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요즈음처럼 하늘이 참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여행이라든가 피크닉을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벌써 날이 싸늘해지기 시작해서 조금은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고 나서 78계단을 오르며
따뜻한 햇살을 어깨에 가뜩 지는 때라면 웬지 그런 충동에 휩싸이고는 한다.
어릴 때는 무척이나 밖에 나가고 싶어했다. 어린이 날이라든가 혹은 휴일이면
항상 텔레비전에서는 떠들곤 했지, 소풍 나온 가족들이.... 하면서.. 후후..
하지만 항상 경제적(?)이셨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휴일날
한번도 밖으로 야유회를 나간 적이 없었다.
그때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적어 볼까 한다.
아마도 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쯤이라고 생각을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그때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날도 무척이나 날씨가 맑은 휴일이었다.
평소에 전혀 나들이라고는 없었던 아버지의 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 날도 역시 풀이 죽은 채, 방 안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나들이를 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한테 바로 쪼로록 달려 가서 '아버지, 우리도
오늘 밖에 놀러 나가요...'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내게 있어서
우리 아버지란 분은 하늘 아래에서 할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무서운
분이셨으니까 말이다. (음,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 번 적도록 해 보자.) 아마도 그건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라고는 하나뿐이셨던 당신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분으로, 그리고 항상 위엄이 있으시도록 내 기억속에 새겨
주신 분이 바로 할머니셨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날 내가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쭈삣쭈삣 안방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취한 한가지 방법은 .... 후후...
점심을 먹고 나서 나는 건너방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걸어
잠그고 결연의 의지를 굳건히 한 다음, 종이에 아버지께 보낼 친서(?)를
작성했다.
"아버지, (아니지, 그 때는 아빠라고 썼을 꺼다.. ^_^ ) 우리도 다른 집처럼
오늘 놀러 나가요... 어쩌고 저쩌고..."
대강 이런 내용이 담긴 친서를 적었다. 누런 갱지에 연필심에 촉촉히
침을 묻혀 가며 말이다. 후후.. 국민학교 2학년짜리가... :)
그걸 전달하기 위해 나는 아직도 코흘리개였던 남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그 쪽지를 전해 주며 아버지께 전하라고 했다. 하하.. 아주 굳은
각오를 지닌 채로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피터는 이 방에서 문 걸어 잠그고, 단식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동생은 나의 친서를 들고 안방으로 건너 갔다.
하하... 이런... 나는 그 어린 마음에 그것이 통할 줄 알았다.
얼마나 어린 것이 휴일날 놀러 나가고 싶으면 이렇게 까지 할까...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평소 아버지로써의 면모를 보여 주시지 못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동안 참 불충실했구나...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그래 결심했어! 오늘은 모처럼 나들이를 나가는 거야... 하고
나오실 줄 알았다.. :P
하지만 이것이 웬 변고인고...
조금 있다가 동생이 답을 가지고 왔다.
"형, 아빠가 이거 보시고, 여기 맞춤법 틀린거 있데, 그거 고쳐 오면
형 소원 들어 주시겠데...."
꽈당!!!!!
이건 전혀 예상도 못한 반칙(?)이었다. 대체 아들이 놀러 나가자고 분연한
마음으로 적은 쪽지를 보시고 하신다는 말씀이 '맞춤법' 틀렸다는 소리라니!!
나는 동생의 손에 다시 들려온 나의 친서를 냅다 뺏어서 다시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틀린 곳이 없었다. 생각해 보라, 대체 국민학교
2학년 학생이 암만 눈에 핏줄이 맺히도록 들여다 봐야, 자기가 맞다고 쓴
글에 국문과 나오시고 신문사에서 편집일을 보시는 아버지가 틀렸다고
한 부분이 나오겠는가!! 으~~~ 원통한지고.. 내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흑흑... 나는 결국 원통한 가슴을 쥐어 잡고 2시간만에 눈이 충혈되어서
(그래도 기어이 틀린 곳 찾아 보겠다고...)
내 손으로 방문을 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
그 후 난 다시는 아버지에게 뭔가 이야기 할 때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기억이다. 아버지도 그걸 아직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아마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실지 모른다.
후후... 언젠가 이 글을 읽으시고는 다시 한번 나에게 물으실지 모르겠다.
"피터야, 언제 이런 일이 있었니??"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그 다음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말씀이다.
"잘 읽었다. 그런데 틀린 부분은 여기 교정 봐 놨으니 고치거라..." *P
언젠가 이제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나들이를 갈 때가 오면
파란 잔디밭에 앉아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다.
그 때는 모두 앉아 즐겁게 웃을 수 있겠지?
불어 오는 싸늘한 바람은 우리 가족 모두의 따뜻한 사랑으로 막아 버리면서
말이다.
후후... 절대로 이 이야기를 글로 드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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