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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새 수필

스쿠터 (Scooter)

by 피터K 2024. 10. 13.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이 어느새 그 원래의 뜻을 잊어 버리고 어디든지 배달/배송이 되어 버린다는 뜻으로 변해버린 지금, 거의 대부분의 배달 기사 분들은 150cc 혹은 그 이상되는 배달용 오토바이/스쿠터를 사용하시는 걸로 안다. 지금은 125cc가 넘어가면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하다는데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석사과정 때였으니 94년도쯤 50cc 오토바이, 당시에는 스쿠터라고 부르는 소형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언덕 아래편에 기숙사와 학생식당 건물이 위치하고 있고 우리가 78 계단이라고 부르는 무지막지한 계단을 올라 폭풍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언덕길을 올라가고 나면 거기서부터 학교 건물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배가 고파서 폭풍의 언덕을 건너 78 계단을 내려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78 계단을 올라 폭풍의 언덕을 건너 도서관으로 돌아 오면 또 배가 고팠던 그런 곳이었다.

 

주거 시설은 언덕 아래, 학교 건물은 언덕 위에 있다보니 좀 여유가 있는 선배들이나 대학원생들 중에는 소위 이 스쿠터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1학년 입학을 하고 기숙사에 처음 입주 했을 때 마침 2학년 선배가 스쿠터를 타고 학교에서 내려와 기숙사에 들어 오는 것을 보시고는 아버지께서 너도 하나 사 줄까라고 물어 보셨다.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한게 종종 후회가 될 때가 있었다. 등교가 등산이 될 줄 그 때는 몰랐으니까.

 

공포의 78계단. 내가 다닐 때만 하더라고 언덕 위에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보니 여기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더라. 후배들아, 너희들은 복받은겨.....

 

 

길고 긴 학부 4년 동안 등반의 수련을 마치고 나서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 연구비 지원을 받으면서 약간의 생활비 보조를 받게 되었다. 지금은 정확히 매달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넉넉하지는 않아도 가끔씩 시내에 나가 옷 한벌 사거나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영화도 보고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실 정도의 여유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배나 후배 중에 무리를 해서 할부로 중고차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러다가 몇달 후에 감당 안 되는 기름값과 보험료에 다시 팔아 버리기도 했지만.

 

그런 면에서 이 스쿠터는 참 좋은 대안이었다. 50cc 였으니 따로 먼허증도 필요하지 않았고 가득 채워도 기름값이 몇천원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수입이 얼마나 있는지 묻지도 않고 너도 나도 크레딧 카드를 발급해 주던 때라 나도 덩달아 크레딧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 할부로 스쿠터를 하나 구입했었다. 기억이 맞다면 당시 새 제품이었고 가격은 50만원이었다.

 

와, 그 때부터는 신천지였다. 더운 날 힘들게 폭풍의 언덕과 78계단을 다닐 필요도 없었고 걸어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던 효자시장까지도 손쉽게 갈 수가 있었다. 물론 스쿠터를 타고 주택 단지를 벗어나 시내로 나가는 건 위험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뚜벅이 시절보다는 좀 더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런 스쿠터를 내 손으로, 비록 크레딧 카드 할부이지만 구입했다는 것, 석사 과정 동안 참 유용하게 잘 썼다는 것, 한번은 실험실 체육 대회 준비 하느라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다가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흙바닥에 바퀴가 미끌어지는 바람에 넘어져 무릎을 살짝 긁었고 지금도 그 상처가 무릎에 있다는 것... 여러가지가 생각이 나지만 특이하게 그걸 어디다가 누구에게 어떻게 팔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은색의 대림에서 나온 새 모델이었고 앞 바퀴가 디스크 형태로 되어 제동이 잘 되었다는 것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말이다.

 

딱 이 모델이었다. 내건 은색. 앞바퀴가 드럼식이 아닌 디스크식 브레이크여서 당시에는 최신 기종이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bikeingnet/40203559277)

 

 

 

1997년쯤 그동안 산학장학생으로 따로 받던 생활비가 있었고 그걸로 들던 적금이 만기가 돌아 왔다. 그리고 거기에 아버지의 도움을 조금 보태 400만원쯤 주고 중고 현대 엑센트를 사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잘 타던 스쿠터를 처분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아버지가 직접 차를 몰고 포항에 가져다 주시고는 아버지는 포항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 가시기로 했다. 아버지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그 험한 길을 돌아 돌아 학교까지 식은 땀 흘리며 돌아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내 생애 첫 혼자 운전이었으니 말이다.

 

내 생애 첫 차. 현대 엑센트. 일반 모델이 아닌 사진에 보이는 5도어 모델이었고 흰색이었다. 큰 아이 태어나고 미국 오기 전날까지 잘 탔던 추억의 자동차. (출처 : 나무 위키)

 

 

그렇게 한동안 새로운 차에 흠뻑 빠져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스쿠터는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번쯤 주차장에 서 있는 다른 스쿠터를 보게 되면 그제서야 아 그래 나도 저런거 하나 있었지... 를 떠올리게 되곤 한다. 그리고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번쯤 꿈 속에서 이 스쿠터를 만나게 된다.

 

 

기숙사 방에서 등교할 준비를 하고 방을 나와 기숙사 앞에서, 혹은 실험실에서 밤 늦게 마무리를 하고 공학동 건물을 나와서 잠시 두리번 두리번거리게 된다. 어, 내 스쿠터 어디 갔지? 주머니에 키는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 스쿠터는 안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밤새 내내 꿈 속에서 이 스쿠터를 찾아 학교 안을, 그리고 때론 꿈 속이다 보니 전혀 가 보지 않은 이상한 장소에 뚝 떨어져서 그 곳을 헤매고 다닌다. 물론 이 스쿠터는 결국 찾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 버리긴 하지만.

 

그렇게 한번 꿈 속에서 그 스쿠터를 만나게 되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친구들이 흔하지 않던 시절, 종종 친구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던 추억들,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겁나서 시내 쪽으로 몰고 나가진 못해도 주택 단지 내에서 몇바퀴씩 혼자 드라이브를 하던 일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밤 늦게 타고 다니던 추억들. 그리고 진짜로 지난 밤에 어디다 세워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찾았던, 그러나 그 때는 늘 찾았던 생각들.

 

어쩌다 한번씩 그 친구, 스쿠터가 꿈 속에 나타나는 건 그 친구가 나 안 잊었지 하고 물어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 2년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친구와 꽤나 재미 있는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의 빙봉을 보고 애착 장난감이 아닌 이 스쿠터가 떠올랐던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참 재미있었거든. 

 

살다보면 그 때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던 함께한 사람들, 물건들이 있을텐데 어느새 바쁘게 살다 보면서 잊어 버린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이 스쿠터란 친구처럼 어쩌다 한번씩 떠 오르면 아 그래, 할텐데 생각나지 않는 것들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어딘가 있을거라고 생각할 때마다 왜 그리 아쉬워질까. 추억하고 기억나는 것들 때문에 아쉬운 것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아서 아쉽다는 건 더 마음 아픈 일인 것 같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잃어 버린 사람이나 추억은 아마 앞으로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잊혀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잊혀졌다고 생각해 보려 한다. 아쉬움은 뒤로 한 채....

 

그래도 이 스쿠터는 가끔 나한테 다시 들려 줄까.

그렇게 한번쯤 들려 주고나면 혹시나 내가 또 잊고 다른 것이 있는지 떠올려 보고 싶다.

어쩌면 꿈 속에서 어디다 두었는지 알지 못해 밤새 찾고 있는 것이 그 스쿠터가 아닌 내 추억 어딘가 숨어 버린 다른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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