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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새 수필

틀리면 어떻하지...

by 피터K 2024. 1. 6.

박사 과정 2년차의 수업이란 건 정말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보면 된다. 학부 때부터 전공 수업을 들어 왔으니 이 박사 2년차쯤 되면 더 이상 들을 전공 과목들도 별로 없을 뿐더러 어쩌다 혹해서 다른 과 대학원 수업을 덥석 물었다간 정말 고생 고생하기 쉽상이다. 내용은 좋았다. 전공이 반도체 회로 해석이라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인데 수학과 대학원 수업 중 numerical analysis라는 과목이 있어 정말 도움이 되리라 순진한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학부 수업도 아닌 수학과 대학원 과정의 numerical analysis, 즉 수치해석이란 정말 어지러울 정도의 수학적 해석 "이론"만 공부하는 과목이었다. 난 해석 "방법"들이 궁금했던 건데...   대략 난감....

 

그렇게 크게 한번 데이고 나선 가급적 내가 속한 전자전기공학과 수업만 고르게 되었는데 반도체 회로에 관한 과목은 다 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통신/제어 같은 과목들도 듣게 되었고, 역시나 대학원 수업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통신 분야 수업 중이었다. 교수님이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시다가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이게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까... 그리고 이어진 긴 침묵. 세부 전공이 아니었지만 나도 대충 이럴 것 같다고 생각은 해 볼 수 있었는데 수업을 같이 듣던 나머지 대학원생들은 통신 전공 석사/박사 과정 학생들이었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들 앉아 있었다. 혹여나 교수님과 눈이 마주쳐 "자네가 한번 말해 보지"라는 지목을 당하고 싶지 않았는지 고개들을 다 푹 숙이고.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교수님께서 수업을 잠시 멈추시고 학생들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교수님,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답변을 잘 안 한다고. 어떨 때는 참 쉬운 질문이라 뻔한 대답인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고. 나중에 학생 하나에게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나서는 것 같아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좀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틀린 것일까봐 걱정되서라고 답했단다. 틀린 대답을 한다는 걸 부끄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틀린다"라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 두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시험을 볼 때에도,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했을 때에도 늘 우리는 "정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개인의 의견이나 느낌,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내" 생각과 느낌을 대답하려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하는게 "맞는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수님이 외국 대학에서 강의 하실 때에 비슷한 질문을 하면 참 여러가지 답변이 나온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그 중엔 정답도 있지만 때론 정말 생각해 보지 않은 엉뚱한 대답도 있다고 하셨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그렇게 질문에 대해서 반응을 해 주면 강의 하는 재미도 있다고 하셨다.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교류하는 소통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 하셨다. 질문을 할 때 "정답"만을 바라는게 아니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대답에 이르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 하다 보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바라 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거라고. 그러니 다음 번부턴 질문을 하게 되면 너희들의 "의견"을 말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고등학교 때 참 싫었던 과목 중에 하나가 "윤리" 과목과 "국어" 과목이었다. 특히 국어 과목의 시험을 볼 때면 누군가의 시를 예문으로 주고 나서 밑줄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정말 싫었다. 어, 나는 이게 이렇게 보여지는데 참고서에는 이건 "나라 잃은 설움"이라는 거다. 만일 그 시에 대한 시대성을 알지 못하고 막 이별한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면 그 사람은 그 단어가 "헤어진 이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정답"을 말해야만 했다. 순전히 시험 점수 잘 받기 위해서.

 

벌써 2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종종 "정답"이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알고리듬과 해석 방법이 있지만 좀 더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가 나타났을 때 조금은 "정답"이 아닌 다른 생각과 방식으로 도전해 보면 종종 해결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은 틀린 생각들을 자꾸만 하게 되고 그게 왜 안 되는지 알아 가면서 되는 것을 찾게 되는 그런 과정에서 알아 낸 것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정답이 아닌 틀린 생각, 대답을 한다는게 걱정되고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시니어, 고참 엔지니어로 신참이 뭔가 질문을 해 왔을 때 그걸 제대로 대답 못하는 때가 오면 괜시리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는 건 아는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 괜시리 아는 체 안하는게 낫기도 하다. 아는 체 하다가 아니라는게 밝혀지면 그게 더 창피한 일이니 말이다. 

 

지난 여름 학부 인턴 학생이 한명 있었다. 그 친구의 버릇은 항상 입에 "I am sorry"를 달고 다니는 것이었다. 학부 인턴이니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것에 대해서도 "I am sorry"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턴 마지막날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모르는게 당연한데 "I am sorry"라고 말하는 것보다, "I see", "I got it" 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게 훨씬 낫다고. 어쩌면 그 친구도 틀린다는 것, 모른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험 부족으로 그걸 모르는데 당연하니 "Oh I see, what about this one?" 이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같이 생각해 보고 어느 부분이 더 필요한지 알아 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통신 수업이 내 마지막 대학원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수업의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그래 내 인생에 더 이상 시험을 없는거야"라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나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해 보고 나니 정해진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없을 뿐이지 하루 하루가 시험의 연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 마지막 수업이 끝나가 전에 조금 더 용감할 걸 이란 후회가 들기도 했다. "틀린 대답"이 아니라 "다른 대답"을 가지고 부담 없이 교수님과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면서 좀 더 재미 있는 수업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누군가 어딘가 써 놓은 낙서가 생각이 났다.

 

틀리면 배우겠지.

 

 

살아가다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틀릴까봐 전전긍긍하고 틀린 것에 대해 창피해 하는 것보다 틀렸으면 거기서 배우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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