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길다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짧은 날들. 처음 로마 공항에 내렸을 때 살짝 들떠 있던 기분도 지난 열흘을 지내면서 많이 차분해졌고, 돌이켜 보면 너무 길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 짧지도 않게 늘 가 보고 싶었던 장소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들을 빼 먹지 않고 잘 챙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쉬움을 조금 남겨 본다. 그래야 또 와야 할 핑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전부터 꿈꾸던 여행을 끝내고 이제 마무리 하는 마지막 걸음이 시작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로마 국제 공항
로마에서 집, Austin/TX로 가는 비행편은 영국 항공, British Airways을 이용한다. British Airways와 American Airlines는 Oneworld alliance에 속해 있어 서로 코드 쉐어가 된다. British Airways 혹은 American Airlines 홈페이지에 가서 예약을 하려고 하면 상대방 항공편까지 포함해 스케줄이 쓴다. 더군다나 British Airways는 Austin/TX - London 직항이 있어 유럽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이 직항편을 이용해 런던으로 이동한 다음 유럽 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용이하고 이렇게 하는 편이 가격도 훨씬 싸다. 아마 앞으로도 다시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루트를 택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로마에서 런던으로 가는 출발편은 오전 7시 45분 출발. 그래서 공항 내 호텔에서 머물렀다. 보통 국제선의 경우 3시간 전부터 체크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벽 3시 45분부터 가능하긴 했지만 공항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5시쯤에 일어나 공항으로 갔다. 출국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여권 확인 하고 경유편이니 런던까지가는 항공권 하나, 다시 Austin/TX으로 가는 항공권 하나, 그렇게 두 티켓을 받아 들고 출국 심사대로 향했다.
출국 심사대도 입국 심사대와 마찬가지로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바로 스캔만 하고 간단한 도장만 받고 나가면 되지만 막내가 아직 14살이 안 된 상태라 이번엔 내가 막내와 함께 긴 줄을 서서 출국 심사를 받았다. 출국 심사는 질문 하나 없이 우리 둘 여권만 받아 도장 찍어 주고는 그냥 패스.
그렇게 출국 심사대를 돌아 나오니 바로 커다란 면세점이 나왔다. 일반적인 면세 물건들, 주류, 담배류도 많이 보였지만 로마/이탈리아를 기념할 만한 여러 기념품들도 보였다. Austin/TX에 돌아 가면 바로 그 며칠 후 회사 한국 직원들끼리 송년 가족 모임이 있어 그 가족들에게 줄 간단한 기념품을 고르기로 했다. 안사람이 이것 저것 둘러 보다가 콜로세움 모양의 마그넷과 올리브 오일 작은 병이 함께 포장된 기념품을 보고 그걸 다른 가족 수에 맞게 샀다. 그 면세점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여기서 2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출국장 구역으로 나가면 각 탑승구까지 가는 긴 복도 중간 중간에 여러 다른 면세점들, 특히 유명 디자이너 숍들이 여기 저기 참 많이 보였다. 와이프가 관심을 보이던 가게도 있었지만 문제는 너무 일찍 온 지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 아... 나로서는 다행....
일찍 들어 온만큼 탑승 시작 전까지는 약 한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British Airways의 라운지를 찾아 갔다. 로마 공항의 British Airways의 라운지는 Philadelphia에 있던 American Airlines의 라운지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비교적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도 라운지는 크기와 상관없이 간단한 먹을 거리가 있고 푹신한 의자에서 편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로마-런던의 항공편의 경우 비행 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로 짧은 편인데도 비지니스 석은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 Austin/TX에서 Philadephia까지가 3시간 30분 비행거리임을 생각해 보면 미국이 정말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면 유럽은 생각보다 작다....?
라운지에서 간단히 와이프와 아침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가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로마 한달 살이 같은 것 가능하지 않을까였다. 그 때쯤이면 아이들 걱정 없이 둘만 오면 되고 생각보다 물가가 싸서 한달 살이가 가능할 것도 같아 보였다. 그 때는 정말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 보고 싶은 곳, 이번에 가지 못했던 곳들, 아니면 두어번 더 방문하고 싶었던 곳들을 차분히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해 본다. 물론 여행으로 놀러 온 것과 실제 와서 사는게 꽤나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미국 놀러 온 사람들은 다들 넓은 집에 복작복작하지 않은 여유, 그리고 여기 저기 가 볼만한 많은 곳들(물론 CA 기준, TX는 정말 가 볼 곳이 없다....)에 홀딱 빠져 당장이라도 미국 오면 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살려고 오면 의료보험부터 면허증, 해결해야 할 너무나 복잡한 일들과 생각보다 비싼 생활 물가에 놀라곤 한다.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한달 정도라면 해 볼만하지 않을까. 버킷 리스트에 아이템 하나 추가....
이제 라운지를 떠나 본격적으로 집으로 출발해 본다.
영국 런던으로 (British Airways Club Europe)
British Airways는 각 좌석 클래스의 이름이 다른 항공사들과 조금은 다르다. 대한항공이 비지니스석을 프레스티지 좌석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특이하게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을 다닐 때 쓰는 이름과 비유럽 국가를 다닐 때 이름이 다른데 유럽 내의 경우 일단 "Euro" 라는 이름이 붙고, 이외는 "World" 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래서 일반석 (Economy)의 경우 유럽 내는 "Euro Traveller", 그외 국제선은 "World Traveller"라고 부르며, 최근에 인기가 있는 프리미엄 일반석 (Premium economy)는 비유럽 국가 국제선에만 존재해서 "World Traveller Plus", 비지니스 좌석은 유럽 내 항공편은 "Club Europe", 비유럽 국제선은 "Club World"가 된다. 일등석은 그냥 "First".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좌석의 수준이 다르다. 정말 특이한 것이 유럽 내 항공편 중 비지니스 좌석인 "Club Europe"인데 좌석 자체는 일반석이다. 협동체 (narrow body, 복도가 하나인 비행기, 큰 국제선 여객기 중 복도가 두개인 경우는 광동체, wide body라고 부른다)의 3-3 좌열 배열 중 중간 자리를 좌석 커버 같은 것으로 막아 놓고 복도/창쪽 좌석에만 손님을 받는 것이다. 일단 바로 옆에 사람이 앉지 않으니 중간 빈 좌석을 선반처럼, 그리고 옆사람과 부대낌 없이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좌석 자체가 일반석이라 뒤로 눕이거나 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가운데 좌석 커버를 제거해 Club Europe와 Euro Traveller의 비율을 조절 할 수 있으니 큰 돈 들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좌석 공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승객 입장에서는 뭔가 눈가리고 아웅같은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런던에서 유럽 곳곳을 다니더라도 3시간 내외이기 때문에 미국 국내선처럼 따로 2-2로 이루어진 비지니스/퍼스트 좌석을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 동부 끝 보스톤에서 서부 끝 LA까지 가면 비행 시간만 6시간 30분이고 보스톤에서 하와이까지는 무려 11시간이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 공항까지 11시간 40분.
이런 눈에 보이는 단점을 보완하려는 것인지 Club Europe 좌석에는 반드시 한끼 식사가 나온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그래서 Reddit 이나 구글 검색을 해 보면 Club Europe에 돈을 더 주고 탈 가치가 있는지 묻는 질문들이 참 많다. 일반석에 2-3시간 정도면 그냥 지낼만 하니까 말이다.
우리의 일정은 로마에서 런던까지 비지니스석에 해당하는 Club Europe 좌석. 그래서 먼저 탑승해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일반석 좌석까지 승객들이 모두 탑승 한 후 항공기 문을 닫고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브리지에서 좀처럼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는데 지금 런던 히드로 공항의 강풍으로 인해서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 대기 상태가 계속 되었고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는지 승무원들이 간단한 음료와 쿠키, 초콜렛 등의 기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방 출발 할 줄 알았던 비행기는 그런 상태로 거의 한시간을 대기 했다. 런던에서 Austin/TX로 가는 항공편의 경우 2시간 45분의 여유가 있어서 아직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기내에 빠듯한 연결편을 가진 승객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내 안내 방송이 나오기를 어디 어디로 가는 연결편의 승객의 경우 승무원에게 미리 이야기 하라고 공지해 주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출발을 하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건 도착 예정 시간보다 한시간쯤 후. 착륙한 비행기가 탑승구 쪽으로 택싱을 하고 있는 중에 미리 연결편이 빠듯한 사람들을 미리 출구 앞 쪽으로 모이게 하더니 게이트가 열리자 마자 먼저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사람들 정말 제대로 연결편을 탔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도 Philadelphia 공항에서 겪었을지도 모를 아찔한 상황. 로마로 출발할 때는 일단 비행기를 놓치거나 하면 전체 일정이 꼬이기 때문에 조마조마 했고 그래서 일부러 American Airlines에 전화해 Philadephia 공항에서 6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것을 감수하면서 새벽편으로 바꾼 것인데 이제 집으로 가는 마당에 있어 만일 연착으로 인해 Austin/TX 편을 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잠깐 상상해 보았다. 어쩌면 마지막 여정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지 않았을까? 일반석이 아닌 비지니스 석이라 쉽게 다른 편으로의 변경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짧게는 반나절, 아니면 하루 정도 런던에서 머물러야 하지 않았을까?
말은 쉽게 하고 재미 있었겠다 생각해 보지만 현실은 귀찮음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상상 한 조각.
히드로 국제 공항 (Heathrow International Airport)
런던 히드로 국제 공항은 복잡하기로 전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공항이다. 그래서 넉넉한 환승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로마에서 아침 7시 45분에 출발하는 첫 비행편으로 선택한 것도 오후 12시 10분에 출발하는 Austin/TX 편과 최대한 환승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었다. 출발 시간이 한시간 더 늦은 8시 30분 출발편도 있었는데 만일 아침에 여유 부리겠다고 이 출발편을 선택했더라면 아마 한시간 연착했을 때 정말 비행기 안에서 조마조마했지 싶다. 국제선 연결편이 있는 경우 맘 편하게 3시간 이상은 환승 시간을 가지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런던 상공에 도달해서야 왜 출발이 늦어졌는지 대강 알 수가 있었다. 런던은 흐린 날씨로 유명한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영 우중충한 날씨에 착륙을 위해서 낮게 날 때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에서 나무들이 계속 바람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강풍 때문에 활주로에 접근 할 때도 꽤나 흔들리더니 첫번째 착륙 시도는 실패하고 Go-Around. 한참을 다시 선회한 후에야 두번째에 간신히 착륙. 문제는 워낙 흔들리다 보니 와이프가 멀미를 심하게 해서 너무 힘들어 했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 탑승구 근처 의자에서 한참을 쉬며 진정을 해야만 했다. 참 고생이 많다. 자기야...
한 30분 정도 쉬고 나니 이제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어 Austin/TX로 가는 환승 구역으로 갈 수 있었다. 여유로울 줄 알았던 환승은 연착으로 1시간 정도, 와이프 멀미 때문에 다시 30분 정도 보내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졌다. 국제선의 경우 출발 시간이 12시 10분이라면 탑승은 보통 40분 전에 시작하고 10분 전에 게이트 문을 닫는다. 그러니 이제부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우리가 도착한 탑승동은 Terminal 5의 A 터미널. 환승편은 C 터미널이었다. 이 경우 Terminal 5 지하에 위치한 셔틀 열차만 이용하면 된다. Terminal 5 내에서 이동하는 거라 그냥 일반 환승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은 꽤나 복잡하고 이리저리 꼬여 있어 그 동선이 전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에스컬레이터도 위로 아래로 두어번씩 탄 것 같고 중간에 security가 있어 로마에서 올 때 기내에서 받았던 생수병 중 세개는 따지도 않은 상태로 그대로 버려야만 했다. 중간에 security를 통과할 때 로마 면세점에서 산 선물용 올리브 오일이 생각이 났다. 원래 기내에는 액체류 반입이 안 되기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중간에 있는 직원에게 면세점에서 산 작은 병 사이즈의 올리브 오일 5병 쯤 있다고 하자 괜찮다고 그냥 지나가라고 했다. 하마터면 선물이라고 샀다가 전부 런던에 버리고 올 뻔 했다.
그렇게 도착 게이트에서 긴 환승 통로를 따라 security를 지나고 나면 일반 탑승 구역으로 나가게 된다. C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 셔틀 열차를 타러 가는 중에 해리포터 샵이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구경하러 갔는데 조금 있다가 나오더니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있는 해리포터 샵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툴툴거렸다. 나중에 제대로 런던에 오게 되면 해리포터 투어나 해 보아야겠다.
런던에서 Austin/TX로 (British Airways Club World)
집으로 데려다 줄 항공편 탑승구 앞에 도착하니 10분 후에 바로 탑승이 시작 되었다. 여행 전에 각 공항들의 라운지들을 검색하면서 히드로 공항의 British Airways 라운지는 어떨지 궁금했었다. 아무래도 영국 국적 항공사의 영국 메인 공항의 라운지라 꽤나 고급스러운 라운지가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기회가 아닌 듯했다.
조금 후 비지니스석부터 탑승이 시작되었다. 처음 Philadelphia에서 Rome 갈 때의 Americal Airlines의 비지니스석은 20석 밖에 되지 않았지만 British Airways의 비지니스석 (Club World)는 모두 56석이나 되었다. 구조는 American Airlines의 cocoon 구조로 같았지만 다른 점은 입구에 슬라이드 문이 달려 있어 닫고 나면 완전한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칸막이 높이가 낮아서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안쪽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안에서 문을 닫고 있으면 독방을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비지니스석은 먼저 탑승하기 때문에 일반석 승객들이 탑승하고 이륙 준비를 하는 동안 승무원들이 각 좌석을 다니면서 welcome drink를 제공하고 식사 메뉴 주문을 받아 간다. British Airways도 미리 식사 주문을 할 수는 있었지만 선택이 일반식, 채식, 특수식에 대한 카테고리 선택만 가능했고 메뉴는 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새벽부터 누적된 피로는 완전 침대처럼 누워서 곤한 잠으로 떨쳐내 본다.
뜻하지 않게 American Airlines와 British Airways의 두 비지니스석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두 항공사를 비교하자면 American Airlines의 비지니스석이 여러 면에서 훨씬 나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American Airlines의 경우 비지니스석을 예매하면 기본적으로 좌석 선택이 따라 온다. 하지만 British Airways는 일등석이 아닌 다음에야 비지니스석도 좌석 선택이 불가능하다. 출발 24시간 전에 자리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선택하려면 자리 위치에 따라 적어도 $160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로마에서 런던까지의 Club Europe의 경우 $60) 막내가 아직 13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160씩 다섯 사람, $800을 더 주고 자리 선택, 될 수 있으면 서로 가까이 앉으려고 했다. 그나마도 미루다 미루다 나중에 해서 겨우 가족들이 가까이 앉을 수 있는 다섯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한번 경험해 보고 나니 다음 번엔 돈을 더 내고 자리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일반석과는 달리 옆좌석에 다른 사람이 앉을 일 없는 개인 cocoon 형태라 막내가 혼자 있어도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혼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다면.
British Airways의 비지니스는 좌석 수가 많은 만큼 서비스 승무원의 수도 더 많았지만 아무래도 절대 비지니스 승객 수가 많다보니 서비스의 질이 American Airlines 보다 떨어졌다. 식사를 주문하고 가져다 주는 것도 왠지 시간에 쫓겨서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고 느긋하게 빵을 고르는데 눈치가 보인다든가 식사를 한참 전에 마쳤는데도 식기를 치우러 오는데 한참 걸렸고 후식과 함께 하는 커피 한잔 받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누군가 대한항공의 A380 비지니스 경험이 최악이라고 했다. 대한항공의 A380의 경우 2층 전체가 비지니스석으로 운영되어 총 94석이나 된다. 대한항공의 비지니스석을 타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하늘에서 먹는 라면 맛을 이야기 하는데 A380 비지니스석에서 라면 주문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랬다. 워낙 많은 양의 라면 주문이 들어와 주문해도 한참 걸린다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앉은 복도 쪽 서비스 하는 승무원분은 내가 도착 2시간 전 쯤 일어 났을 때 바로 와서 아침 식사 주문을 받아 가고 금방 가져다 주었는데 반대편 복도쪽에 앉은 와이프와 막내에게는 훨씬 전에 일어 났는데도 아무도 아침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내가 아침을 다 마쳤을 때도 아무도 안 와서 내가 따로 갤리로 가서 저쪽 열은 아침 안 주냐고, 와이프와 막내가 너무 배고파 한다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가서 주문을 받고 가져다 주었다. 어쩌면 그냥 생긴 해프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해프닝 하나가 British Airways의 인상을 결정해 주었다. 와이프가 서비스가 친절하지도 않고 제때에 뭘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고 가능하면 British Airways는 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음.... 근데 자기야....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British Airways의 비지니스가 제일 싸다..... 우리 앞으로도 종종 탈 듯....
입국 심사
이제 정말 마지막 관문.
Austin 공항은 워낙 국내선 위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입국을 담당하는 국제선 부분은 어떤지 궁금했었다. 미국에서 출국하는 경우에는 출국 심사라는 것 자체가 없고 각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항공사가 여권 확인해서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으로 업무를 대행해 준다. 그래서 로마에 갈 때에도 출국 심사를 따로 받은 것 없이 국내선으로 Philadephia 공항으로 이동 후 라운지에서 내내 기다리다가 로마행 비행기에 바로 탑승했었다. 반면에 미국 입국 심사는 깐깐하고 엄하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유튜브에 미국 입국 심사하는 방법, 대답 잘 하는 방법, 피해야 할 답변 등에 대한 콘텐츠도 있을까. 늘 큰 공항, 샌프란시스코 공항, LA 공항, DFW 공항만으로만 입국해 봤기 때문에 입국 심사라고 하면 거대한 성조기가 나부끼는 거대한 공간에 마치 취조 받는 듯한 느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Austin 공항은 어떨까?
우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말 소박한 탑승 대기실을 지나 입국장 방향으로 이동했다. 에스컬레이터 두개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짐 찾는 baggage carousel이 있었다. 크기는 Austin 공항 국내선에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꽤나 작은 공간에 carousel을 우겨 넣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같은 공간 한편에 입국 심사대도 함께 있었다. 당시 우리 뿐만이 아니라 같은 런던에서 온 Virgin Atlantic 항공편이 몇 십분 차이로 도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carousel 주위가 너무나 복잡했다. 지금은 이 Virgin Atlantic의 Austin-런던 직항편이 없어졌는데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다. 늘 경쟁이 있어야 가격이 내려가는데 말이다.
보통 비지니스석 짐은 먼저 나오는 편인데 두 항공편이 함께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ground crew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인지 일반석 짐이 먼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간에 우리 짐이 나왔다. 짐을 챙기고 나서 바로 옆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심사대는 여러 개가 있었지만 두개인가 세개만 운영 중이었고 다른 국제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민권자/영주권자 줄과 일반 방문자 줄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은 대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반대로 방문자쪽 줄은 너무 길어 이미 carousel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 두 줄은 심사대 앞에서 만나는데 거기에서 입국 심사관이 누가 다음번 빈 심사대로 갈지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에 누가 들어 오면 일단 그 사람들부터 보냈다. 그러니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에 서는 사람은 거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바로 심사대로 갔던 것이다. 보통 시민권자/영주권자를 우선 하더라도 방문자 줄이 저렇게 길면 두세번에 한번은 다시 방문자 쪽 사람을 보내 주어 어느 정도 발란스를 맞추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일단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에 선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간 뒤에야 방문자 쪽 사람을 보냈고 다시 시민권자/영주권자 줄에 사람이 들어 오면 바로 바로 다음 빈 심사대로 보냈다.
가족이 모두 시민권자인 내 입장에서야 빨리 나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런 방식이 계속 되자 방문자 줄 쪽에 있던 어떤 이가 그 사람에게 불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통제하는 이 심사관은 그냥 무뚝뚝하게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어느 나라나 자국 시민이 우선인 건 맞다. 인천 공항을 입국 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국적에 해당하는 줄이 상대적으로 훨씬 짧고 바로 바로 통과하지만 방문자쪽 줄은 항상 기니까. 그래도 그날의 그 상황은 내가 봐도 조금 너무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자쪽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첫 미국 방문/입국 경험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 LA에 계시던 고모네로 우리 삼남매만 한달간 여행을 온 것인데 당시 커다란 입국 심사장 천장에 걸려 있던 엄청난 미국 성조기에 압도 당하고 심사관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비교적 친절했던 당시 그들의 태도에 긴장할 것 없구나라며 이 사람들은 날 환영하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었더랬다. 물론 그 때가 911 테러 전이라 더 여유가 있었던 때라지만 그 때의 그 환영 받던 기억은 나에게 참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그날 내가 Austin 공항 입국 장에서 그 방문자 쪽 줄에 있었다면? 비지니스석을 타고 내내 잘 먹고 잘 누워 자다가 내렸음에도 그 줄에 꼼짝없이 붙잡혀 있고 그 앞에 심사관마저 무뚝뚝하게 말한다면 너무나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고 미국에 대한 인상이 참 안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어, 그래 여긴 미국이고 잘난 나라니까 딴소리 말고 그냥 조용히 하라는대로만 해.... 앞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던 그 입국 심사관에게서 난 미국 시민권자라 그 앞을 프리패스로 지나가는데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나서 두번 입국 심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입국 심사대에 서면 별 질문도 없고 신원만 확인하고 도장 찍어 준 후 "welcome home", 그리고 끝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식구 다섯이 우르르 몰려가 여권 다섯개 다 제출하니 여권 하나 펼쳐 그게 누구 것인지 우리 쪽 쳐다 보고 얼굴 확인하고 여권 스캔하고 끝. 몇분 걸리지도 않고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입국장은 바로 국내석 carousel 들이 모여 있는 공항 1층 한편이었고 공항을 나가자마자 훅 들어 오는 그 표현할 수 없는 묘한 Austin/TX의 공기 느낌이 온 몸에 펴졌다. 아, 그래 이제 진짜 집에 왔구나....
Home, home, sweet home....
열흘 넘게 세워 두었던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주차비만 $209...) 집으로 돌아 오니 저녁 6시가 넘어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내리기 전에 간단한 식사를 한데다가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안사람이 차 멀미가 난다고 힘들어 했고 아이들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짐을 잠깐 정리하고 나니 다들 각자의 침대에서 쓰러져 자기 시작했다. 편안한 여행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낯선 곳에서 늘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집에 오니 잘 몰랐던 피곤이 훅 몰려 온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이런 고생이라면 마다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멀게만 느껴지던 유럽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 않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조금만 무리하면 언제나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용만으로 따지자면 여기서 하와이나 Cancun 가는 비용에 조금만 더 보태면 유럽 일주일 정도는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why not 이다.
그렇다고 매년 휴가마다 유럽으로 여행을, 그것도 사치를 부려가며 비지니스석으로 가기에는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다. 그래도 조금만 노력하고 알아 보면 할 수 있다는 것과 아애 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은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속으로 또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해 보며 다음 여행을 기다려 본다.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사진으로 그 때를 돌아 보고 아, 저기 참 좋았는데... 추억을 되돌아 보며 그 때 그 기분으로 돌아가 본다.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그 도시들을 직접 밟아 볼 꿈을 꾸어 본다.
꿈을 이루어 보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살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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