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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뒷문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피터가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살던 집은 골목 코너에 있는 집이었다.

무척 옛날에 지은 집이라서, 그리고 어릴 때 살던 집이라서 그런지

가끔씩 아스라히 그 집이 떠 오르기도 하고 추억들이 생각나는 집이기도

하다. 우선 집안 난방을 요즈음 같이 보일러가 아니라 연탄을 아궁이에

집어 넣어 하던 생각이 난다. 그 연탄 아궁이가 있던 곳은 지하실이었는데

무척 겁이 많았던 피터는 절대로 혼자 지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후후.. 한번은 어머니와 같이 들어갔다가 어머니 혼자 나가셔서

그 안에서 앙앙~~ 울던 생각이 난다. :)


그 집을 생각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뒷문이다. 아마 집에 뒷문이 있는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작은 철문이었는데 빗장만 있던 문이었다. 그 문을 구지 만든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잘 모르겠다. 왜 그 문이 필요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에게는 참 요긴한 문이었다. 후후..

저녁 먹고 나서 어머니 몰래 밖에 나가 놀고 싶을 때 그 뒷문을 통해서

밖으로 도망가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

물론 몰래 들어 올 때도 그 문은 참 요긴했다.

그 담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많이 장난도 쳤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먼저 집으로 뛰어 가서 그 뒷문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궈 버리는 거다. 나는 밖에서 열어 달라고 징징(?) 떼를 쓰고. 후후..

하지만 내가 5학년쯤이 되면서는 그 뒷문이 별로 소용이 없어지긴 했다.

그때는 이미 훌쩍 커 버려서 충분히 내 힘으로도 담을 넘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구지 동생보다 빨리 가려고 마구 달려갈 필요도 없었고

괜히 동생 앞에서 어른스러워 진다고 먼저 저 만치 뛰어가는 동생을 보며

혀를 쯧쯧 차던 생각도 난다.   :P


그 뒷문은 무슨 옛날 사랑 이야기에서나 나옴직한 그런 문이었다.

큰 길이 아닌 작은 골목을 향해 난 길.

눈이 오는 어느 겨울 날,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몰래 찾아온

소년. 그리고 엄하신 아버지 몰래 뒷문으로 소년을 만나러 나온 소녀.

숨을 죽이며 속닥이다가 갑자기 부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들... 후후...

아마도 언젠가 그 골목 그 문 앞에서 그런 장면이 일어나지나 않을까하는

기대해 본다. 


나에게 있어서 그 문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의 답답함이, 그리고

가끔씩 죄어드는 이름모를 갑갑함이 있을 때마다 나를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가게 하여 주는 그런 문으로써 말이다. 물론 집에서 엄청 혼이 나거나

아니면 할아버지의 엄하신 목소리에 놀라 실제로 도망가보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그런 뒷문이 하나 있다는 것이 참 든든했다.

문뜩 그 집의 뒷문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나도 지금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느낌이 드나 보다. 가끔씩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환경에 너무 지쳐서

아무도 몰래 혼자 새로운 세상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은 그런 충동에

말이다. 



기름칠을 하지 않아서 삐걱거리던 문이었지만, 오늘 새삼 그 뒷문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나만의 세상으로 뛰어 나가던

피터의 어린 뒷모습도 함께 말이다.

어쩌면 웬지 그렇게 어디론가 피하고 싶은 문이 필요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디로 도망가지??? :)




PS: 추억은 가끔씩 사람을 늙게 만든다. 
    어느덧 나도 남은 날의 즐거움보다는 지나간 날의 추억들을
    기억하려는 것을 보니 늙어가나 보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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