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ademia Gallery (Galleria dell'Accademia)
처음 여행 계획을 잡을 때 피렌체는 3일, 실제로는 2일 정도만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피렌체 지도를 화면에 띄우고 나서 익히 들어 본 이름들 위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피렌체하면 떠오르는 것이 Duomo, 우피치 미술관, Palazzo Vecchio 등. Pitti Palace나 Boboli garden도 후보에 있었으나 강 건너에 있는 곳이라 갈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여행 책자를 보면 그 도시에서 꼭 가 보아야 할 장소들을 추천해 놓은 페이지가 있다. 내가 이번 여행에 참고한 Rick Steves의 Best of Italy라는 책도 피렌체 지역의 도입부에 피렌체에서 가 보아야 할 추천 장소들이 있었다. 게다가 각 장소들은 별 세개부터 한개까지 별점이 주어져 있었는데 이 Accademia Gallery는 별 세개를 받은 장소인데다가 맨 첫 항목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 미술관에 대해서 알아 보았을 때 미켈란젤로의.... 혹은 마이클안젤로의 "다비드"상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래서 조금 고민이 되었다. 이 곳을 넣을 건지 아니면 말지. 딱히 끌리는 곳은 아니었지만 추천 장소의 첫번째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막상 건너 뛰려니 망설여졌다. 그래도 추천 리스트 처음에 있다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피렌체의 마지막날 오전 스케줄에 끼워 넣었다.
이 날은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이므로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다 싸서 체크아웃을 하고 프론트 데스크에 캐리어를 맡겼다. 그리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Accademia Gallery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역시 걸어서 10분. Duomo까지 걸어서 가서 Via Ricasoli라는 길을 따라 쭉 걸어 가기만 하면 된다. 미술관도 어떤 거창한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무런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쳐갈 그런 곳이었다.
미리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ticket office에 가서 예매한 내용을 스캔하고 실제 표로 새로 발급 받았다.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겨울철 비수기라서 그런지 따로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 할 수 있었다. 미술관의 첫번째 방에는 주위로 커다란 성화들로 가득차 있고 중앙엔 잠볼라냐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석고 상이 자리하고 있다.
예수의 수태고지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내려와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리는 장면), 아기 예수와 성모마리아 등 신약성서의 이야기들 중에서 자주 반복되는 그림이나 동상의 주제가 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도 여기 뿐만이 아니라 로마의 다른 미술관을 가 보더라도 하나쯤은 보게 되는 주제이다.
로물루스와 그 동조자들이 로마의 언덕에 처음 도시 국가를 만들고 주변을 정복해 나가던 중 자기네 무리에는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 부족들 중에 사비니 부족을 축제에 초대한 다음 그 부족의 여인을 납치하기로 했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로물루스의 신호에 따라 모두 30명의 여인을 납치 했는데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헤르실리아만 유부녀였고 나머지는 모두 처녀였다고 한다.
자기 부족의 여인들을 빼앗긴 사비니 부족이 복수를 하러 로마로 쳐 들어 왔는데 이 사비니 여인들이 한쪽은 자신들의 아버지들이고 다른 한쪽은 이제 자신들의 남편인지라 그 싸움 중간에 나서 중재를 했다고 한다. 결국 사비니 부족은 로마로 이주해 카피톨리노 언덕에 정착했단다.
로마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빼 놓을 수 없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르네상스 시대에 이 사건에 대한 그림과 조각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 잠볼라냐의 작품이고 이 곳 Accademia Gallery의 첫 전시실 한 복판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로 번역한 작품의 영어명은 "The Rape of the Sabine Women"으로 되어 있다. 고지식하게 영어 단어를 해석하자면 "강간"이 되는데 이 내용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느라 살짝 난감했다. 이런 영어 번역은 원래 라틴어 "raptio"에서 와서 그렇다는데 고대에는 이건 "납치", "보쌈"의 의미가 강했다고 한다. 암튼 유명한 내용에 비해서 빈약한 번역이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첫번째 방을 나와 첫번째 복도를 건너 돌아 서면 저 멀리 그 "다비드"상이 보인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한번 언급했듯이 원래 Palazzo Vecchio 정문에 있던 걸 이곳으로 옮겨 왔고 그 자리에 지금 있는 건 복제품이다. 사진에 같이 찍힌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이 "다비드"상이 얼마나 거대한지 깨닫게 된다.
이야기가 없는 전시물은 그냥 장식일 뿐이다. 그래서 이 거대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다비드"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이 "다비드"가 누군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알겠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다비드", 영어로 "David"는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우리에게는 "다비드"가 아니라 "다윗"으로 알려진 그 "다윗과 골리앗"의 그 "다윗"이다. 이 "다윗", "David"이 "골리앗"을 상대할 때 사용한 것이 돌팔매질이란 건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다비드"상을 보면 한쪽 어께에 뭔가를 짊어 지고 있는데 이것이 돌팔매질 할 때 사용하는 슬링 띠이다. 이걸 안다면 왜 "다비드"상이 저런 모습인지 이해 할 수 있다.
"다비드"상이 유명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 내가 느낀 점은 이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디테일이 잘 살아 있다는 것이다. 손등 위의 근육과 핏줄, 어께, 가슴에 보이는 근육의 모습들은 내 유치한 표현으로 나타내자면 금방이라고 숨을 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물을 직접 보았을 때의 장점은 사진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들 "다비드"상의 정면 포즈, 얼굴이나 손등의 세부 사진들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비드"상의 뒷태를 보신 분?
직접 가 보면 미술관 중앙 돔 아래 위치하고 있어 "다비드"상을 360도로 돌아가며 살펴 볼 수 있다. 게다가 뒷편에는 의자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비드"상의 뒷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답게 앞모습 뿐만이 아니라 뒷모습까지도 그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거기서 "다비드"의 힘껏 힙업된 그의 대둔근을 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너무 같은 것만 반복되면 아무리 명화라도 그냥 벽에 걸린 그림이 되어 버린다. 미술관의 나머지가 그랬다. 나중에 글을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보다가 이 미술관이 2016년에 우피치 미술관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에서 두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미술관이고 그냥 지쳐서 지나친 그림 몇몇들은 상당히 유명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우피치 미술관을 먼저 가지 않고 이 미술관을 먼저 왔더라면 느낌이 달랐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날 이미 너무 많은, 그리고 같은 주제의 그림에 조금은 식상해 있던 참이라 "다비드"상 이외의 것들은 당시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실망이, 다녀 와서는 아쉬움이 남았던 그런 미술관이었다.
Cathedral of Santa Maria del Fiore (Duomo)
다음 방문지는 Duomo 본당. 화창하고 햇살진 날이라면 보다 멋지게 보였을텐데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조금은 흐린 날이었다. 그래도 역시 그 위용은 어디 가지 않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Duomo 본당을 입장하는 것은 따로 입장료나 티켓이 필요하지 않다. 정문에 문이 모두 세개가 있는데 그 중에 맨 우측 문으로 입장을 하게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 가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앞에서 어느 정도 교통 정리를 해 준다. 줄 서는대로 그대로 입장하는게 아니라 한 그룹이 입장하고 나면 시간을 두고 사람이 어느 정도 나가고 나면 다음 그룹을 입장 시키고 하는 식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우측 문 앞으로 사람들이 줄 서서 입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바깥에서 보는 규모 만큼 안에 들어 가면 그 넓게 펼쳐진 내부 공간이 거대한 품으로 다가 온다. 이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는게 어쩌면 지금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때는 사람들로 가득찼을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내부에서는 따로 인상적이게 감상 할 것은 없었다. 다만 맨 앞쪽까지 다가가 돔의 내부를 감상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생각된다. 여타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로 천장화로 그 커다란 돔 내부가 가득차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돔이 너무 높이 있다라는 것이다. 나중에 시스티나 성당에 방문 했을 때 가이드가 설명해 준 것을 듣고 알게 되었지만 저런 그림의 경우 실물 사이즈, 즉 실제 사람의 사이즈로 그리지 않는다. 그렇게 그렸다가는 바닥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하나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거대한 사이즈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이건 성당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보다 2-3배는 커다랗게 만들어야 높은 곳에 설치했을 때 그나마 적당한 사이즈로 보이는 것이다.
Duomo의 패키지 중에 이 돔 꼭대기에 올라가는 패키지가 있는데 돔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경우 이 돔의 내부 외각 부분을 통해 위로 올라가게 되어 이 그림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유튜브를 찾아 보면 Duomo 돔을 올라가는 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이 그림들 옆을 지나가는 장면들을 본 기억이 난다. 다만 워낙 유명한 돔인데다가 거기에 그려진 그림이라 유명한 것이지 실제 예술적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한 사람이 전체를 완성한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기법으로 계속 이어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짜피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본당 밑에서 올려다 보면 그냥 그 자체로, 어쩌면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라도 멋져 보이긴 하다.
질이 아닌 규모로의 승부랄까.
Crypt of Santa Raparata
출구는 정문 쪽이 아니라 좌측 옆 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나가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있다. 그 밑으로 내려 가면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뒷쪽으로 당시 유명했던 주교들의 무덤이 있고 이 Duomo의 돔을 설계하고 실제 만든 필리포 브루넬스키 (Filippo Brunelleschi)의 무덤이 있다. 유명 인사만이 교회 지하에 혹은 교회 일부 구역에 묻힐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무덤이 여기 있다는 것은 그가 당시에 이 돔을 만듬으로써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이 Duomo가 생기기 전에 있던 성당 Santa Raparata의 유적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로마시대때부터 있었던 성당 Santa Raparata가 있었는데 그 위에 현재의 Duomo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전 고대의 성당을 완전 철거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기반 위에 덧붙여 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1965년부터 발굴을 통해 그 밑에 있던 이전 성당의 잔여를 찾아 낼 수 있었고 그 성당 바닥에 있던 고대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장식과 당시 성당의 벽채들을 볼 수 있다.
이 Santa Raparata 유적 입장은 무료가 아니라 Duomo 패키지에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어 그 티켓이 있으면 입장할 수 있다.
Opera del Duomo Museum
Duomo 내부의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 돔이 있는 방향 뒷쪽으로 Duomo 박물관이 있다. 원래 이 건물은 대성당 건축을 담당하던 기관이 있던 건물로 감독관, 예술가, 인부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1436년 Duomo가 완성되고 나서는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장소로 바뀌었다가 1891년 일부를 박물관으로, 1998년부터 계속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단다.
일단 박물관 안으로 들어 가면 아래 보이는 커다란 전시 공간을 만나게 된다. 완전히 Duomo로 개축해 나가기 전 피렌체 대성당의 전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거라고 한다. 여타 다른 미술관/박물관처럼 시작부터 규모로 일단 관람객을 한번 압도하고 시작한다. 나머지 박물관 구역은 사진 우측 뒷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이 박물관은 소위 말해 관람 동선이라는 것이 없다. 보통 관람 동선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방향을 따라 가면 박물관 전체를 관람할 수 있는데 여기는 미로처럼 꼬여 있어 한번 저쪽으로 갔다가 다른 곳을 보려면 다시 돌아 가거나 옆으로 빠져야 하는 등 솔직히 이 박물관의 전시 구간을 다 보고 오긴 한건지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미술품, 조각상 뿐만이 아니라 Duomo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정문의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어져 갔는지, 당시 건설을 위해서 만든 나무 모형, 실제 건축할 때 사용한 도구들, 돔을 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모형 등 조금은 색다른 것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곳이 바로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이었다.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계속 올라 가다 보면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옥상 테라스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되는데 그 테라스에서는 바로 눈앞에 돔을 볼 수 있다. 높은 장소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Duomo를 관찰하다보면 밑에서 올려다 보면서 보지 못했던 디테일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Duomo는 이 돔이 모든 것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돔의 건설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Duomo 건물은 1367년즈음에 거의 다 지어지고 팔각형 모양의 받침대까지도 다 완성되었지만 돔을 올리는 것은 기술적 문제로 계속 연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을 위로만 짓는 건 쉽다. 하지만 이게 곡선 모양이 되면, 비록 아치라는 형태가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걸 저 정도의 규모로 만드는 건 엔지니어링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조금만 무게 중심이 안 맞거나 무게 배분이 잘 못되면 건설 도중에 혹은 완성 후 조만간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때 공모전을 통해서 건설을 담당한 사람이 그 지하에 무덤을 가지고 있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검색해서 읽어 보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에는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공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게 정말 가능할지 의심이 많았다고 한다. 브루넬레스키는 너무 자세하게 도면/도형을 만들거나 하면 자신의 노하우가 공개될까봐 전부를 공개하지 않아서 더 더욱 그랬다고한다. 하지만 공사는 1420년에 시작되어 1436년에 끝났고 전체 무게는 37,000톤 (현대 펠리세이드가 약 2톤 정도 되니 지금 저 위에 팰리세이드 18,500대가 올라가 있는 셈이 된다), 벽돌 400만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아름답지만 엔지니어링적으로도 놀라운 성과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 일단 하고 나면 간단하고 당연한 방법이지만 그 전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못한 생각의 전환을 나타내는 이야기이지만 실제 달걀 모서리를 깨서 세운 사람은 이 브루넬레스키라고 한다. 막상 돔을 다 만들고 나니 다른 이들이 나라도 그렇게라면 만들 수 있다고 비방한 것에 대해서 달걀을 세워 보라고 하면서 반박한 것이다. 콜럼버스 아니다....
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점심 식사는 근처 일본 라면집이 보여서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일본 라면집이라서 일본 사람이 주인인줄 알았는데 왠걸. 완전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라면집이었다. 모르겠다. 주방에는 일본 주방장이 있는지는. 하지만 가게의 직원은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바로 로마로 내려가기 전에 호텔 앞 성당인 Santa Maria Novella에 들려 보기로 했다. 겉모습만 보았을 때는 그냥 조금 규모가 있는 성당 그 정도여서 사실 크게 기대한 건 없었다. 외관이 멋있는, 그렇지만 오래된 성당으로 피렌체 기차역 이름으로 사용될 정도의 명성을 가진 성당이라는 것 정도가 첫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일단 이탈리아의 관광지는,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일단 시작은 미흡하나 그 뒤로는 끝도 없이 무언가 계속 이어진다거나 아니면 아애 처음부터 크기나 화려함으로 관람객을 압도하고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이 Santa Maria Novella는 전자에 속한다. 밖에서 보면 그냥 흔하디 흔한 성당 중에 하나인데 그 안은 또 다른 아름다움과 그 뒤로 전시물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일단 내부에 처음 발을 들여 놨을 때는 그냥 평범한 성당이었다. 그런데 제대 가까이 다가 갔을 때 그 제대 뒤로 엄청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벽화가 떡 하고 버티고 있었다. 이미 우피치 미술관과 Accademia Gallery에서 충분히 이런 류의 그림을 보아 왔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미술관들에서는 일정 크기의 그림 혹은 일부, 아무리 커도 그냥 사무실 한켠 정도의 크기로 어디든지 옮겨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이건 실제 엄청 높은 성당의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벽화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화려한 색채로 반짝 반짝 빛이나는.
이렇게 보는건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어쩌면 우피치 미술관 같은 곳에서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그림 하나 보고 얼른 다른 그림으로 넘어가고 하는 식이었다면 이 곳에서는 딱히 다른 벽화나 장식은 없었고 이 제대 뒷편 한 공간에 모든 것을 몰빵한 듯한 느낌으로 딱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아직 보지 못한 다른 그림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되고, 그냥 거기에 우두커니 서서 그림 구석 구석 하나 하나 시간을 가지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우....
그게 내 한마디 감상평이다.
성당 본관을 나오며 이게 끝이거니 했는데 그 뒤로 길게 이어진 수도원 건물들. 이 성당이 세워지기 전에 있던 초기 시대의 자그마한 성당 공간. 그리고 또 다시 벽화로 가득한 스페인 예배당 등. 시간에 쫓기거나 뒤에서 밀려드는 다른 관람객에게 치이지 않고 내 페이스 대로 천천히 그 넓은 수도원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감상하기 좋은 장소였다. 이 성당을 떠나면서 아쉬웠던 점은 내가 이 공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다가 갔다는 것이다. 이 안에는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제대, 목제 십자가 상들이 있는데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피렌체를 방문한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 보고 다시 한번 가서 살펴 보고 싶은 장소.
드디어 로마로...
호텔은 사진에서 보이던 바와 같이 광장을 마주 보고 이 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바로 옆이다. 이제 로마로 가기 위해서 호텔 로비로 돌아가 맡겨 놓았던 캐리어를 찾아 피렌체 역으로 향했다. 그래 봐야 이 성당 옆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역이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올 때는 kiosk에서 크레딧 카드 PIN을 물어 보아서 열차표를 kiosk에서 사지 못하고 customer center에서 살 수 밖에 없었는데 피렌체 역에서는 다시 한번 kiosk에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엔 PIN을 묻지 않고 바로 열차표를 살 수 있었다. 피렌체 올 때 탔던 Business class가 만족스러워서 같은 클래스로 샀다.
그런데 로마로 돌아 갈 때에는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서로 떨어진 자리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살 때는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열차에 타고 나니 서로 떨어진 자리 밖에 없다는 뜻은 그 열차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는 의미였다. 가뜩이나 캐리어도 다섯개나 되었는데 짐을 넣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넣을 공간이 없어서 이미 있던 걸 꺼내고 테트리스 하듯 다시 자리를 잡아 큰 캐리어는 어찌어찌 집어 넣었지만 작은 캐리어는 공간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까지 조금씩 떨어진 곳에 앉게 하니 내심 불안한 기분도 있었다. 물론 피렌체부터 로마까지는 직행 열차라 그나마 다행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여기 저기 떨어져 앉아 신경이 쓰이는데도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그랬는지 쏟아지는 졸음은 참을 수 없었다. 로마까지는 직행이지만 거기가 종착역이 아니므로 깊이 잠 들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할 참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착 시각 5분 전으로 알람을 맞추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짜피 어둠이 내려 오기 시작한 참이라 창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40분을 달려 Roma Termini에 도착했다. 첫날엔 거쳐 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남은 일정 동안 몇번씩 방문할 장소였다. 열차에서 캐리어를 내려 역사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벌써 저녁 7시에 가까워졌고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Google Maps을 켜고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 나섰다. 걸어서 10분 거리. 하지만 로마의 도로들은 아스팔트 포장 도로가 아닌 작은 돌로 포장된 길이라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가 참 불편했다.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는 경우 배수의 문제가 있어 흔히 말하는 pothole이 생기기 쉽다는데 작은 돌로 되어 있으면 배수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게 정확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피렌체에서, 그리고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다녔던 모든 길은 거의 대부분 작은 돌로 포장된 길이었다. 덕분에 캐리어 바퀴는 쉽게 고장나기도 하고 게다가 평평한 길이 아니라 돌돌돌돌 소리를 계속 내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도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어째꺼나 로마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고 들은 분들에게 이건 빈손으로 다닐 때의 이야기고 캐리어와 다닐 때는 결코 아니다.
지도에서, 그리고 Google Maps의 street view까지 보면서 정한 호텔이지만 생각보다 큰 번화가에 있었다. 그리고 Roma Termini에서도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 여러 식당들과 호텔들이 즐비한 동네였다. 다만 상당히 리뷰도 좋고 시설 좋은 호텔임에도 입구는 정말 작아서 근처에 있는 다른 상점의 입구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안으로 들어가면 안쪽으로 로비가 넓게 펼쳐져 있어 호텔이긴 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으니 확인을 하고 방 배정을 받고 여러가지 안내를 받고 나서 호텔 식당을 예약할 수 있는지 알아 보았다. 이 호텔의 식당은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다행이 20분 정도 후에 다섯 식구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이곳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피렌체 호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다섯 식구가 타고 나니 꽉 차는 사이즈. 우리는 먼저 방으로 올라 가고 조금 있다가 벨보이가 가방을 각 방으로 옮겨다 주었다. 일단 방에서 대강 정리하고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날이다.
이 여행을 계획하게 된 계기. 바로 결혼 25주년 되는 날. 하루 종일 피렌체에서 돌아 다니고 로마까지 오느라 피곤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아이들과 모처럼 편안한 저녁,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늦은 저녁 식사였지만 하루의 피곤을 풀고 여유도 부리면서 하루의 마침표를 그렇게 찍어 본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좋은 가족을 꾸릴 수 있게 함께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자,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로마 여행이 시작된다.
얘들아, 하루 종일 걸을 준비 다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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