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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넌 날 어떻게 생각해?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일반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할지 모르지만 남자들은

가끔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 할 때 이성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는 한다. 구지 자기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

까지도 말이다. 누구는 누구와 사귄데 라든지 혹은 누구는 맨날

서울에 전화 한다더라 같은 이야기들이 가끔씩 오르내리는 반찬 거리(?)이다.

나와 내 친구도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거나 혹은 기숙사 방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잡담을 나눌 때에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서로가 서로의 카운셀러가 되어 서로의 이야기, 혹은 고민을 들어 

주고 충고(?)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 날도 내 방에서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그 친구의 여자 친구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 한 아가씨를 사귀는 중인데 (사귄다는 표현이

참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둘이 친구는 아니고 그렇다고 연인은 아닌

그런 묘한 상황을 일컫는 말로 적당할까? 글쎄다... 난 잘 모르겠다.)

앞으로 그 아가씨와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스러운 모양이다.

고민하는 첫번째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아가씨가 지금 유학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계속 사귀고 싶은 모양이고 더 잘 되면 결혼도

생각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가씨가 유학을 준비 하고 또 

집에서도 유학을 보내려는 편이여서 지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난감한 모양이었다. 계속 잘 지내다가 뭔가 좀 되어 갈까 싶으면

아가씨는 그만 훌쩍 유학을 떠나 버리게 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가씨에게 유학을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인가 보다. 그래서 고민아닌 고민에 속만 썩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고민거리 또한 묘한데 그건 그 아가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루는 연락이 없어서 연락 좀 하라고 삐삐를

친 모양이었다. 이 녀석도 고단수(?)에 속하는 친구라서 그런지

다음과 같은 삐삐 음성을 남겼단다. 우선 삐삐를 쳐서 음성에 그 아가씨가

좋아 하는 노래를 불렀단다. 그리고 마지막 연장이 끝나갈 무렵

노래의 마지막을 듣고 싶으면 자기에게 전화 하라고 그랬다나...

그럼 노래의 끝까지 들려 주겠다고 말이다. 

*!* 암만 생각해도 고단수인 것 같다. 나도 좀 배워야 겠다. ^^; *!*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하루가 다 되도록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만 그 친구가 사 놓은 맥주를 함께 마셔 주어야 했다.

난 맥주를 마시면서 제발 내일은 그 아가씨가 연락 좀 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야 내 몸도 술에 절어 버리지 않지... ^^;

암튼 다음 날 낮에 그 아가씨는 전화를 했고 전화를 늦게 한 이유는

삐삐가 수신이 안 되어서 나중에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와 맥주를 마시면서 나누던 이야기 중에 한 대목이 생각이 난다.

그 친구가 연락이 오지 않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어쩌면 누군가를 사귀면서 흔히 하는 말 중에 하나일지도 모르는

한 마디.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말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다.

때로는 자신도 자기의 기분과 느낌이 어떤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의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특히나 사람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 말이다. 

"너 스스로 자신을 가져. 아마 그 아이도 똑같은 생각을 할지 몰라.

넌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말이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뿐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정의하기도 곤란하고 색깔을 칠하기도 곤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은 불문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사랑하다고 느끼면 그 느낌을 강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자기 스스로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상대방이 그 신뢰를

믿을 수 있을까? 자신이 무너지지 않고 널 사랑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방도 그런 어려운 질문의 미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지나

않을까.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넌 날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만큼 상대를 의심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어떤지 모르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랑한다는 말을 들음으로써 자신도 사랑한다고 자위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유치한 자기 최면이 아닐지...


사랑을 한다면 믿음부터 있어야 겠다.

'난 너를 사랑해..' 라고.




내 친구? 글쎄, 아직도 그 친구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거 같다. :)

하지만 술수하나는 고단수다. 음냐... 배워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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