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마지막의 친구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나는 옛친구들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많이 언급한다고 한다. 아마도 가장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 아무런 사심없이 만나서 어울리던 친구들이 커서도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게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들이 그런 친구들이다.
1학년 때는 전공과는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을 골고루 반으로 나누어서 편성했더랬다. 1학년 수업 과정에는 전공 수업이 하나도 없었고 영어, 수학, 물리, 화학, 체육과 같은 교양 수업만 듣기 때문에 같은 반에 속한 친구들은 전부 같은 수업을 듣게 된다. 학부 신입생 300명 전원이 기숙사 생활, 하루 세끼를 모두 학생 식당에서 해결하다 보니 두어달만 지나도 학과에 상관없이 누가 누군지 금방 다 알게 된다. 게다가 같은 반에 편성된 친구들은 1년 내내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숙제를 하고,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같은 시간에 밥 먹으러 학생 식당으로 향하게 되니 반 친구들과는 더더욱 친해지게 된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부터인가 나와 화학과 남학생, 그리고 생명과 여학생 둘, 이렇게 넷이서 스터디 그룹처럼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떻게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2학년부터 전공 수업을 듣게 되면서 수업시간이 달라져 자연스럽게 함께 할 시간도 적어지긴 했지만 도서관 늘 같은 자리에서 공부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그 긴 우정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인연은 35년이 지난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우리 4명이서 시작된 모임이었지만 이후에 한두사람 늘어나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은 모두 7명이 되었다. 졸업하고 각자 사회로 흩어지면서 자주 만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계속 연락은 하고 지내서 그 때는 이메일로,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나서는 카카오톡으로 생일 때만 되면 서로 생일 축하메세지 보내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4년의 학부 시절 동안은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는게 큰 행사였는데 아무리 바빠도 서로의 생일이 다가 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서 같이 선물 준비하고 밥 먹으러 다니곤 했다. 4학년이 되어 졸업 준비를 할 때에도, 대학원에 진학해서 실험실에서 바쁜 일에 치여도 서로의 생일 때가 다가 오면 미리 약속을 정하고 어떤 선물을 할지 어디가서 같이 밥 먹을지 고민하면서 바쁘고 힘든 시간들을 잘 버텨낸 것 같다.
매년 받았던 생일 선물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기억이 맞다면 2학년 때 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생일 선물인데 다름 아니라 오리털 이불.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겠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어쩌면 그래서 가능한 생일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오리털 이불은 결혼해서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까지도 잘 썼으니 정말 멋진 선물이었다.
같은 친구 그룹에 20대 남녀가 모여 있으니 그 안에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할 일일거다. 물론 초기에 잠깐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오랫동안 같이 어울려지내다 보니 오히려 감정이 안 생기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혹시라도 이 중에 친구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애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1년쯤 같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실제 사귀지는 않았더라도 아.. 이 친구는 이성적으로는 뭔가 나랑 안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2-3학년 때쯤 되니 그냥 애들은 친구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오죽하면 내가 좋아하게된 다른 후배의 상담을 이 친구들에게 했을까.
그런 20대를 함께 보내서 그런지 이 친구들과 카카오톡이나 혹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때 20대로 돌아 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타임머신 같은 느낌이다.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다. 구지 핑게를 대자면 5월 말 둘째 고등학교 졸업식 끝나자마다 가족들 모두 한국으로 2주간 휴가를 갔었더랬고 바로 이어서 1주간 한국/베이징 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휴가와 출장에서 돌아오고 나니 집안 일 밀린 것들도 많았고 회사에서도 휴가/출장 간 사이 내 팀으로 새로운 인턴과 새로운 팀원 한사람이 일을 시작한지라 정신이 없었다. 핑게는 핑게다.
원래 한국/베이징 출장은 예정에 없었다. 2주간의 한국 휴가는 2월경에 미리 계획을 잡았었다. 가족들 모두 한국에 방문했던 것이 벌써 7년 전이라 둘째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가 아니라면 한동안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5월초쯤 매니저가 6월 둘째 주에 베이징에서 작년과 같은 그룹 미팅이 있다고 알려왔다. 그 일정은 2주간의 가족 휴가가 끝나고 바로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2주후 미국으로 돌아오고 나만 귀국 항공편을 일주일 미루게 되었다. 휴가 동안은 가족들과 함께 계속 다니게 되어 이 친구들을 따로 만날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다만 종종 베이징 출장이 있을 것 같아 다음번 올 때 따로 보면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출장 일정이 생겨 이틀 더 서울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캐나다 사는 친구가 마침 그 때 맞추어 자기도 가족 휴가를 온다는 것이다.
Avengers, Assemble !!!!
늘 카톡으로 우리 언제 다 같이 볼 수 있을까라고 말만 하다가 정말 다같이 모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서로 다같이 만날 수 있는 날을 조율하면서 나온 말이 이번에 다 안 모이면 환갑 전에는 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 그렇게 해서 지난 6월 7일 일요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 식당에서 이 7명이 다같이 모였다. 무려 20년만에 다시 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 20년 동안 카톡과 전화 통화만 몇번 하던 내 20대 친구와 말이다. 나는 가족들을 공항에서 보낸 후 약속 장소로 가야 해서 조금 늦게 합류하기로 했다. 만나는 시간을 미루지 않은 건 대전에서 사는 친구도 올라와 막차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나 하나 조금 늦는 걸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 장소인 식당에 들어 갔을 때 이미 다른 친구들은 모두 모여 식사 중이었고 그렇게 나는 식당의 문턱을 넘는 순간 90년대의 20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도서관 2층 맨 우측 구석 자리
포스팅의 제목을 "도서관 2층 맨 구석자리"라고 지은 이유는 처음 친구 사이를 맺기 시작한 우리 네명이 도서관 2층 맨 우측 창가에 있던 그 테이블을 1년, 아니 2년 넘게 붙박이처럼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1학년이던 90년에 처음으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부 차게 되었고 우리가 학부 4회 졸업생이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도서관의 자리는 너무나 넉넉했다. 언제 어느 시간에 가더라도 2층부터 5층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도서관에는 자리가 있었고 그렇다보니 3월 한달 정도 지나고 나면 대부분 자기가 좋아 하는 자리에 붙박이가 된다. 그래서 한학년쯤 지나고 나면 누구를 찾으려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서로 다 아는 정도가 된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다들 순수(?)했다. 지금처럼 비싼 스마트폰, 랩탑, 태블릿 등이 있을리 만무하고 삐삐라고 불리우는 페이져 마저 내가 대학원생이 된 95년에나 하나씩 가지게 될 정도였으니 수업에 쓰이는 원서를 제외하고 나면 서로가 가진 가장 비싼 기기는 공학용 계산기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중 대부분은 붙박이 자리에 모든 걸 그대로 두고 다니기 일상이었다. 저녁 먹고 올라와 숙제/과제 하느라 책이랑 연습장, 계산기 옆에 두고 공부하다가 밤에 그대로 두고 몸만 기숙사에 자러 내려가는 셈이었다. 그래도 누가 뭐 잊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했다. 분실이 걱정되는 친구은 책이랑 가방은 그대로 두고 공학 계산기만 들고 기숙사로 내려가기도 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부생 전부가 찬 다음에도 이렇게 도서관 자리가 넉넉했으니 그 전에는 더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 최초의 캠퍼스 커플로 알려진 88학번 선배가 있었는데 그 둘은 도서관에서 숨바꼭질하며 연애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그 커플 중 여자 선배가 동아리 선배여서 그 선배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도서관 테이블에는 모두 6명이 앉을 수 있었다. 우리 네명이 일단 붙박이로 사용하고 나면 두 자리가 남는다. 종종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 남은 자리를 쓰고는 했는데 워낙 우리 넷이 몰려 다니며 중간 중간 수다도 떨고 하느라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면 그 자리는 또 빈자리로 남곤 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나서는 그 테이블을 우리 넷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우리 네명은 늘 같이 다녀서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에게도 꽤나 유명했던 그룹으로 알려졌던 걸로 안다. 도서관 2층 우측 구석자리에 가 보면 늘 우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서로 떠드는 소리가 커지면 사서가 와서 주의를 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또 너네니..."라는 표정을 읽을 수도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한 건 아니다. 기숙사 방에서, 혹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 어디서 공부하는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우리들끼리 어디서 공부하는지에 따라 부르던 별칭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관학파",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사학파",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실학파"라고 불렀다.
의외로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꽤 되었는데 강의실만 잘 찾으면 넓은 공간에 혼자 혹은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만의 공간을 만들 수도 있었고 우리처럼 시끄럽게 군다고 사서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어느 선배가 그렇게 조용한 강의실을 찾다가 공학 2동 102호, 가장 큰 강의실로 경사진 구조로 이루어진 강의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생각보다는 꽤나 많은 학생들이 서로 간격을 잘 맞추고 조용히 앉아 자기 숙제/과제를 열심히 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사람은 많지만 조용하고 분위기가 좋아 맨 뒷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이랑 과제물이랑 꺼내 놓고 숙제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 30분쯤 지났을까. 맨 앞에 앉은 이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 보면서 강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단다.
"자, 뒤에서부터 답안지 걷어 오세요....."
적당한 간격으로 나누어 앉아 조용히 뭔가 하던건 시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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