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후 신체 검사 그리고 면접
보통 학력고사가 끝나고 나서 합격자 발표가 나면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건강 검진 + 피검사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랬다. 당시만 해도 포항까지의 교통이 그다지 편한 편이 아니라 학력고사를 보러 포항에 내려 갈 때 동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근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갔더랬다. 게다가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이는지라 나중에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따로 신체 검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학력고사 다음날 응시생 전부에 대해서 신체 검사를 진행했다.

당시 학생회관 2층 한켠에 의료실이 있었는데 거기서 신체 검사를 진행했다. 간단한 검진과 함께 피검사를 하는데 내 바로 뒤에서 대기하던 여학생은 너무 말라서 피검사를 위한 혈관을 팔뚝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등에서 겨우 겨우 찾아 채혈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나중에 입학 하고 보니 그 여학생도 합격해서 같은 반에 배정되면서 굉장히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 이 친구를 포함해 대학 생활 내내 친했던 친구 그룹이 등장하게 된다. 이 친구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학부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는데 가톨릭 신자라서 나한테 혼배 미사(가톨릭 방식의 결혼식)에서 독서 부분을 부탁했더랬다. 이를 위해 당시 대학원생이던 나는 지도 교수님께 "여자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러 주말에 서울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교수님께서 "여자친구"면 결혼을 해야지 왜 결혼식에 참석하냐고 물어 보셨다. 당시만 해도 "여사친", "남사친"이란 단어가 없었다.
신체 검사가 끝나고 면접이 있었다. 한명씩이었는지 두세명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해당 학과 교수님 두어분이 개별 면접을 보았다. 이를 위해서 지원자 전원이 공학 2동 102호 강의실에 모였다. 내가 지원한 학부는 "전자전기공학과". 당시 포항공대 전체 신입생 정원이 300명이었는데 "전자전기공학과"가 제일 규모가 커서 총 입학 정원이 40명이었다. 여기에 지원자 수는 딱 100명. 2.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이 공학 2동 102호 강의실에 전체 캠퍼스에서 규모가 제일 컸고 공학 2동은 "전자전기공학과"와 "전자계산학과"가 같이 사용하고 있어서 이 강의실에 100명이 모였더랬다. 이 방에 모인 100명 중 40명만 합격해서 내년 3월부터 같이 공부할거고 나머지 60명은 떨어질거라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살짝 입시에 대한 긴장이 느껴졌다. 긴장은 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40명 안에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개별 면접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왜 "전자전기공학과"를 선택했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OMR 카드로 전산처리하는 객관식 점수는 이미 채점이 끝났기 때문에 면접하는 교수님들이 이 면접자의 대강 점수를 알고 면접에 들어오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 점수가 높아 합격선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보다 진지한 질문을, 좀 아니다 싶은 친구들에게는 별로 진지하지 않은, 시간 때우기 위한 질문을 하신다는거다. 믿거나 말거나...
합격 확인
수천명씩 지원하는 여타 다른 학교들과 달리 입학 정원도 300명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합격 발표도 꽤나 일찍 났다. 그 때 경북대 전자과 입학 정원만 400명이라고 들었으니 얼마나 작은 학교였는지 알 수 있다. 당시 1990학년도 학력고사 시험일은 1989년 12월 15일이었고 대부분의 학교들은 합격자 발표가 다음해 1월 초, 늦어도 중순쯤에는 발표가 났다. 후기 시험일자가 1월 22일이었으니 그 전까지는 합격 여부가 통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입학 허가 통지서의 날짜가 12월 21일로 되어 있으니 아마 그 날이 합격자 발표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합격 여부는 당일 오전에 전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7시면 출근하시던 아버지께서 그 날은 내 합격 여부를 확인하시러 늦게 출근하셨다. 아버지께서 학교 교무과로 전화를 해서 수험 번호, 이름, 지원학과 등을 알려 주시고 그 답변을 듣기 까지 그 짧은 몇초가 엄청나게 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던 아버지의 환한 미소. 그래 될꺼야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그렇게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
합격 발표가 있고 나중에 집으로 입학 안내에 대한 서류가 온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정도의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라 무려 2주에 걸친 오리엔테이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입학식은 1990년도 3월 2일, 금요일. 그리고 오리엔테이션은 2주전인 2월 20일, 월요일에 시작한다고 안내가 온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주일 일정이었던 건 분명히 기억이 난다.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주말이 끼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 그 전날 일요일에 도착해 기숙사 배정을 받고 입주를 했다. 당시 어머니와 그 해 3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이 되던 여동생이 함께 왔더랬다. (이전 글에서 당시 6학년이라고 썼던데 5학년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음 해인 1991년 12월 겨울에 미국에 여행 갔을 때 아직 국민학생이었으니까) 오후 4시 정도에 어머니와 여동생이 이제 돌아 가기위해 후문 버스 정류장에서 배웅을 하는데 버스가 출발할 때 여동생이 막 울던 생각이 난다. 여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시에는 나는 살짝 들뜬 기분이여서 여동생의 우는 모습이 안스럽긴 했지만 혼자 기숙사로 돌아 오던 발걸음은 기대감으로 가득찼더랬다.
그날부터 배정 받은 기숙사에서 혼자 잠을 자고 (당시 룸메이트는 산업공학과 2학년 선배였는데 아직 오지 않았더랬다) 학생식당에서 알루미늄 식판에 하루 세끼를 먹으며 기나긴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300명 신입생에게 학교 체육복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체육복에 각자 이름이 다 새겨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학교에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긴 오리엔테이션은 매일 아침 7시에 체육관에 모여 아침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시간은 이렇게 이른 7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한건 그 아침에 모여 다같이 운동, 소위 국민체조부터 어떤 날은 에어로빅 강사님이 오셔서 아침 에어로빅도 했던 아침 운동 후 학생식당으로 아침 먹으러 간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오리엔테이션 일정은 많은 경우 외부 강연과 반별로 나누어진 친구들과의 만남, 친목 시간, 각 학과별 동기들과 기숙사 휴게실에서 그룹으로 이루어진 만남, 친목 시간 등이 이어졌다. 얼핏 포스코, 포항제철 견학도 갔던 걸로 기억난다. 일정 중에 수강 신청을 하는 날이 있었는데 대체 무얼 어떻게 신청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수업 시간표는 정해져서 주어졌지 내가 과목을 선택하면서 수강 신청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학년은 전공 수업 없이 전부 교양 수업으로만 채워져 있고 게다가 반별로 나누어져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이 아닌 이미 정해진 수업을 신청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조금은 생소한 단어였던 "학점"이라든가 몇 학점을 채워야 하고 몇 학점이 되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등등의 설명은 당시에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경주 남산이라는 곳으로 하이킹, 아니 등산을 갔던 기억이다. 가벼운 동네 앞산이라며 나들이 가는 심정으로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험한 산길에 당황하고 다들 돌아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뻗었던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주말이 끼어 있었다. 주말이라고 오리엔테이션 스케줄은 없었고 개인 자유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사이 딱히 누군가 친구 사귈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혼자 버스타고 포항 시내 구경을 갔더랬다. 학력고사를 보러 내려 왔을 때 시내 한복판인 육거리 근처 여관에서 묵었었는데 그 앞에 극장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 낮에 혼자 극장에 들어갔는데 거의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당시 그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는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블랙 레인 (Black Rain)". 별걸 다 기억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본 것이 기억나는 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생도 되었겠다 나도 이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있지라고 당당하게 들어갔으니까. 당시만 해도 포항은 상당히 시골이었기 때문에 입장권을 사도, 극장 안으로 들어갈 때도 신분증 검사, 그런건 전혀 없었다. 괜한 근심 걱정?

입학식
그렇게 혼자 2주를 기숙사에서 보내고 3월 2일 입학식이 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께서 내려 오셨고 함께 입학식에 참석했더랬다. 10시쯤에 시작한 입학식은 11시쯤 끝났는데 다들 나가려는 순간 강당 안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후부터 수업 시작한다고.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와 간단히 어디선가 점심을 먹고 두분은 바로 서울로 돌아가셨다. "좋은 학교는 뭔가 역시 다르네. 입학식하고 바로 수업을 하다니.." 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님을 그렇게 바로 배웅하고 첫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바로 오후에 수업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4년, 아니 결국엔 10년이 되어 버린 포항에서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포스테크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POSTECH의 추억 - 기숙사 첫 입주 (1) | 2026.05.13 |
|---|---|
| POSTECH의 추억 - 입시 준비/학력고사 (2) | 2026.03.20 |
| POSTECH의 추억 -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학교 (1) | 2026.02.27 |
| [뽀스떼끄의 추억 시리즈] - 졸업식 (0) | 2021.07.13 |
| [뽀스떼끄의 추억 시리즈] - 대입고사 (0) | 2021.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