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아재가 되어 버린 나이이지만 그래도 한참 팔팔하던(?) 시기에, 학위를 마치고 사회 생활/회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소위 X-세대, 신세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6시가 되면 칼퇴근 했고 내 사전에 야근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신입 사원 환영회 때 고참 선배님들이 술잔을 채워 주어도 전 잘 못 마십니다라고 하며 원샷을 거절하기도 했다. 사실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해서 거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선배님들이 우리 때는 식당 예약과 함께 바로 근처 모텔까지 같이 예약했다는 "나 때는 말이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무덤덤했다. 식당 옆 모텔을 같이 예약한 이유가 신입 사원들이 술에 떡이 되어서 집에 갈 수가 없으니 거기서 재워했기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놀라기도 했다.
그 때는 그렇게 만만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칼퇴근에 야근은 생각도 안 해 봤는데, 정작 미국에 와서 코비드 때문에 재택 근무가 길어지고 그 사에에 매니저로 승진도 하게 되면서 온갖 미팅에 참석해야만 하고 그 많은 미팅들이 베이징/타이완/서울과 같이 아시아 쪽 엔지니어들과 미팅이라 대부분 저녁 7시, 8시에 시작되어 끝나면 10시가 다 되는, 뜻하지 않은 야근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미팅이 많아지니 내가 따로 해야 할 일들은 쌓여가고 밤 10시에 미팅이 끝나더라도 한두어시간은 밀린 일들을 더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밀려 있는 일하느라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늦게 일과가 끝나니 그 핑게로 아침 출근, 노트북을 켜고 회사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이 출근인 재택 근무 출근이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밀린 일 때문에 늦게 자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종종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날 미쳐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게 단순 업무가 아닌 새 알고리듬이 필요하다거나 뭔가 코드를 많이 고쳐야 할 때, 디버깅을 하던 중에 끝마치지 못 했을 때, 결국 난 숙제를 잠자리까지 가져 가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불도 다 꺼진 방에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아도 자꾸만 머리 속에서는 미처 끝내지 못한 문제가 자꾸만 떠오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잠이 들지 못해 30분에서 1시간 넘게도 어둠 속에서 머리만 굴리며 누워 있기도 한다.
제일 불길한 상황은 그러다 잠시 들었고 꿈 속에서 어찌 어찌 디버깅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지 하고 아이디어가 딱 하고 떠오를 때, 그래서 자다가 잠이 확 깼는데 뭔가 해결한 것 같은데 그게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난 밤새도록 꿈 속에서 디버깅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직업병이라고 해야겠다.
나야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게 잠자리에 들기도 하지만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나 중학생이 되는 막내는 저녁 먹고 태권도를 다녀 오거나 혹은 저녁 먹기 전까지 내내 놀다가 늦게 숙제를 시작하고 어떨 땐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숙제를 마칠 때가 있다. 애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숙제를 하고 있으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더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는데 애들이 숙제 마치고 2층 자기네 방으로 올라 간 후 나도 마무리 하고 자기 전에 2층에 올라가 보면 올라 간지 5분, 10분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자기들 침대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금방 잠 들어 버린 애들의 모습을 보면서 얘네들은 정말 근심걱정 없이 정말 쉽게 잠이 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난 왜 그렇게 잠자리에까지 고민과 문제거리를 들고 들어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돌이켜 보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이야기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정말 많은 사람이 살면서 걱정 좀 덜하며 살 걸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별의별 일이 다 생기지만 어떨 때는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별의별 시나리오를 써 가며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지내 온 것 같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생은 그런 시나리오대로 살아지지도 않고 정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던, 그리고 정작 그렇게 일이 일어나더라도 고민했던 것들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던 순간들도 꽤나 많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한 때 X-세대라고 불리우면서 거침없었던 20대, 30대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잘 될거야라는 기대도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장적 될 때로 되라가 아닌 쓸떼 없이 이거가 아니면 어떻하지 저렇게 되면 어떻하지라는 걱정과 대책없는 낙관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잘 될거고 저렇게 하면 될꺼야라는 자신감이 더 많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해 본다.
여전히 난 잠자리에 들면서 마치지 못한 일들, 디버깅 해야 할 것들을 꿈나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때문에 잠 못들기 보다는 잘 안되는데 그럼 꿈 속에서라도 해결해 볼까라는 배짱으로 잠자리에 들어보련다.
안되면.... 그건 안 되는거겠지 뭐....
그렇지?
......
'작가의 마을 - 새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방법 (0) | 2022.07.10 |
---|---|
처음이라... (0) | 2022.04.17 |
만원의 행복 (0) | 2022.02.22 |
K팝스타 vs 히든싱어 (0) | 2022.02.09 |
고등학생의 추억 (0) | 2022.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