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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여동생은 나와 8살 차이가 난다. 

보통 형제지간의 나이 차이에 비하면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디가서 여동생이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모두 놀라니까

말이다. 

여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여동생은 무척이나

나를 따르는 편이다. 보통 집에 가면 여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쇼핑을 나가기도 했고, 또한 어떨 때는 내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고등학생 관람불가인 영화도 보여 주고는 했다.

후후.. 그런 경험들이 자기 또래의 친구들에겐 자랑거리였는지

가끔 집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친구들에게 자랑한 이야기도

들려 준다. :)



지난 주말엔 여러 가지로 일이 겹쳐서 서울에 다녀 올 수가 있었다.

일이 겹쳤다는 것이 해야 할 일이 겹쳤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쉴 수 밖에 없도록 일이 겹쳤다는 뜻이다. 토요일에는 내가 있는 4층을

대청소 한다고 해서 하루 종일 사용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일요일에는

정전으로 머신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황금(?)같은 연휴였던

것이다. :)

내가 서울에 가서 하는 일은 대체로 노는 일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또한 키즈 모임 같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도

참석하면서 말이다. 키즈 모임 같은 경우는 거의 새로운 얼굴들을

보기 때문에 될수록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글로만 만나는 것도

좋지만 때론 정말 어떻게 생겼나 확인해 보아야 내가 강아지와

대화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번 주말도 거의 키즈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12시전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는 시내에서 잘 놀았지만 문제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여동생이었다.

오랜만에 오빠 얼굴 본다고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매일 12시 넘어 들어 갔던 나는 나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

버린 여동생의 얼굴 밖에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동생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여동생이 학교 가기 전에 어머니께 한마디 했다고 한다.

"오빠 장가 가겠다는데 내가 좀 참아야지, 뭐..."

하하.. 여동생은 내가 맨날 누구와 데이트 하느라고 늦게 들어 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난 매일 어머니께 영양가 없는 애들만 만난다고

구박 받는 참이었는데... :P


연이은 12시 이후 귀가로 난 주말을 서울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동생 얼굴을 딱 15분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것도 내가 포항으로

다시 내려 오기 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 났을 때 말이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여동생 방으로 가니 여동생은 이불을 폭 뒤집어

쓰고 있었다. 삐진 모양이었다.

"오빠 간다?"

"흥, 가던 말던...."  <- 완전히 삐진 말투.

아이고... 정말 내가 넘 심했나 보다.

아무리 내가 바람났기로서니 내 얼굴 보겠다고 한 여동생을 그렇게

삐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

나는 영화 포스터 한 장으로 여동생을 겨우 달랠수 있었다.

그래도 집을 나서며 잘 가라는 말을 전해 주는 여동생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요즈음 여동생이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성적이 생각보다

잘 오르지도 않고 더구나 지난 번 시험에서는 많이 실수를 해서

성적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머니께 들으니 시험 성적이 안 좋다며

대학 못 가면 어떻하냐며 울기도 했다는데...



난 늘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데 그 인상이란

처음의 몇가지로 이루어지고 또한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왕에 그 사람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길 꺼라면 좋은 사람으로

남기고 싶다. 늘 편하고 좋은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때론 너무 남이라는 것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 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다. 

내가 만나는 키즈 사람들, 아니 다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바라면서 내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정작 잘 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늘 나를 의지할 곳으로 믿고 있는 여동생에게 작은 실망을 안겨 준 것을

보면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나는 너무 먼 곳으로만 눈을 돌리려

했는지 모르겠다.

가장 작은 일을 잘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큰 일을 잘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듯이 이제부터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부터

사랑하기 시작해야 겠다. 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혜정아, 미안, 앞으로는 좀 더 좋은 오빠가 되도록 할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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