관된 것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2022. 8. 7.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방법 스무살 대학에 처음 들어 갔을 때 마냥 들떠있기만 했지 거기서 학부/석사/박사까지 만 10년을 살게 될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이로 따지자면 만 19살에 서울 집 떠나 포항으로 내려간 후 만 29살에 떠나 왔으니 정말 나의 20대는 그 학교 캠퍼스에서 다 보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고향이 서울이라기 보다는 포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20대 막바지,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늘 외로웠는데 1998년 6월 여름, 서울에 볼 일보러 갔다가 만난 인터넷 친구. 그리고 그해 12월, 그 친구와 결혼을 했다. 처음부터 미국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몇년간 미국 취업을 위해서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가 너무나 기회가 오지 않아 이제 포기하고 있었는데 2004년 여름.. 2022. 7. 10.
처음이라... 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만나게 되는, 조금은 큰 길 교차로가 중고등학생들 스쿨버스를 타는 장소이다. 중학생이 먼저 타고 가고 30분쯤 지나고 나서 고등학생들을 태우는 스쿨버스가 온다. 요즈음 둘째는 스쿨버스 대신 차로 데려다 주기 때문에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오는 시간이면 버스를 기다리는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다. 매일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다가 문뜩 눈에 띄이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한 여학생과 그 옆에 서 있는 그 아빠. 걸어오는 방향으로 봐서는 우리 집 골목 쪽인듯 한데 두 사람이 저 멀리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 왔다. 그 이야기가 아빠가 일방적으로 딸에게 하는 잔소리도 아닌 듯 딸아이도 듣고만 있는게 아니라 종종 아.. 2022. 4. 17.
불면증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아재가 되어 버린 나이이지만 그래도 한참 팔팔하던(?) 시기에, 학위를 마치고 사회 생활/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소위 X-세대, 신세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6시가 되면 칼퇴근 했고 내 사전에 야근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신입 사원 환영회 때 고참 선배님들이 술잔을 채워 주어도 전 잘 못 마십니다라고 하며 원샷을 거절하기도 했다. 사실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해서 거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선배님들이 우리 때는 식당 예약과 함께 바로 근처 모텔까지 같이 예약했다는 "나 때는 말이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무덤덤했다. 식당 옆 모텔을 같이 예약한 이유가 신입 사원들이 술에 떡이 되어서 집에 갈 수가 없으니 거기서 재워했기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놀라기도 했다... 2022. 3. 13.
만원의 행복 대학교 1학년 (1990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부모님께서 매월 15만원을 생활비로 보내 주셨다. 그 15만원에는 한달 식비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학생 식당 매끼 식사가 800원이었는데 보통 아침은 건너 뛰게 되니 점심과 저녁을 학생 식당에서 해결하게 된다. 그런데 보통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하게 되다 보니 아침은 건너 뛰어도 야식을 건너 뛸 수는 없게 된다. 학생 식당이 있는 지곡회관 1층, 그 때는 일반식당이라고 불리우던 외부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따로 이름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냥 식당 이름이 “일반식당”이었다. 낮에는 학교 외부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메뉴 중에 1000원짜리 돈가스가 있었다. 매번 학생식당에서 밥 먹는 것이 지겨.. 2022.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