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아무런 약속도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때도 있고
또한 아무런 약속도 없이 누군가에게서 전화를 받고 싶을때가 있다.
그래서 일까?
요즈음은 괜히 걸려오는 전화에 귀가 송끗해지고 가끔씩 내 수첩을
뒤지게 되니 말이다.
전화가 울리게 되면 난 받기전에 잠시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 온 전화일까? 나를 찾을까, 아니면 우리 실험실의 다른 사람을
바꿔 달랠까? 때론 그 전화가 교수님 전화이면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전화받기전 약 5초동안의 짧은 시간을 그렇게 즐기는 듯하다.
우리 실험실은 나빼고 다들 여자친구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전화가
그 선배들을 찾는 전화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녁 10시쯤되면
우리실험실의 전화는 누가 쓰느냐에 대한 야릇한 암투가 시작되고
한사람의 전화가 길어지면 다른 사람은 눈치를 주게 된다.
선배는 선배대로 야 빨리 끊어 전화오기로 되어 있단 말이야...
하는 은근한 압력을 주게 된다. 또 실험실 전화가 계속 사용중이면
다른 연구실(책상만 있는 방이 따로 있음) 전화도 어김없이 다른 사람차지가
된다. 그나마 전화가 모자르면 Sun Room(우리과 공용 Sun Workstation이
모여져 있는 방)전화까지 훔쳐다 쓴다.
생각하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렇게도 전화통화를 해야하나....
그러고 보면 난 조금은 편한 건가??? 집 아니면 별로 전화 올때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번은 우리 실험실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저녁 늦게 시험을 치고 오니 선배형이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었다는 것이다.
그것두 여자한테서... 그것을 조용히 가르켜주면 될것을 칠판에 대문짝
만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분명히 나에게 전화할 사람은
없는데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뜨는 것이었다....
대체 누굴까???
얼마간 흥분해 볼 겨를도 없이 그것은 출판사에서 책사라고 온 전화였고
난 역시 그럼 그렇지 하고 길게 한숨을 내 쉴수 밖에....
때론 친구들이 전화를 한다. 분명히 주민등록상에는 여자이지만
내겐 아무런 다른 뜻이 없는 친구들이.. 내가 직접 받으면 별 문제 없지만
또 선배가 받으면 난리를 피우고 하루 종일 누군지 밝혀질때까지
난 놀림감(?)이 되곤 한다.
"피터 어디 숨겨논 사람있는거 아니야???"
나도 때로는 누군가 좀 숨겨둘걸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느낌이 다르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잠시 대화가
끊어져도 괜찮은데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 잠시 이야기가 멈추면
무지 어색하다. 적어도 난 그렇다. 수화기를 멍하니 들고 앉아 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누군가 저 건너편에서 나랑 같은 폼으로 앉아 있는 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답답해 진다. 그래서 일까?? 대체로 난
전화를 하면 말이 많아지고 수다스러워지니까... 이런 어색함을 피할려고
난 전화를 하기전에 할 말들을 생각한다. 이런 말, 저런 말....
그래서 특별히 할말이 없을때는 괜히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그런
우매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
며칠전 몹시도 우울해서 친구에게 무심코 다이얼을 돌렸다가(이런 표현은
아마 전자식 전화기가 나온 다음 부터는 쓸수가 없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화 건다는 표현을 아직도 이렇게 쓰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몇마디 나누지도 않고 멍하니 수화기만 들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나야 물론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걸었지만 오히려 전화를 끊고 나서
더 답답해지고 우울해졌다... 괜히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도 병인가 보다.
(아마 내가 미팅후에 맘에 들었던 사람도 다시 만나지 못했던 이유가
이것때문이 아닐까? 전화 거는데 공포증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전화를 걸기 보다는 전화를 받기를 좋아하고 전화소리에
민감해 지나보다.. 확실히 병인것 같다.
요즈음 다시 그 병이 도졌다. 전화를 기다리는 것.
어디서고 전화올때는 없지만 그냥 웬지 전화벨이 울리면 꼭 나한테
온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이상야릇한 설래임...
아마 가을이라서 그런가?? 나는 가을을 참 잘 타는데....
누구 내게 오늘 전화해 줄 사람 없나요?
'포스테크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가 오는 날이면... (0) | 2021.04.19 |
---|---|
슬픈 얼굴 (0) | 2021.04.19 |
우리 교수님 (0) | 2021.04.19 |
열 아들보다 딸 하나가... (0) | 2021.04.19 |
혼자 눈뜨는 아침 (0) | 2021.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