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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로마 여행 2023년 12월

이탈리아 여행기 - 아홉째날 트라야누스 시장/에마누엘레 기념관/카피톨리노 박물관

by 피터K 2024. 6. 16.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로마에 내린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여행을 마무리 하고 돌아 갈 때가 되었다. 비행기 출발은 내일이지만 출발 시간이 새벽 7시 45분이니 내일은 하루 종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봐야 하고 오늘이 사실상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날 무엇을 할지 미리 계획을 잡진 못했지만 로마에서 머무르는 동안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면서 어느 정도 거리나 이동에 대한 감을 익힌 다음 어디를 가면 되겠다 계획을 잡을 수는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로마 마지막날의 방문지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그리고 카피톨리노 박물관이었다.

 

내일 아침 비행기 시간이 새벽 7시 45분. 국제선인 경우 보통 3시간 이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니 로마 시내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새벽 4시 15분에는 로마 호텔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면 저녁에 들어 가더라도 제대로 쉬거나 편하게 잘 수가 없어 마지막 날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보통 큰 공항의 경우 공항 건물에, 혹은 바로 옆에 호텔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로마 공항의 경우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힐튼 호텔(Hilton Rome Airport)이, 15분 정도 공항 내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제 2 터미널 정도에 해당하는 곳에 힐튼 가든인(Hilton Garden Inn Rome Airport)이 우선 검색되었다. 그런데 좀 더 찾아 보니  공항 주차장 건물에 바로 붙은, 공항 건물의 길 바로 건너편에 HelloSky라는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리뷰를 찾아 보니 이 호텔은 주로 layover가 길거나 우리처럼 새벽 국제선을 타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짐도 많은데 조금이라도 걷는 거리를 줄이는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오늘 밤은 이 호텔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여러 호텔에서 아침을 먹어 보았지만 all-inclusive였던 Cancun 호텔을 제외 한다면 이 로마, 그리고 피렌체에서의 호텔 조식은 정말 최고의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 최고의 수준이 일주일쯤 계속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질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만한 아침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날이니 정말 더 서두를 것도 없었고 느긋느긋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방으로 올라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여행은 늘 그렇듯이 갈 때쯤 되면 짐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잘 개어서 넣어온 옷들은 갈아 입을 때가 되어 뭉텅뭉텅 넣다보면 공간도 더 차지하게 되고 이런 저런 기념품도 사면 그 또한 짐이 된다. 그래도 국제선이다 보니 일인당 2개의 캐리어는 부칠 수 있어 아이들에게 각자 캐리어를 사 주었고 서로 공용으로 사용할 큰 가방도 하나 더 딸려 보냈더니 짐을 싸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캐리어, 배낭 정리가 다 되어 10시 30분쯤 로비로 내려와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에 짐을 맡겼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마지막 투어에 나선다.

 

 

트라야누스 시장

 

호텔의 위치가 좋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애매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위치가 좋았다고 하자. Roma Termini도 걸어서 10분 내외였고 대부분의 유적지/미술관/박물관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걷기에는 조금 먼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자니 몇 정거장 되지 않은 경우가 꽤나 있었다. 오늘의 첫 방문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도 딱 그런 위치, 바로 포로 로마노 옆이라 걸어서 20여분 걸리지만 날씨도 너무 춥지 않겠다 산책 삼아 걸어 가기로 했다. 며칠 전 포로 로마노에 갈 때에도 걸어 가 보니 나름 주변 건물들 구경 하면서 걸을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Google Maps을 켜고 방향을 잡으며 Via Nazionale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 Villa Aldobrandini를 지나자마자 뜻하지 않게 왼쪽에 박물관 입구가 하나 눈에 들어 왔다. 입구가 너무 뜬금없이 반쯤 부서진 유적지 건물의 아치 입구에 있어 정확히 어떤 곳이지 알지 못했는데 입구에서 바라본 내부의 모습은 그냥 아주 작은 소규모의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어짜피 서두를 필요가 없어 잠깐 쉬어가는 셈치고 들어 가보기로 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정말 길거리 바로 앞이라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일인당 $15 정도 되는 꽤나 비싼 입장료를 보고는 별거 없을 것 같은데 너무 비싼 거 아냐라는 생각도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좌우에 회랑들이 있어 이 유적지에서 나온 여러 가지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발굴품들의 크기가 컸다. 그리고 그 발굴품 조각이 어디쯤에 사용되었는지 그 뒷 벽면에 설명이, 그리고 그 전체 조감도들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그냥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잠시 잊어 버리고 있던 사실. 이탈리아에서의 미술관/박물관은 늘 시작이 미약하지만 그 뒷쪽엔 광대하고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

 

서너 회랑의 전시 공간을 지나 건너편으로 너머가니 이제 본격적인 이 장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트라야누스 시장.

 

들어 갈 때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는데 이 박물관의 정식 이름은 "트라야누스 시장 포리 임페리알리 박물관 (Mercati di Traiano Museo dei Fori Imperiali)"이다. 우리가 들어간 입구쪽은 트라야누스 시장의 뒷편에 해당하는 곳이었고 회랑 구역을 지나가면 위 사진에 보이는 트라야누스 시장 건물의 맨 꼭대기, 옥상 테라스 부분으로 나오게 된다. 박물관 입구가 전체 유적지의 뒷편에 있는 셈이라 그 입구에서만 보면 전체 유적지를 모르고 입장하게 되어 나처럼 당황하게 된다. 이 입구가 있는 곳은 과거에 로마인들에게 구제 곡물을 나누어 주던 장소라고 한다.

 

트라야누스 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이다. 그런데 이 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면적인 가게 건물들과 그 사이의 골목, 골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퀴리날레 언덕 일부를 이용해 만든 현대의 쇼핑몰 같은 형태이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각 아치 뒷편으로는 작은 방들이 위치해 있어 각각이 상점이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주변 부속 건물에는 행정 기관들도 있었다고 한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카이사르 포룸, 아우구스투스 포룸 뒷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포룸을 짓기로 하는데 그의 명을 받은 건축가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로스가 설계를 맡아 트라야누스 포룸, 트라야누스 시장을 건설, 기원후 113년경에 모두 완성되었다. 이 트라야누스 포룸과 시장을 위해 퀴리날레 언덕까지 파헤쳐야 할 정도였으니 이제 더 이상 포로 로마노 주위에는 포룸을 만들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트라야누스 포룸이 황제들의 포룸의 마지막 포룸이 된다.

 

현재 반원형으로 보이는 시장의 매인 건물 뒷편으로 조금은 생소한 건물들이 커다란 탑과 함께 보이는데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수도원과 군사 시설들이 들어 섰고 방어용 탑도 세워졌다. 그래도 지금은 정리가 많이 되어 위 사진에 보이는 거의 모든 부분을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공간들의 연속이지만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그리고 꼭대기에서 계단을 통해 맨 밑바닥까지 걸어 다니다 보면 현재의 왠만한 쇼핑센터 못지 않은 크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비어 있는 공간들을 보며 여기선 무엇들을 사고 팔았을지 상상해 본다. 어쩌면 당시에는 흥정하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이 건물을 가득 매우고 있었을지도....

 

트라야누스 시장 옥상 테라스 부분에서 포로 로마노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중간 길 건너편이 바로 포로 로마노이고 무솔리니가 저 중간 길을 내기 전에는 포로 로마노에서 트라야누스 시장이 있는 이 부분까지 "황제들의 포룸" 구역이었다. 시장 앞에서 중간 길 사이에 발굴된 유적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황제들의 포룸" 유적이다.

 

트라야누스 시장 옥상 테라스 부분에서 바라본 "황제들의 포룸" 유적지. "카이사르 포룸"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포룸"에 해당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저 유적지로 갈 수는 없고 입구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딘지 정확히 몰라서 가 보지는 못했다.

 

 

트라야누스 시장 옥상 테라스 부분에서 바라 보면 길 건너 포로 로마노 유적지가 보이고 그 사이에 다시 거대한 유적지 터들이 보인다. 이곳에 "카이사르 포룸", 아우구스투스 포룸", 그리고 이 아치형 시장 건물과 어울리는 반원형 에세트라를 가진 "트라야누스 포룸"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단이나 일부 기둥들만 볼 수 있어 어땠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 유적지를 보고 있노라면 100% 원형에 가깝지는 않더라도 아직도 이 정도 유지하고 있는 트라야누스 시장 건물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모습을 떠 올려 보려면 여전히 상상 더하기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상상의 기초는 제공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 중간에 보이는 횡한 유적지를 보며 아쉬움이 더 남는다. 건물 외벽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멋있었을까 하고. 하지만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런 것들이 남아 있으라고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2세기 트라야누스 시장 상상도. 반원 부분이 명확히 보이지만 그 앞의 포룸 건물은 이제 흔적만 있을 뿐이다. (출처: Reddit)

 

 

황제들의 포룸 전체 도면. 우리가 방문한 트라야누스 시장이 윗부분 반형 부분인 곳이고, 맨아래 부분에 현재 포로 로마노 유적이지인 Curia와 아멜리아 회당이 보인다. 지금 이 지도의 좌측 아래에서 시작해서 우측 중간 부분 사선으로 "황제들의 거리" 길이 깔려 있는 셈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이 곳은 눈으로 보아야 할 유적은 별로 없다. 전시물들도 입구 쪽에 있던 것들만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을 뿐 트라야누스 시장 1층 지상 부분까지 내려가 보면 건물 좌우 커다란 공간에 여기 저기서 발굴된 조각상들이 별로 설명도 없이 놓여 있고, 한 방에는 그냥 쌓아 두기까지 했다. 그런 면에서는 이 박물관은 눈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유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실제 당시의 건물을 걸어서 돌아 다니며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는 체험형 장소.

 

입구가 너무 단촐해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들어 갔지만 그 뒷편으로 엄청난 기세를 숨기고 있던 트라야누스 시장.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작은 보석 같은 공간이었다. 

 

 

트라야누스 원기둥

 

며칠 전 판테온을 찾아 갈 때 갑자기 만난 원기둥이 트라야누스 원기둥인 줄 알았는데 다른 원기둥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검색을 했을 때 이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이 곳 포로 로마노 근처, 예전 트라야누스 포룸이 있던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카피톨리노 언덕을 찾아 가는 길에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트라야누스 시장을 들리는 바람에 생각보다 이 트라야누스 원기둥을 금방 볼 수 있게 되었다. 

 

트라야누스 시장이라고 트라야누스 황제의 이름이 붙었으니 당연이 이 시장 건물은 트라야누스 포룸과 함께 만들어진,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있는 건물이다. 위 조감도 도면을 보면 알겠지만 시장의 둥근 부분도 트라야누스 포룸이 둥근 에세트라 모양으로 툭 튀어 나온 것과 맞물리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라야누스 시장 박물관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눈 앞의 유적이 트라야누스 포룸 유적이고, 그 중간에 높다랗게 서 있는 원기둥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정확히 찾은 트라야누스 원기둥. 앞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 원기둥은 원래 트라야누스 포룸 한 가운데에 있었으니 지금 사진에 보이는 주변이 전부 트라야누스 포룸 유적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포룸 유적은 다 없어지고, 혹은 다 묻혀 버리고 이 원기둥만 덜렁 남았다는게 더 신기해 보였다. 꽤나 큰 원기둥이라고 해도 높게 솟아 오른 모습만 본다면 그 사이 넘어져 부셔졌을만도 한데 그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원기둥 스스로도 나 어때, 대견하지라고 뽐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기둥 주변인 포룸 유적지를 발굴하느라 그런지 바로 앞에서는 볼 수 없었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밖에 없다. 자세한 조각 모습을 본다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앞서 한번 언급했듯이 이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그가 다키아 지방, 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 지방에 해당하는 지역을 정복해 제국의 영토로 병합한 다키아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원기둥을 따라 그 전쟁 당시의 이야기들을 새겨 놓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이 다키아 전쟁 부분을 기술하면서 이 원기둥에 있는 부조들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한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원기둥 밑 부분의 경우 그럭저럭 맨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높이 이상은 핸드폰 카메라 줌을 이용해도 선명하게 보기는 힘들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은 망원경을 들고 훑어 보는데 주변에 있는 경찰이 신기한듯 바라 보았다는 에피소드도 적어 놓고 있다.

 

생각해 보니 각 부조의 근접 사진과 일부 모형은 콜로세움 안에 있던 전시실에서 보았었다. .... 물론 자세한 건 이미 기억이 안 나지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원래 오늘의 첫번째 방문 예정지는 이 기념관이었지만 트라야누스 시장에 들리는 바람에 기념관 앞에 왔을 때는 벌써 오후 1시에 가까웠던 걸로 기억 난다. 하늘이 맑았다면 좀 더 깨끗한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 날은 구름이 낮게 잔뜩 낀 하루였다. 비가 오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기념관은 무솔리니가 뻥 뚫어 놓은 황제들의 거리 길을 두고 황제들의 포룸 유적 건너편 쪽에 위치하고 있다. 워낙 거대한 건물이라 어디서든지 눈에 띄는 모습이다. 이 건물을 처음 본 것은 로마에서의 첫날 산탄젤로 성을 찾아 가면서 탄 버스 안에서였다.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동안 갑자기 나타난 광장 건너편에 이 건물을 보았을 때 처음엔 무슨 궁전인줄 알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머리 속에 로마 전체 지도가 아직 다 들어와 있지 않아 어디쯤인지 잘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꽤나 넓은 베네치아 광장을 앞에 두고 마치 언덕 위에 위치한 것처럼 조성된 모습이라 그런지 얼핏 지나가다 본 것임에도 첫눈에 꽤나 인상적이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자 동시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한 왕국의 마지막이자 다른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된 이유는 그의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이탈리아 전역에 나뉘어져 있던 다른 왕국들을 통일하고 고대 로마 시대 이후 처음으로 다시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통일 왕국, 이탈리아 왕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Padre della Patria (국부)"로 불리게 된다. 

 

그가 1878년 1월에 사망하자 사람들이 그를 추모해서 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많은 이들이 성금으로 기부도 했다. 위치는 카피톨리노 북쪽 언덕, 그래서 포로 로마노를 그 뒤편에 두는 모양이 되었다. 부지도 정해졌겠다 기부금도 일반인들로부터도 쇄도했겠다 기념관을 지을 준비는 다 된 것 같았지만 시간은 오래 걸렸다. 일단 부지 내에 있던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는데만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진행은 중구난방이었나 보다. 고대 건축물은 벌써 다 없어졌다고 해도 중세를 거치면서 생겨난 또 다른 중세 건축물도 그냥 보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확인도 안 하고 일단 철거했다고 한다. 1911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 통일 50주년을 기념해 부분적으로 낙성식을 거행했고 1935년에서 비로서 전체가 완성되었다.

 

이 기념관은 기본적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는 공간이지만 중간에 설계 변경으로 중간 부분에 "무명 용사들의 묘"가 함께 들어서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기마상 아래 황금색 배경을 가진 석조 부조 벽면이 있고 사람들은 우측 공간만을 이용해 올라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중앙 계단 부분, 석조 벽면이 "무명 용사들의 묘" 부분이고 현충원처럼 항상 정복 차림의 군인 두명이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절대 꺼지지 않는 성화가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앞에 서 보면 그 크기와 웅장함에 놀라게 된다. 건물 바로 뒷편이 포로 로마노인데 왠지 위치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고대와 현대가 서로의 등을 마주 하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웅장함에만 힘을 준 듯한 모습이다. 기마상 아래 석조 부조가 반원형 모양으로 배치된 부분이 "무명 용사들의 묘", 그래서 "조국의 제단"이라고 불리우는 부분이다. 정중앙에 황금빛 배경을 가진 로마 여신상이 있는데 그 발 아래 대표로 선별된 무명 용사 한분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무명 용사들의 묘"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1차 세계 대전을 치루는 동안 전사한 군인들 중에서 그 신원을 확인 할 수 없었던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물인데 여기에는 실제로 한명의 무명 전사자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무명 전사자들 중에서 묻힐 후보 11구의 전사자를 준비했고 자신의 유일한 자식을 1차 세계 대전 중에 잃은 마리아 베르가마스라는 여인이 그 중 한 구의 시신을 선택했다고 한다. 

 

앞부분이 "조국의 제단"이라고 불리우며 무명 용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므로 그 앞에 넓은 계단이 펼쳐져 있어도 그 앞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우측 한편으로 사람들이 올라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면 "조국의 제단" 뒷편으로 다시 기마상이 놓여 있는 테라스에 이르게 되며 거기서 베네치아 광장을 바라 볼 수 있다. 

 

기마상이 있는 테라스 맨 앞에서 베네치아 광장을 바라본 모습. 이 위치는 "조국의 제단" 바로 위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한쪽으로만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중간 부분으로는 갈 수 없게 길안내 펜스가 쳐져 있다. 사진의 왼쪽 갈색 건물이 베네치아 궁전 (Palazzo Venezia)이며 그 궁전 때문에 그 앞이 베네치아 광장 (Piazza Venezia)가 되었다. 현재는 메트로 공사 중이라 공사 가림막이 광장 전체를 둘러 싸고 있다.

 

기마상이 있는 테라스에서 다시 뒷쪽으로 계단이 있고 그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아래 보이는 사진처럼 기념관 앞 마당 광장이 나온다. 여기까지가 기념관 외관이고 이 열주 건물 안이 또 다른 전시관이 있다. 열주 건물 좌우로 작은 입구가 있어 그 안으로 들어 가면 전시관 입구가 있다. 여기까지는 무료이지만 그 전시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권을 사야 했다. 그런데 이 전시관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관한 전시관이 아닌 일반 고대/중세 유물 전시관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따로 입장권을 사지 않고 지나기로 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느니 카피톨리노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더 유익해 보였기 때문이다. 

 

기념관 끝까지 올라 가면 건물 열주 앞에 큰 광장이 나온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건물 좌우에는 건물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이 있는데 그 문으로 들어 가면 건물 안에 위치한 또 다른 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들어온 문과는 반대편 문으로 나가게 되면 이 열주 건물 뒷편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 테라스에 서면 바로 아래로 포로 로마노가 펼쳐져 있다. 테라스 한켠에 까페가 있어 에스프레소 혹은 다른 음료와 간단한 샌드위치류를 살 수 있었다. 1시가 넘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어야 했지만 조금은 늦게 먹는 아침 때문인지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무 것도 안 먹는다면 아애 점심을 건너 뛸 것 같아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지금 사진에는 안 보이고 찍어온 사진도 없지만 이 열주 건문 뒷편에는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이 열주 건물 꼭대기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뒷편 테라스에서 그 건물 꼭대기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다. 기념관이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 위치한대다가 기념관 건물 자체도 엄청나게 우뚝 솓아 있는 건물이라 그 위에 올라가면 로마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로마를 돌아 다니면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별로 올라 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애 처음부터 남산 타워라든지 Seattle에 있는 Space Needle처럼 전망대로 만들어진 곳이라면 모를까 이건 기념관에 어울리지 않게 혹을 가져다가 붙여 놓은 것처럼 옥의 티처럼 느껴졌다. 

 

 

국가의 아버지, 국부라고 불리우며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이지만 그를 기념하는 이 기념관은 그의 이름을 빌려와 영광을 나타내고자 했지만 그저 과시에 지나지 않는 건물이 되어 버린 듯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 정식 이름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보다는 "조국의 제단"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일단 크고 웅장하며 멋지게 장식해 놓으면 일단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눈에 확 띄는 건물이지만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동떨어진 건물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점점 구시대의 유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난 후 이제는 아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건물 목록에서 빼버리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다니 무조건 크고 웅장하다는 규모가 전부는 아닌 것 같아 씁쓸함이 남아 있게 된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창문 너머에 갑자기 나타난 건물에 "헉"하고 첫눈에 놀라긴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냥 그 첫인상이 전부였던, 주변은 전부 고대 로마 유적들로 가득한데 혼자만 대리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어 올드카 전시장 한복판에 가져다 놓은 테슬라 사이버트럭처럼 혼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규모도 작게 아담하지만 카피톨리노 언덕에 어울어지는 건물이었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판테온에 누워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카피톨리노 미술관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카피톨리노 미술관.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나오면 바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나온다. 기념관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에 Santa Maria in Aracoeli Basilica라는 12세기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성당에 올라는 아주 긴 계단이 있다. 밑에서 올려다만 봐도 헉 하는 신음과 함께 이걸 어떻게 올라가나라는 걱정이 드는 긴 계단인데 이 성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행이도 올라갈 필요는 없다. 이건 카피톨리노 언덕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이 성당으로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괜시리 올라 갔다가 이 산이 아닌가봐.... 라는 후회를 할 필요가 없다.

 

카피톨리노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 위치해 아래쪽에서 넓게 펼쳐진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게 된다. 뒷편에 보이는 궁전들, 중앙 광장의 기마상, 계단 등 전체를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꽤나 넓고 초입부터 잘 꾸며져 있는데 이 전체를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어서인지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를 때마다 주변에 놓여진 장식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좌우에 콘세르바토리 궁전(Palazzo dei Conservatori)와 누오보 궁전(Palazzo Nuovo)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건물의 설계도 미켈란젤로이다. 정면에는 세나토리오 궁전(Palazzo Senatorio)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13-14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로마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궁전 앞에는 양편으로 펼쳐진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만큼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이 언덕 전체는 미칼란젤로의 작품으로 보면 된다. 

 

광장 안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미켈란젤로가 이 언덕/광장을 설계하면서 그 중앙에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을 놓았는데 이 기마상에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체에 공인되고 중세를 거치는 동안 로마 황제들은 반기독교적이라고 해서 많은 황제들의 조각상들이 파괴되었는데 이 기마상은 유일하게 살아 남은 황제의 기마상이라고 한다. 살아 남은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이 저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오해를 했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이 주인공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서도.

 

카피톨리노 미술관은 가야지 하는 목록에 있긴 했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미리 입장권을 예매하지는 않았더랬다. 어느날 가야 할지 정확히 정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입장권을 구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에 보르게세 미술관 표를 구하고 나서 너무 기분이 좋아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래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부터 서야 했다. 다행이도 줄이 너무 길지는 않았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어떤 것들을 주로 살펴봐야 하는지 알기위해 구글 리뷰를 읽어 보고 있었는데 한 리뷰에서 말하기를, 꼭 와봐야 할 장소,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라고 반드시 추천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입장권을 사려던 그 순간만 하더라도 사실 우측 콘세르바토리 궁전(Palazzo dei Conservatori)이 미술관의 전부라고 생각을 했고 외관은 단순 2층 건물이 불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의아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리뷰를 썼는지 나중에 알게 된다.

 

미술관 안에 들어 가면 안뜰에 거대 석상들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건 콘스탄티누스 황제.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바로 그 황제다.

 

입장권을 사고 나서 검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건너편 가방 보관소에 가서 배낭 등을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안뜰로 나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석상들의 조각들이 여기 저기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들어 오는 것은 커다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얼굴 부분, 그리고 커다란 손가락 부분인데 이들은 막센티우스 회당, 포로 로마노에 세워진 마지막 회당으로 엄청난 크기의 아치만 남은 그 회당에 있던 콘스탄티누스 조각상의 부분이라고 한다. 얼굴만 2.5미터가 넘고 전체 조각상은 12미터가 넘었을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안뜰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 가면 상당히 좁은 복도를 따라 오래된 전시 공간을 먼저 지나게 되어 있는데 로마 시대의 여러 발굴물들이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전시장 안에 놓여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을 지나면서는 살짝 실망을 먼저 하게 되는데 이런 전시만 쭉 되어 있다면 나머지 부분은 별로 재미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랜 전시 공간들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현대식 건물로 이어지는 복도가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놀랄만한 작품들이 이래도 실망할꺼야라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원본. 지금 밖에 서 있는 기마상은 복제품이다.

 

거대한 전시 공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이는 것은 카피톨리노 광장에서 보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의 원본이다. 처음부터 이 원본이 그 광장에 있었지만 비를 맞고 새들의 오물을 뒤집어 쓰기 시작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복제품을 만들어 광장에 전시했고 원본은 이렇게 안전하게 실내에서 관리를 받게 된다. 피렌체에서 다비드 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바로 눈 앞에서 자세히 볼 수 있어 반가운 상황이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는 콤모두스 황제의 반신상. 암살 후 기록 말살형에 처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유일한 상이라고 한다. 작품만 놓고 본다면 예술적 가치가 높은 반신상.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본 땄다고 한다.

 

또 다른 놀라운 조각상은 콤모두스 황제의 반신상인데 이 조각상은 로마 이야기를 다룬 어느 책을 보아도 한번쯤은 소개를 하거나 한 페이지에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는 유명한 조각상이다. 콤모두스 황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이고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그 황제다. 한국의 조선왕조 실록을 보더라도 악정을 일삼은 왕들은 정식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군이라 남겨지고 기록은 실록이라기 보다 일기라는 형식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고대 로마에서도 악행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황제는 사후, 대부분 암살로 끝나지만 소위 "기록 말살형"이라는 것에 처해 질 수 있다. 이 "기록 말살형"은 원로원에서 결정하게 되는데 원로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황제의 이름이라든가 조각상, 기록물들이 파괴된다. 딱 호적에서 파 버리는 것과 비슷해진다. 그만큼 잊어 버리고 싶다는 건데 그가 기증하거나 수리한 건물에 남겨진 이름, 명판들도 다 지워버리거나 이름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등 말 그대로 "말살"하는 행위인 셈이다. 

 

이 콤모두스 황제가 암살 당한 후 이 "기록 말살형"에 처해졌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것처럼 그랬던 것은 아니고 친누나였던 루실라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자신이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고 늘 불안에 떨었고 의심만 있어도 마구잡이로 정적들, 원로원 의원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반신상은 살아 남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가까이서 보고 있노라면 지금 보아도 우와하고 감탄사가 터져 나올만큼 잘 만들어지고 멋진, 소위 간지나는 모습이다. 늘 사진에서만 보던 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오는게 아닐까 싶다.

 

 

로마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시조로 한다. 우리로 치자면 단군 신화정도 될까.

 

한국에는 단군 신화가 있듯이 로마에도 건국 신화가 있다.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아들이라는 설정처럼 건국 신화의 시조는 대체로 그 뿌리가 신인 경우가 많다. 로마의 경우도 그 시조가 되는 두 사람,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전쟁과 농업의 신 마르스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다. 두 사람은 쌍둥이로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한 알바 롱가 (Alba Longa) 지역에서 출생했지만 바구니에 담겨 테베레 강에 버려졌으며 로마까지 흘러 내려 왔을 때 늑대가 그들을 데려가 자신의 젖을 먹이면서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늑대와 쌍둥이 아이들이 그 밑에서 젖을 받아 먹는 이런 청동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두 쌍둥이중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와의 경쟁에서 이겨 팔라티노 언덕에서 자리를 잡고 초대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국가의 이름이 로물루스를 따라 로마가 되었다. 신화적, 전설적인 인물이라서 실제 존재가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팔라티노 언덕 황궁터에 가면 로물루스가 살았다는 집터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두상. 원래 전체 전신상의 일부분이었을텐데 이제는 머리 부분만 남았다.

 

거대한 전시장 한켠에 또 다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청동 두상이 있다. 이 청동상은 안뜰에 있던 두상보다는 작아 전체 크기는 약 10미터 내외 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는데 바로 옆에 왼손 부분도 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이 두상에는 왕관이 있었고, 왼손은 사진 뒤에 보이는 구를 들고 있었으며, 지금은 사라진 오른손은 칼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라진 부분들은 중세를 거치는 동안 벌써 녹여진 후 다른 곳에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고 한다. 

 

원래 있었어야 할 왕관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벌써 이 시기, 기원후 300년쯤 되면 이런 작품을 만드는 기술이 잊혀지고 쇠퇴해 버려서인지 두상의 모습이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서 본 콤모두스 황제의 두상과 비교해 보더라도 갑자기 격이 훅 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콤모두스 황제의 두상의 경우 실존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헤라클라스의 모습을 덧붙이기 위해 각색(?)된 모습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의 얼굴 모습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 두상은 영 감흥이 오지 않는다. 확실히 그는 혼란한 로마 시대를 추스르고, 비록 로마를 버렸지만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동로마 제국이 다시 1000년간 유지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황제이긴 하다. 또한 중세를 정의할 수 있는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로 여겨지고 그 이후 이 노력 때문에 대왕 즉, Constantine The Great로 불리우며 알렉산드로 대왕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만 왠지 그런 신격화가 되어 버림으로써 흔히 현재 독재국가에서 보는 지도자의 동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나의 너무 억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의 국교가 되도록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져 중세 시대 동안 그는 기독교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살아 남긴 했지만 그는 사실 살아 생전에는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현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는 분열된 로마가 하나의 종교로 단합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를 공인한 걸로 알려져 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그가 신의 가호와 가르침에 이끌렸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닌 셈이다. 그랬다면 진작에 기독교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을텐데 그는 죽기 직전에야 세례를 받았다. 

 

 

현대식으로 꾸며진 거대한 전시실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고 돌아 나오니 지나쳐온 오래된 전시실 반대편으로 여전히 이런 저런 전시실이 이어져 있었다. 그 때부터는 약간 흥분한 마음 때문인지 전시실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콘세르바토리 궁전 자체는 밖에서 보았을 때 2층 건물이라 별로 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뒤쪽으로 부속 건물들을 포함, 현대식 전시실 등이 있어 꽤나 많은 곳들을 둘러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여타 다른 박물관/미술관들이 그랬듯이 앞에 보이는 건 요만한데 그 뒤론 엄청난 것들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콘세르바토리 궁전을 한바퀴 다 돈 다음 안뜰 부분으로 내려 왔는데 거기에 지하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는 걸 알았다. 하루 종일 걸어다닌지라 조금은 피곤해서 지하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내려 갔다. 내려 가니 긴 복도가 있었고 거기에는 고대 로마 시대 각 무덤들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로마 시대 사람들은 보통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로마 가도 주변에 무덤을 만들었다는데 거기에 비석 명판에는 자신의 신념, 살아 있는이들에게 주는 교훈들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팍스 로마나, 즉 로마에 의한 평화를 누리고 있던 때라면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을테고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낙관적이게 된다. 그래서 그 명판에는 희화적인 표현도 많다고 한다. 

 

아주 긴 복도여서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쯤에서 돌아 나오려는데 화장실 표시가 있어 그 긴 지하 복도를 끝까지 가게 되었다. 그 끝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옆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아무런 출입 금지 표지도 없고 그냥 평범한 계단이길래 궁금해서 올라가 봤다. 그랬더니 거기가 바로 누오보 궁전(Palazzo Nuovo)이었다. 카피톨리노 미술관은 두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연결은 이 지하 통로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구글 리뷰에 카피톨리노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난 이제 겨우 미술관의 반만 본 것이었다!!!!

 

어떤 곳을 방문하기 전에 비교적 그 방문지에 대해서 이것 저것 찾아 보고 미리 정보를 쌓은 다음에 가는 편이지만 이 카  피톨리노 미술관의 경우 방문하겠다는 것만 생각하고 스케줄을 못 잡은 관계로 미리 알아 보지 못했더랬다. 그래서 이 두 궁전이 하나의 미술관이고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로 몰랐던 것이고 정말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셈이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어디에 설명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디 안내도가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라서 당연히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이미 시간이 너무 지체 되어 누오보 궁전 쪽은 자세히 둘러 보지 못하고 간단히 지나쳐 왔는데 혹시라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이 있다면 정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미술관 방문 계획을 세우기를 추천한다. 구글 리뷰가 괜히 리뷰가 아니다. 

 

 

누오보 궁전에 단독 전시실에 놓여 있는 비너스 상. 다른 조각상과는 달리 이 작품은 이 독방에 전시가 되어 있고 그 방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카피톨리노 비너스"라고 불리우는 이 동상은 당시 "겸손한 비너스 (Modest Venus)"라고 알려진 비너스 조각/그림의 형식을 보여 준다. 이 형식은 두 손의 위치로 특징지어 지는데 한손은 가슴을, 다른 한손은 국부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도 같은 손 위치를 가지고 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조사하면서 기억을 더듬기 위해 Google Maps를 많이 참고 한다. 그 장소의 이름, 지나친 광장, 건물의 이름, 그리고 그 때의 모습을 되돌려 보기 위해. 종종 Street view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미처 사진에 담지 못했던 길가의 모습들과 그 때 거기 뭐가 있었더라를 되집어 보기 위함이다. 지금 카피톨리노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 때 두 궁전들의 모습이 어땠더라 되돌아 보기 위해 Street View를 끄집에 냈는데 카피톨리노 미술관의 경우 외부 길에 대한 Street View 뿐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Street View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 하고 조각상들을 실제 Street View를 통해 볼 수 있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Street View로 투어를 떠나 보시기를.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뒷편 길을 따라 내려 오면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이렇게 보인다. 로마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 본다.

 

 

 

로마 공항으로

 

카피톨리노 미술관을 빠져 나와 세나토리오 궁전의 측면으로 돌아 가면 포로 로마노를 우측에 두고 카피톨리노 언덕을 내려 올 수 있고 "황제들의 거리"에 다다른다. 이제 저녁 6시 정도가 되었고 서서히 저녁을 챙겨 먹고 짐을 찾아 로마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멀리 가지 않고 콜로세움을 방문했던 날 우연히 찾았던 그 식당, La Nuova Piazzetta에 다시 가기로 했다. 지난 번과 같은 seafood pasta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맛있었고 푸짐했다. 그렇게 로마에서의 일정이 다 끝났다.

 

호텔로 가는 길도 식사 후 저녁 산책 정도로 느껴질만큼 한겨울임에도 춥지도 않았고 쾌적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임을 아는 듯 로마는 그렇게 끝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호텔에서 맡겨둔 짐들을 찾고 로마 공항으로 내려갈 Leonardo Express의 티켓도 App으로 예매하고 Roma Termini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아쉬웠지만 확실히 요즈음에는 여행을 할 때마다 달라진 느낌이 있다. 예전엔 한번 오고 나면 어떻게든 짠물 단물 다 빨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전투적으로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부지런 떨었었다. 그러다 보니 길던 짧던, 여행이 끝나고 나면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아니라 그냥 바쁘게 움직였던 기억만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쉬거나 즐기러 온 여행이 아니라 전투적으로 바빴던 여행이었던 셈이다. 아마 그 때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지금보다는 더 없었고 여럽게 왔으니 하나라도 놓치면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못 보고 못 해 봤으면 다음에 또 와서 보고 해 보지 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행기를 쓰면서 자꾸만 돌아가 이거 해 봐야지, 여기 가 봐야지, 아니면 또 그 곳에 들려 봐야지 하고 북마킹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몇년 후 다시 돌아 올 수 있을지, 여행도 젊어서 해야 한다는데, 그 때는 그렇게 돌아 다닐 기운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막내까지 대학 가고 나면, 그리고 은퇴할 때가 되면 이탈리아, 로마 한달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와이프랑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열심히 살면 가능하겠지? 그렇게 또 와야지, 그 때 다시 보자... 라는 인사를 남기고 로마에서 공항으로 출발한다.

 

 

 

로마, 이탈리아에서의 출발은 아침 7시 45분 비행기라 맨처음에 언급했듯이 공항 내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Leonardo Express는 이제 어두컴컴해져 창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철로를 따라 공항역으로 들어 섰고 짐들을 끌고 HelloSky 호텔을 찾아 갔다. 호텔 위치는 대강 지도에서 찾아 보기도 했고 도착하는 날 지나 가면서 방향 표지판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호텔은 우리처럼 새벽 국제선을 타는 사람이거나 layover가 길어 오래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해서인지 전체적으로 고급스럽지는 않았다. 호텔 모양은 상당히 특이했다. 입구는 호텔 프론트와 더불어 내부는 유료 라운지 역할도 함께 하는 곳이었고 호텔방들은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복도가 도넛 모양의 둥근 원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좌우로 방들이 위치해 있는데 크기는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침대는 왠지 간이침대 같은 느낌이었고 샤워실도 조금은 낡은 듯한 느낌이었다. 공항 건물 바로 건너편, 주차장 사이에 위치해 공항까지 걸어서 1분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지만 순간 좀 더 걷는 거리라도 Hilton Rome Airport를 선택했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더랬다. 하루 잠시 머무는 곳이라 다행이지만 계속 머무르면서 여행을 할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로마,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날은 마무리 해 본다.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가 보자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