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우리는 실험실뿐만이 아니라 연구실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실험실은 그야말로 실험과 프로그래밍을 위한 머신들만 있는 방이고
연구실은 자신의 공부나 잡일을 위한 책상만이 놓여 있는 방을 말한다.
그 연구실 중앙 나의 책상위에는 작은 인형 세개가 놓여있다. 크기는
기껏해야 엄지손가락 첫째마디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인형이다. 쇠로
주형을 떠서 만든 것이지 싶다. 그 인형은 작년에, 내가 마음속으로 관심을
두고 있던 후배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하나는 기도하는
모습, 하나는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리고 또 하나는 두팔에 인형을
안은 작은 소녀의 모습...
그 후배가 나에게 그것을 건네주며 적어 넣었던 메모의 일부분이 생각이
난다.
[ 인형이 선배님을 닮았군요... ]
한동안은 그 세개의 인형중에서 어떤 것이 나를 닮았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글을 읽는 것? 아니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것??
그런 후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나의 그런 감정을
잘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라는 아이는 원래 그런 것을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이래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때가 참으로 많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이렇게 할까 아니면 저렇게 할까 고민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니까... 대책없는 마음 고생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번도
그 후배에게 좋은 소리를 못 해 주었다. 그저 만나면 반가운 선배로
그리고 따뜻한 선배로만 기억되고 있는 듯 싶다.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나의 기대와는 달리 후배는 나에게 특별히
다른 감정을 가지는 것 같지 않다. 나는 그 후배에게는 항상 좋은
선배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다른 친구와 더 가까운 사이인것
처럼 보인다. 속으로만 앓고 있던 나로써는 그런 후배의 모습을 보며
가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뒤따라 몰려드는 깊은 우울함...
나는 참으로 그게 싫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에 빠지는 것이...
괜히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해지고 아무 의욕도 안 나고...
그래서일까? 요즈음은 그다지 그 후배에게 연락을 자주 안 하고 있다.
그저 잊혀져 가는 모습으로....
며칠전 나의 생일때, 다른 사람들의 축하속에서 후배의 축하 인사는
없었다.. 물론 내가 실험실에만 있었으니 만날수도 없었거니와..
아마도 그 후배는 그날이 나의 생일이었는지 조차 기억을 못하는 듯 싶다.
그 후배에게 있어서 나도 똑같이 잊혀져 가고 있는건지... 마치 그 동화속의
한마리의 벌처럼...
사실 축하받고 싶었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오늘, 그 인형을 다시 눈여겨 기회가 있었다. 무심코 그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을때나 지나쳐 다닐때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오던
그 인형들을 말이다. 의자에 깊숙히 파묻혀 그 인형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그 인형중 하나의 얼굴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전에, 아마 이것이 나를 닮은 인형일꺼야... 하고
생각하던 그 인형의 얼굴에서...
그렇게 나는... 내게 남아있던 또 하나의 추억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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