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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로마 여행 2023년 12월

이탈리아 여행기 - 다섯째날 폼페이 유적지

by 피터K 2024. 4. 5.

 

폼페이, 과거로의 여행

 

고대 로마에 대해서 어떤 동경을 가지게 된 계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였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고대 로마의 모습을 글로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너무 시각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이런 시각적인 모습을 채워주는 영화, 드라마들이 나오게 된다. 1960년 작품인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를 보지는 못했지만, 2000년 작품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당시 로마군이 게르만족들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그리고 주인공이 로마에 도착해 처음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상상 속의 고대 로마가 하나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에 나온 콜로세움에는 맨 꼭대기에 천막 같은 가리막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서 인상적이었데 나중에 그게 실제 고증을 거쳐 당시에는 실제로 저런 천막 가리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우와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게 영화 미술 감독이 그냥 더해 넣은 모습으로만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가리막은 배의 돛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설치할 때마다 미세노 군항에 있는 해군 병력이 동원되어 설치하고 펼쳤다고 한다.

 

그 외에도  Starz라는 미국 방송사에서 2011년 만든 "스파르타쿠스"라는 TV 미니 시리즈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은 과장된 검투사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고 영화 "300"의 영향으로 멋진 슬로우 모션의 검투사 장면으로만 짜여져 있어 정말 고대 로마가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절벽 위에 위치한 검투사 양성소라니.

 

더 오래된 영화들, "벤허" (1959년), "클레오파트라" (1963년) 등은 CG라는 것이 전무하던 시절, 그 모든 세트를 직접 만들어 엄청난 규모를 보여 주지만 왠지 그 모습은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과장되고 보여 주고 싶은 화려함으로만 채워진 모습인 것 같아 아쉬움으로 치자.

 

이런 드라마, 영화는 사실 주인공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보고 싶던 고대 로마의 모습은 주인공 뒤에 서 있는 배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만나게된 드라마가 2005년 HBO에서 만든 "Rome" . 당시에는 몰랐고 한참 뒤에 알게 되어 보게된 두 시즌, 총 22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미드(미국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기존의 모습과 달랐던 것은 정말 당시 일반 로마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귀족, 왕족들의 사는 모습 뿐만이 아니라 중산층들이 살았던 수부라의 모습, 그리고 온갖 민간 신앙을 믿는 모습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얼마나 고증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 시대에는 그렇게 살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릴리에서 성공해서 삼두 정치의 다른 정적 폼페이우스를 물리치고 독재자 자리에 오른 후 암살 당하는 것이 시즌 1의 내용,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되어가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이기고 첫번째 황제가 되는 것이 시즌 2의 내용이다. 이 내용만 보면 다른 여타 드라마, 영화와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했던 건 주인공이 이 역사의 주인공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기"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로마군단병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된, "루시우스 보레누스 (Lucius Vorenus)" 그리고 "티투스 풀로 (Titus Pullo)"라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두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닌 일반 로마 시민으로 군단병이었으니 그들의 일상 생활, 즉 평범한 로마 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도 결국 화면 속의 모습, 그리고 그랬을거야라는 상상이 더해진 모습일 뿐이다. 정말 저렇게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에 가면 정말 그 시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바로 "폼페이 (Pompei 혹은 Pompeii)"이다.

 

폼페이는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화산재에 묻힌 시기가 서기 79년 8월 24일. 오현제로 추앙 받으면서 가장 번성했던 시기 바로 전 티투스 황제 시절에 발생했다. 원래 일반 도시가 아니라 로마 상류 계급 사람들이 별장을 주로 건설해서 사용하던 휴양 도시였기 때문에 발굴한 내용을 보면 눈에 띄게 화려한 장식을 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처음 발견은 1592년이라고 하지만 체계적인 발굴이 아닌 약탈이 대부분이었고 1861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 국왕 엠마뉴엘 2세에 의해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100% 다 발굴이 된 것이 아니라 전체 면적의 1/5 정도가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은 진행형 유적지이다.

 

그렇게 로마에서 두어시간을 가면 그 화려했던 당시의 로마 시대의 모습으로 걸어 들어 갈 수 있게 된다.

 

 

폼페이 가는 길

 

이탈리아/로마 여행을 계획하면서 피렌체를 제외하고 로마에 있을 때 반드시 가 보고 싶었던 곳은 세 곳. 하나는 어제 다녀온 바티칸. 두번째는 포로 로마노, 그리고 마지막은 이 폼페이. 다른 두 장소는 로마에서 걸어가면 되지만 폼페이는 한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 출발하기 전에 정보, 특히 이동에 관한 정보를 많이 찾아 보았다. 낯선 곳에서 이동하는지라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등 최대한 알아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찾아 보았다. 늘 도움이 되었던 여행 책자, 그리고 여러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까지.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차라리 바티칸 투어처럼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볼까도 알아 보았다. 그러면 오전 7시 30분에 Roma Termini 근처 장소에 모여 투어 버스를 타고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 약 3시간쯤 머무른 다음에 돌아 오는 코스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가이드 투어는 일찌감치 포기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시간에 쫓겨서 다녀야 한다는 것과 폼페이에 단지 3시간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부닥쳐 보자. 그런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Rick Steves의 "Best of Italy" 책자에 로마에서 폼페이로 가는 여정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Roma Termini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 중앙역, Napoli Centrale에 도착, 거기서 지하도를 따라 나폴리 가리발디역, Napoli P. Garibaldi에 도착, 거기서 로컬 기차를 타야 하는데 그 종류가 세가지가 있고 그 중에 어떤 걸 타면 되고 내릴 때는 Pompei역이 아닌 Scavi Di Pompei 역에 내려야 한다... 는 것이 자세한 여정이었다. 나머지는 쉬운데 중간에 로컬 열차 종류가 있고 그 중에 뭐를 타는 것이 좋고... 하는 부분에서 아이구야 싶었다. 이걸 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잘 할 수 있겠지....?

 

이탈리아에서의 다섯번째 날,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열차편을 알아 보았다. Roma Termini에서 키오스크로 열차표를 사면 PIN 문제 때문에 역시나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엔 유튜브에서 보았던 Trenitalia app을 다운 받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기본 아이디,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동반자 정보도 따로 입력할 수 있었고, 앞서 말했듯이 각 티켓별로 이름과 생년월일을 전부 넣어야 했기 때문에 app에서 한번 입력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선택만 하면 되어 훨씬 쉬웠다. 게다가 Apple wallet이나 Google wallet 같은 형태로 티켓이 app에 저장되어 scan 하는 것도 편리했다. 그래 진작 이렇게 할걸.

 

이번엔 비교적 간단하게 app으로 Napoli Centrale까지가는 열차 티켓을 구매하고 Roma Termini로 출발했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직행 고속 열차를 이용하면 1시간 13분이 걸린다. 시원하게 벌판을 가로 지르기도 혹은 중간 중간 긴 터널을 지나기도 하면서 화창한 이탈리아 중심부를 달려 나갔다. 날씨가 화창한 것이 제일 반가웠는데 폼페이는 야외이다 보니 비가 오거나 하면 아애 입장이 안 된다고 한다. 거의 30년 전 배낭 여행을 왔던 와이프에 따르면 당시 유적지를 돌아 다니던 중 비가 오기 시작하자 다들 유적지에서 나가야 했었다고 한다. 어렵게 시간 맞추어 미리 입장권까지 사 두었는데 날씨 때문에 입장을 못한다면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Napoli Centrale는 Roma Termini의 소형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플랫폼을 빠져 나와 지하도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Napoli P. Garibaldi 역 표지판을 따라 지하도를 한참 걸어 갔다. 지하도가 끝날 때쯤에 Napoli P. Garibaldi 역이 나왔는데 딱히 특별할 것이 없이 우측에는 매표소 창구, 좌측에는 개찰구가 있었다. 그 모습만 보면 흔한 서울 어디쯤 지하철역 같다. 여행 책자에서 여러 종류의 열차가 있고 어느 열차를 타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막상 그런 건 필요없고 매표소에서 가장 빠른 Scavi Di Pompei 역 표를 달라고 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Scavi Di Pompei 역이 있고 그냥 일반 Pompei 역이 따로 있다라는 것이다. 전자는 폼페이 발굴지/유적지 역을, 후자는 현재 자리 잡은 폼페이 도시역을 의미한다. 

 

여행 책자의 복잡한 설명 때문에 고민했던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고 일단 Scavi Di Pompei 역으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쥐었다. 개찰구를 통과해서 다시 한층을 내려 가면 거기에 플랫폼이 있었는데 플랫폼 자체는 지하차도처럼 생겼다. 문제는 여러 플랫폼이 있었는데 티켓 상에 정확한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주변에 묻고 나서 제대로 된 플랫폼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5분쯤 기다린 것 같은데 시간에 맞추어 플랫폼에 들어온 열차는 다섯량이 채 안 되어 보였던 낡은 기차였다. 얼마나 낡았는지 여기저기 페인트는 벗겨져 있었고, 열차 안 자리도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더욱 가관은 열차가 달릴 때 내는 소리. 얼마나 쿵쾅거리며 달리는지 30년 전 타 보았던 무궁화호보다도 더 덜컹거리며 달렸다. 여행 책자에 따르면 이 노선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사철, 즉 민간 업체에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냥 낡은 모양 그대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대체로 소렌토/폼페이와 나폴리 사이의 통근/통학 노선으로 사용된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덜컹거리며 30분 정도를 가면 드디어 Scavi Di Pompei 역에 도착한다. 안내 방송이 나오긴 했으 빠르게 이탈리아어로 방송하느라 사실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고 Google Maps를 켜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가 가까워졌을 때 내릴 준비를 해서 내릴 수 있었다. 

 

Scavi Di Pompei 역은 정말 어디 시골 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부 대합실은 커봐야 500 sqft도 안되어 보였다. 한해 250만명이 방문한다는 관광지의 역 치고는 정말 볼품 없었지만 어쩌면 화려하지 않았던 것이 더 인상 깊었다고 생각한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는 역에서 나와 2-3분만 걸어 모퉁이를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드디어 먼 길의 여정 끝에 타임머신의 입구로 들어 선다.

 

폼페이 유적지에 들어 가는 입구는 크게 두 군데가 있는데 이 곳이 바로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입구이다. 이쪽 방면이 폼페이에서 보면 항만쪽 입구라 입구 이름이 Porta Marina, 해안 입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도착하는 과정이나, 정말 아무런 꾸밈없는 시골 역사, 그리고 평범한 그 자체인 유적지 입구. 이것들만 모아 본다면 그냥 어느 시골 장터에나 가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마치 영화의 어느 미지의 포털처럼 그 입구를 들어서고 나면 그 평범함이 순식간에 2000년이란 시간을 건너가게 해 준다. 그렇게 현재는 잊고 그 때 어느 순간으로 들어간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렇게 언덕 위 유적이 펼쳐진다. 오른쪽 사람들이 오르고 있는 길이 근처 항구에서 폼페이로 들어 가는 입구라고 한다. 좌측 언덕 중간 유적은 여러 개의 공중 목욕탕 중 하나이다. 이 모습만 보았을 때는 저 너머로 얼마나 많은 모습이 펼쳐져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이미 제작자, 감독의 상상이 더해져 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으로 현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의 상상과 시선을 걷어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반대이다. 현실을 보면서 나의 상상을 더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겉모습을 보면서 비어 있는 부분을 나의 상상과 시선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모든 것이 완성된다. 그런 심정으로 무심하게 깔려 있는 그 때의 도로를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 간다.

 

유적지 입구는 아래로 먼저 내려간 후 거기서부터 다시 오르막을 통해 유적지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오르막의 중간쯤 좌측에 시 외곽의 공중 목욕탕 유적이 있어 먼저 여기를 둘러 볼 수 있다. 한국의 온돌과 같은 형식으로 온수탕의 온도를 조절했다고 하며 그 유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유적지 탐방을 하기 전에 살짝 맛보기랄까. 남은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큰 문, 좌측으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문을 통해 이제 본격적으로 폼페이 성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문에서 조금씩 멀어질수록, 그리고 앞서 다가오는 집과 집들 사이의 골목이 다가 올수록 마치 걸음걸음마다 시계가 꺼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비너스 신전 유적과 아폴로 신전 유적 사이를 지나 거대한 포룸을 만나게 되면 이제 완전히 서기 80년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비너스 신전터. 비너스는 폼페이의 수호 여신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포룸 (Forum). 말하자면 중앙 광장인데 로마 시대 도시 중앙에는 항상 이런 광장, 포룸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장사하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재판도 열리는 장소이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혹은 영어로 로만 포룸(Roman Forum)은 말 그대로 로마의 중앙 광장인 셈이다.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그 베수비오 화산. 저 화산이 폭발하면서 이 전부가 화산재에 묻힌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수비오 화산이 정말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오후 1시에 폭발했다고 했으니 당시 이 광장에 서있던 그 누군가는 그 폭발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을까.

 

광장, 포룸에서 동쪽 방향으로 길게 뻗은 매인 도로. 가운데 큰돌이 깔린 길은 마차가 다니는 길. 그래서 자세히 보면 마차 폭만큼 돌이 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쪽에는 인도가 따로 놓여져 있고 중간 중간 징검다리처럼 이쪽 편에서 반대편으로 건너 갈 수 있는 돌이 놓여 있다.

 

 

사실 상 폼페이의 탐험은 이곳 포룸에서 시작한다. 포룸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주피터 신전 유적을 바라 보고 있으면 그 뒤로 위풍당당한 베수비오 화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마치 난 아무 잘 못 없어라는 투로 시치미를 떼며 뒤돌아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날의 화산 폭발로 인해 이 도시가 그렇게 잠겼고 이렇게라도 당시를 걸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고 평화롭게 지내던 사람들을 그렇게 묻어 버린 잘못을 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일단 동쪽 방향으로 난 매인 도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는 말이야...

 

처음 큰 대로를 걷기 시작하면서 지도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대체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적지 입구에 있던 지도 두장을 챙겨 오긴 했는데 서로 둘러 보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둘째와 와이프가 지도 한장을 들고 어느 방향으로 먼저 사라져 버렸고 난 막내와 함께 포룸을 둘러 보며 사진을 찍다가 큰 아이와 셋이 남았다. 큰 아이가 지도를 들고 있었지만 중간에 화장실을 찾으러 가버리는 바람에 나와 막내는 지도도 없이 그냥 큰 도로를 따라 중간 중간 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들을 구경하며 앞으로 나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도가 없으니 이 곳이 얼마나 큰건지, 내가 어디쯤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냥 유적지의 큰 도로, 혹은 그 사이사이 샛길만을 돌아 다니며 집들을 밖에서만 보았으면 정말 실망했을텐데 다행이 발굴이 끝난 집들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각 집들에서 어떤 특이한 벽화나 조각상, 특이한 구조 등이 발견되었으면 그 그림의 장면이나 조각상들의 이름을 따서 집에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일부는 설명이 있어서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로마 주택의 기본 구조는 입구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가게가 있고 공적인 바깥 구역, 사적인 안쪽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입구 양편에 있는 가게 중에 종종 이런 화구가 있는 가게가 있다. 맞다. 음식물을 파는 가게이다. 간단한 요기거리 등을 팔았다고 한다.

 

 

한 구역의 집들을 돌아 다니다 보면 집들이 모두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집 입구 현관을 기준으로 좌우로 조그마한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주로 집 주인이 세를 준다고 하고 일상 잡화를 파는 가게부터 간단한 식사를 파는 가게까지 골고루 있었다고 한다. 그 가게 사이를 지나 현관 안으로 들어 가면 일단 중앙에 네모난 연못을 만나게 된다. 지붕은 보통 이 연못 쪽을 향하게 기울어져 있어 비가 오면 이 연못 안으로 물이 고인다고 한다. 이 구역이 집의 바깥 구역, 즉 공적인 구역이 된다. 여기에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들이 모여 있다. 로마 시대에는 인맥이 상당이 중요했는데 흔히 파트로네스 (후원자) 그리고 클리엔테스 (피후원자)라고 부르는 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  파트로네스는 자기를 따르는 이들, 즉 클리엔테스들의 여러 민원과 편의를 도와 주고, 클리엔테스들은 파트로네스가 지원이 필요할 때, 예를 들어 선거에 나가거나 전쟁에 나가는 경우 기꺼이 그들을 도와 주는, 서로 서로 공생 관계이자 로마 시대에는 당연한 사회적 관계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클리엔테스는 파트로네스의 집을 찾아 자신의 민원과 필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고 파트로네스는 오전 시간에 이들을 만나 민원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게 당연한 일과였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집의 이런 바깥/공적 구역이 필요한 것이다. 귀족 집안이거나 많은 클리엔테스를 거느리는 명문가 일수록 집의 바깥/공적 구역이 크고 화려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파트로네스는 지금의 영어 patron, 클리엔테스는 영어 client의 어원이 되었다.

 

집의 바깥 구역은 다시 다른 입구를 통해 더 안쪽으로, 집의 안쪽 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는 집 주인, 가족들의 사적인 공간이다. 각 가족들의 개인 침실, 사무를 보는 서재, 식당과 부엌이 중앙에 위치한 작은 정원을 기준으로 사방을 채우고 있다. 지붕은 같은 방식으로 이 작은 정원 위로 뚫려 있어 햇살을 받아 들이게 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경우 처마밑 작은 방들은 그 집의 노예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바깥/공적 공간과 안쪽/사적 공간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네모난 구역과 입구 현관 양편의 가게. 이런 형태는 폼페이 유적 내 거의 모든 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선명한 벽화가 남아 있는 집. 색이 바래지 않았던 때에는 얼마나 화려했을까.

 

라틴어로 도무스(Domus)는 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위 내용은 누구누구의 집이라는 뜻이다. 당시에 저런 문패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발굴 될 때마다 주인을 알 수 있으면 이렇게 집 주인 이름을 붙여 놓았다. 벽에 아주 우스꽝스럽게 생긴 장식이 하나 있는게 참 흥미로웠다.

 

자칫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그림/벽화이지만 그 당시였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화려하지 않았을까. 상류층의 휴양 도시였기 때문 이렇게 벽화로 장식될 집/방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산재에 파묻힌지 거의 2000년이 되어 가는 곳을 발굴, 저만큼 복원해 놨다는게 정말 대단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지금 봐도 화려한데 당시엔 얼마나 멋졌을까. 내가 이 집 주인이라면 매일 매일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랑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을 것 같다.

 

몇몇 집들을 방문해 보면 아주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방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래고 그리고 화산재에 묻혀 있었던 걸 발굴해 내 복원해 놓았다는 걸 생각하면 저만큼이라도 되살려 놓았다는게 믿기지 않게 활력에 차 있다. 그 당시 그 색채 그대로 장식되어 있었다면 그 어떤 곳보다도 아름다웠을 것 같다.

 

이렇게 한집 한집 건너 다니던 중 상당히 큰 집 하나를 보게 되었다. 크기로만 따지자면 거의 포룸의 절반 크기로 한 구역 전체를 다 차지하는 집이었다. 크기가 3000 제곱미터라고 하니 900평이 넘는 집이다. 그 집은 House of the Faun이라고 불리우는데 포룸에서 북쪽으로 한구역만 올라가면 바로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 집에서 Faun, 상체는 양의 뿔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고 하체는 양의 모습을 한 신화적 생명체의 동상이 발견되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 규모에 우선 놀라게 되지만 안쪽 뜰에서 정말 뜻하지 않은 바닥의 모자이크를 발견하면서 이 집의 가치는 놀라움 이상이 되어 버린다.

 

폼페이의 큰 집들 중에 하나인 House of the Faun인데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 구경하다가 뜻하지 않은 모자이크를 하나 발견했다. 어, 뭔가 익숙한데 하고 바라 보다가 우어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모자이크 장식의 좌측 끝부분의 그림으로 알렉산더 대왕을 검색해 보면 이 이미지가 대표 이미지로 뜬다. 그래 바로 이 폼페이 한복판 어느 집 바닥에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 이 모습이.... 정말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복제품이고 원본은 나폴리 국립 박물관에 전시중이라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기원전 2세기의 전투를 묘사한 모자이크. 그런데 이 알렉산더 대왕의 모자이크는 Google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검색하면 첫번째로 뜨는 그 이미지이다. 예전에 이 이미지를 보았을 때 벽화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모자이크였고 그것도 이 폼페이 한가운데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폼페이 유적지의 여러 화려한 벽화들의 놀라움에 잠시, 이 모자이크 한 조각은 놀라움을 경이로 바꾸어 버린다.

 

 

로마식 도시 폼페이

 

폼페이 유적지가 놀라운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의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묻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로마 시대에 도시 생활은 어땠는지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로마시대 도시에는 이런 그리스식 반형 극장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원형 경기장. 포룸 광장에서 뻗은 큰 길을 따라 걸으면서 집들을 하나씩 구경하다가 이제 좀 슬슬 질려갈 즈음 모퉁이를 돌아 서니 떡 하고 모습을 드려내었다. 아무리 작은 로마 도시라도 검투사 시합이라든가 각종 오락 제공을 위해서 하나씩을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떡하고 마주하게 될지는 몰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폼페이의 집들은 거의 구조가 같기 때문에 특별히 장식된 벽화가 있는 집이 아니라면 큰 길을 따라 2/3 정도 내려 오면 서서히 지겨워질 때가 된다. 그 때 아무 생각없이 다른 골목을 통해 다시 돌아 가야지 하면서 꺽은 모퉁이를 따라 조금 내려 갔을 때 뜻하지 않은 이 원형 경기장을 만났다. 이때 다시 정신이 바짝 들면서 그래 내가 아직 이 유적지를 제대로 다 본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만 더 기운내서 돌아 보자!!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내부도 살펴 볼 수 있다. 2000년 전에 이런 규모의 원형 경기장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원형 경기장을 외부에서 보면 외부에 나 있는 계단 부분은 막아 놓은 상태여서 올라가 볼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좀 있었다. 그렇게 그 원형 경기장 외각을 따라 걷던 중 저 멀리 화장실 표시가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그 곳이 폼페이 유적지의 두번째 입구였는데 이쪽은 현재 폼페이 도시에서 들어 오는 방향이라고 들은 것 같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계속 그 방향으로 걷다 보니 원형 경기장을 반쯤 돌았을 때 원형 경기장의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다니고 있었다.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내려 갈 수가 있어 원형 경기장의 그 경기장 바닥으로 가 볼 수가 있었다. 화장실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미처 보지 못했을 입구였다. 그 때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게 다행이랄까.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

 

폼페이 유적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면 당시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캐스트/석고상을 빼 놓을 수 없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도시 인구의 10% 정도인 2000명 정도가 화산재와 함께 당시 시간에 붙잡혀 버렸단다. 의외로 이 베수비오 화산에 의한 폼페이의 참극은 기록으로 잘 남아 있다. 화산이 폭발할 당시 나폴리 근처 군항으로 사용되던 미세노에 있던 소 플리니우스가 나중에 역사가 타키투스의 요청을 받아 그날 그가 겪었던 일들, 화산 폭발로 인해 도망가던 모습, 미세노 군항의 제독이었던 자신의 숙부 대 플리니우스가 군함들을 이끌고 사람들을 구조하러 나갔다가 질식해서 죽은 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편지로 남겼기 때문이다. 소 플리니우스가 문학가, 철학자, 법학자로 유명한 사람인지라 그의 기록은 마치 기록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그의 편지를 거의 그대로 번역해서 옮겨 놓았으니 참고해 보면 된다.

 

그 이후 간간히 약탈이 일어났고 일부 발굴이 시작되었지만 19세기나 되어야 본격적으로 발굴이 가능해졌고 발굴하는 과정 중에 중간 중간 빈 공간을 발견하고 석고를 부어본 결과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얻어 낼 수 있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람들의 석고상은 지도 상에 중간 중간에 표시 되어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상 두 군데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원형 경기장과 반형 극장 사이 집터 한 구석에 유리로 된 전시실이 있어 거기에 여러 석고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번째는 원형 경기장 앞 커다란 운동장(140m x 140m)과 주변을 벽과 구역들이 둘러 싸고 있는 건축물이 하나 있는데 그 회랑을 따라 만들어 놓은 전시장이 있다. 내부에는 당시 생활상을 보여 주는 물건들과 당시 사람들이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한편에 상태가 제일 좋은 석고상이 하나 놓여 있다. 삶과 죽음을 한번에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죽음의 순간을 나타내고 있는지라 편안하게 누워있는 것이 아닌 조금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누워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어린 아이 크기의 석고상을 보고 있으면 안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원형 경기장 앞에 유물들을 모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에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주거 시설에서 살았는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침대 모양을 복원해 놓은 것등등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내용들이 많다. 거기에 이렇게 완벽한 석고상이 전시되어 있다. 키는 5 피트에서 5피트 10인치 (150-160센티 미터) 정도인데 안내문에 성인 여자(남자였나...)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폼페이 석고상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연인으로 알려진 두 사람이 서로를 꼭 껴 안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실은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남자 두명인 걸로 확인되었다. 이건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까. 스포일러!!

 

 

다시 로마로

 

12시쯤 도착해 역에 바로 붙어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유적지로 들어선 것이 1시쯤. 유적지 문은 5시에 닫는다고 해서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내가 간과하고 있던 점은 폼페이 유적지라는게 원래 폼페이 시 전체라는 것이었다. 결국 반정도 둘러 보고 나니 벌써 5시가 가까워져 왔고 아직 가 보지 못한 부분을 절반이나 남긴채로 어쩔 수 없이 유적지를 나서야 했다. 나머지 반을 못 봤으니 또 와야지 하는 핑게 하나 더하기로 하고.

 

 

전체 유적지 지도 빈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아직 발굴을 하지 못한 공간이다. 좌측 아래쪽에 붉은 점과 다른 검은 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 기차역 바로 옆 입구, 우리가 들어온 입구이고 우측 끝 원형 경기장 밑에 다른 붉은 점과 검은 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다른 쪽 입구이다. 좌측 위쪽으로 당시 누군가의 별장인 villa가 하나 있는데 미처 거기까지 가 볼 시간이 없었다.

 

기차역으로 되돌아 왔을 때쯤이면 벌써 어두어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역사 창구에서 나폴리 역까지 기차표를 샀는데 역무원이 기차표를 바로 주지 않고 창구 밖으로 나와 벽에 걸려 있는 어느 기계에 표를 하나씩 넣고는 validation 같은 것을 했다. 이게 아마도 내가 여행 책자에서 읽어 본 그 이야기인 것 같았다. 20분 정도 기다려 나폴리 역, 정확하게는 Napoli P. Garibaldi 역까지 무지막지하게 덜컹거리는 구식 열차를 타고 돌아 왔다. 왔을 때와는 반대로 지하도를 따라 Napoli Centrale로 이동, 고속열차를 타고 Rome Termini로 돌아 왔다. 한번 app을 설치해 놓으니 폼페이 역에서 기다릴 때 도착 시간에 맞추어 열차표를 미리 사 놓을 수가 있었다. 일단 한번 경험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쉬울 수 밖에 없다. 늘 처음이 어려울 따름이지.

 

 

이렇게 정말 길고 긴 시간 여행을 마치고 나서 내일은 정말 고대 로마의 정수로 들어갈 준비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