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정 받은 기숙사 2동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학교에 내려 왔을 때 이미 방배정은 끝난 상황이었다. 내가 배정 받은 첫 기숙사 방은 2동 3층, 휴게실 바로 옆 방이었다. 1동부터 4동이 제일 처음 만들어진 기숙사라서 상태가 제일 바쁜 축에 속했지만 반면에 좋은 점도 있었다. 그 이후에 지어진 기숙사 방들은 모두 안으로 깊게 이어져 좌우로 옷장, 책상, 침대가 놓여 있는 구조라면 1동에서 4동까지는 옆으로 넓은 방들이 있어 들어가자마자 책상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고 그 좌우로 옷장, 침대가 있어 자연스럽게 공간을 좌우로 분류하는 layout이 있었다. 이건 2인 1실이긴 하지만 방 중앙에 책상이 좌우를 나누는 형태가 마치 1인식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학생식당 입구를 기준으로 가장 멀리 위치한 기숙사라서 1년동안 꽤나 고생한 기억이 난다. 반면에 주말에 학교로 놀러 오는 포항시내 사람들이라든가 그 외의 번잡함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기숙사 방에 있으면 고요함 그 자체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바로 뒷쪽이 산새라서 창문을 열어 두고 있으면 아침에 새소리라 들리던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2동 바로 맞은 편이 1동인데 입구 위치로 보면 2동이 더 안쪽에 위치했다. 언젠가 한번 꿩이 1동 기숙사 휴게실 안으로 유리를 부수고 들어와 난리가 났던 기억도 난다.
자료를 찾기 위해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 보니 네이버 블로그에 리모델링 된 요즈음의 기숙사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블로그를 하나 발견했다. 정말 내가 살던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니 벌써 35년도 더 지났으니 달라져야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의 내용을 보니 기숙사비 월 15만원이라고 한다. 졸업하고 나서 이미 그 정도의 기숙사비를 낸다고 들은 것 같다. 내가 다닐 때는 물론 기숙사비가 없었다. 전부 무료였다.
빨래 해 보기
위 블로그 내용에 세탁기와 건조기 이야기도 나온다. 빨래는 생활하는데 필수이니 그 때도 당연히 화장실/세면대 있는 곳에 따로 세탁실이 있었다. 기억나는 건 통돌이 스타일의 금성 백조 세탁기였다는 것이고 벽에 건조기가 있었다. 지금은 건조기가 많이 보급되어 있어 익숙하지만 당시 90년대만 하더라도 건조기를 아는 사람들이 있을리 없었다. 건조기가 설치된 이유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교수님들이 미국에서 사용하셨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나도 2004년 미국에 오고 나서야 처음 건조기를 써 보았으니 한국에서, 그것도 90년 대에는 익숙한 물건은 전혀 아니었다.
먼저 써 본 선배들이 건조기는 절대 쓰지 말라고 조언해 주곤 했는데 그 이유는 건조기에 빨래를 말리고 나면 정전기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미국에 와서 살면서 건조기를 쓰며 알게 되었다. Dryer sheet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같이 넣지 않고 돌리면 엄청난 정전기가 발생한다. 건조기가 무언지도 모르는 시대에 이 dryer sheet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스스로 빨래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밖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세탁 세제부터 사야 했다. 보통 세탁기를 돌리면 끝날 때까지 그 앞에서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빨래를 하러 세탁실에 내려오면 세탁기 안에 빨래를 넣고 그 위에 빨래 바구니를 올려 놓는다. 다음 사람이 왔는데 세탁이 다 끝났으면 세탁기 안의 세탁물들을 그 바구니에 넣어 옆 선반에 옮겨 놓고 그 사람 빨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침에 나갈 때 그렇게 돌려 놓으면 저녁 때 들어 올 때 선반에 놓여진 내 바구니를 찾아 가면 된다.
지금은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하기 위해 세탁 카드를 이용해 사용료를 낸다고 블로그에 적혀 있는데 내가 다닐 때는 물론 무료였다.
아무도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1-2년 후에는 모두 철거 된 걸로 기억한다. 휴게실 건너편에 탁 트인 발코니가 있어 어떤 이들은 거기에서 빨래 건조대를 사다가 말리기도 하곤 했지만 난 기숙사 방 안에 긴 빨래줄을 걸어 두고 방 안에서 빨래를 말렸다. 그럼 어느 정도 자연 가습 기능도 있었고 거기에 널어 놓은 양말을 아침마다 하나씩 꺼내 신다가 더 이상 신을 양말이 없으면 그날이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어느 선배가 아애 한달치 양말을 사겠다고 주문을 했는데 실수로 하루 세끼 먹는 걸 생각하고 30일치에 3을 곱해서 90켤레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곡회관

지곡회관은 기숙사 지역 한 가운데 있는 편의 시설이다. 언제 지어졌는지 검색을 해 보았는데 정확한 날짜를 찾지 못했다. 학교가 개교한 해에 만들어진 건 아니고 내가 입학하던 1990년 이전인 88년쯤에 생긴 걸로 안다. 지곡회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식당의 역할이다. 이 지곡회관이 생기기 전에는 학생식당이 78계단 위쪽 학생회관 1층에 있었다고 한다. 평일 수업 기간 중에는 식사하기가 편했겠지만 수업이 없는 토/일 주말에는 식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78계단을 올라 가야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88학번 선배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곡회관은 2층 건물인데 경사면 위에 위치하고 있어 기숙사 쪽에서 들어가면 2층 학생 식당으로 바로 들어가게 되고 후문쪽에서 오게 되면 1층과 연결되는 구조이다. 2층에는 학생식당과 교직원 식당이 위치해 있다. 1층 입구로 들어가면 우선 눈 앞에 좌우로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나오는데 좌측이 학생식당, 우측이 교직원 식당으로 이어져 학생/직원들이 식사를 하고 나면 이 계단을 통해 내려 오곤 했다.
1층의 우측에는 우리가 "일반식당"이라고 부르는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당시에도 따로 이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일반식당"이라고 불렀다. 학교가 사람들을 제한하지 않고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시내, 혹은 포항제철 주택 단지 내 사람들이 나들이 삼아 오곤 했다. 지곡회관과 그 연못 주변은 나름대로 산책 삼아 거닐만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지곡회관 뒤쪽으로 위치한 기숙사들도 입구에 별다른 시큐리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어 올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외부 사람들이 기숙사 내로 들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여자 기숙사의 경우 입구에 보안 카드가 있어 출입이 제한되었지만서도 말이다.
내가 학부 시절인 90년부터 94년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반식당"은 정말 일반적인 식당이었다. 자리에 가서 앉으면 서버가 주문을 받으러 왔더랬다. 지금 흔히 보는 full service 식당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고속도로 휴게실 분위기 같지만 주문을 받으러 오고 음식을 가져다 주는 수준 정도의 식당이었다. 그 "일반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가 "돈가스"였다. 정말 이렇게 얇을 수도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얇은 돈가스였는데 대신 크기는 꽤나 컸다. 당시 가격은 1,000원. 학생식당 한끼가 800원이었으니 조금만 보태면 먹을 수도 있는 메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Meal Plan이라고 해서 미리 한달치 식비를 낸 상태라 200원 보태서 먹는 것이 아닌 이미 낸 800원을 포기하고 새로 1,000원은 내는 것이 되니 1,800원짜리 메뉴인 셈이었다. 그래서 학생 식당 메뉴가 정말 맘에 안 들거나 한번쯤 기분 내고 싶으면 친구들과 내려 와서 먹긴 했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메뉴였다. Meal Plan이 없어지고 나서는 좀 더 편안하게 왔던 것 같다.
이 "일반식당"은 8시인가까지 영업을 하고 저녁 9시부터는 야식을 팔았다. 메뉴는 단촐하게 라면, 쫄면, 군만두였던 걸로 기억하고 라면은 300원, 쫄면은 500원이었던 건 기억나는데 군만두는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12시까지인가 운영했는데 주문하는 방법이 독특했다. "일반식당"은 오픈 주방 형태였는데 그 가운데 마이크를 든 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에게 돈을 주고 주문하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 마이크에 대고 가져가라고 불러 준다.
"라면 하나, 라면 둘, ... 라면에 쫄면 ..... 라면 시키신 분 전부 나오세요"
지금 생각하면 주문이 밀려 들 때 내 주문이 어떤 건지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묘하게 잘 동작하던 시스템이었다. 그 때 쫄면과 군만두를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다는 걸 알았고 지금도 집에서 쫄면을 만들면 늘 군만두도 같이 만든다.
1층 좌측에는 서점이 있어 일반적인 책들과 포항제철 주택 단지 내 위치한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 그리고 우리들의 대학 교과서를 살 수 있었다. 더 안쪽으로 연못을 마주하는 공간에는 커피숍이 있어 외부에서 온 일반인들이 자주 이용하곤 했고, 가장 중요했던 우체국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근처에 다른 은행 지점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활비를 우체국 통장을 통해 송금 받아 썼더랬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ATM이 있을 때가 아니라 우체국 통장에서 돈을 찾으려면 통장과 도장, 그리고 출금표에 계좌번호와 찾고 싶은 금액을 적어 창구에 제출했어야 했다. 당시 1학년 때 집에서 생활비로 받은 돈은 월 15만원. 이걸로 식비까지 해결해야 했다. 1학년 때는 Meal Plan이라는 것이 있어 한달치를 미리 선불로 내야 해서 기본적으로 72,000원 정도는 식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친구들과 술한잔 하거나 시내에 놀러 나가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데 썼던 기억이 난다.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넉넉하지도 않았던, 당시로는 딱 알맞은 정도의 생활비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1층 뒷편에 당구장이 있었다. 당구장은 늘 10분 기분으로 10분에 얼마라는 사용료가 붙는데 시내에 나가면 10분에 500원 선이었던걸로 기억나는데 여기는 10분에 100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늘 학생들로 바글바글 했던 기억이 난다. 난 별로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어 잘 가지 않았지만 내 친한 친구는 여기가 천국이라고 했다.
학생 식당

1학년 때는 Meal Plan이 시행되고 있던 때라 한달치 식비를 선불로 지불하고 Meal Plan Card를 받았더랬다. 그래서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입구에서 종이로된 Meal Plan Card에 도장을 찍었었다. 당시 학생식당 한끼 식사값는 800원. 지금은 구경하기 힘든 철판 식판에 음식이 담겨 커다란 carousel 위에 놓이면 학생들이 하나씩 집어가는 형태였다. 밥의 양이나 반찬의 양을 내가 정할 수 없었고 안쪽에서 조리사분들이 적당이 나누어서 담아 주셨다. 그래서 종종 밥을 더 먹고 싶은 친구들은 안쪽에 계신 조리사분에게 좀 더 담아 달라고 이야기 하거나 반찬이 좀 더 담긴 식판을 고르기 위해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생식당 안의 테이블은 안으로 접히는 둥근 모양의 의자들이 달린 형태였다. 지정되어 있는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학과별로 보여 앉아 먹는 분위기였다. 식사를 다 하고 나면 컨베이어 벨트로 되어 있는 퇴식구에 식판을 올려 놓으면 되는데 그 퇴식구 옆에 쇠로된 컵이 쌓여 있는 음수대가 있었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직 남아서 먹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 한잔 떠다 주는게 당시에는 국룰이었다. 같은 과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이성이 있으면 한잔 떠다 주는게 썸의 시작인 경우도 있었다.

앞서 기숙사 리뷰를 쓰신 분의 블로그에 보니 학생식당 리뷰도 있었다.
지금은 철판이 아닌 플라스틱 식판을 사용하고 전체적으로 식사질도 괜찮아 보이는데 무려 35년 전과 비교하는 건 너무 무리가 아닐까 싶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블로그 내용을 보다 보니 그 때 생각이 나긴 했다. 도서관에서 같이 숙제/공부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같이 내려가 같이 밥 먹던 그 시절이 문뜩 말이다. 그 같이 밥 먹던 친구들을 다음 달에 한국 출장 갔을 때 만나기로 했는데 그들과 식판을 들고 어디에 가서 앉을까 두리번 거리던 그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방에서 밥해 먹던 동기
어떤 식사가 나와도 계속 먹다보면 질리게 마련이고, 그래서 종종 "일반식당"에 내려간 것이지만, 내용과 질이 마음에 안 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혼자 기숙사에 보내 놓은 부모님의 마음은 더더욱 먹는 것에 신경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동기 부모님께서 이 친구에게 기숙사에서 밥해 먹으라고 밥솥과 프라이팬, 그리고 휴대용 가스 버너까지 사 주고 가셨더랬다. 그 친구가 방에서 밥과 불고기를 직접 해 먹는 모습을 한번 보기는 했는데 자기는 맛있는 밥과 고기 먹었다고 자랑하던 생각이 난다. 몇번이나 더 해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숙사 내에서 그렇게 화기를 쓰는 건 위험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뒷처리, 설거지와 남는 음식 처리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몇년이 지난 후 내가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에야 기숙사 방에 50리터가 조금 안 되는 정말 조그마한 냉장고를 마련하고 살았던 기억이 나니 당시에는 남은 음식/반찬 보관할 때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딱 한번 해 먹는 것은 봤는데 그 이후에 또 해 먹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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