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하기
지금까지 적어 오고 있는 여행기를 보면 알겠지만 난 비교적 계획을 하는 편이고 MBTI를 제대로 해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수퍼 대문자 J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획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제 시간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 전에 거기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할 때, 혹은 그 뒤에 이어서 다른 시간 약속이 있다면 조금.... 아니 많이 초초해 하면서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산탄젤로 성에서 나와 바티칸 쪽으로 가면서 그런 상황이었다. 점심도 해결해야 하고 또 가이드 투어 시간에 맞추어서 정해진 장소에 가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산탄젤로 성 옥상에서 다른 가족들이 잠시 주변을 감상하는 동안 점심을 어디서 해결해야 하는지 찾아 보기 시작했다. 이 여행 중에 가장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식사다. 피렌체에서 몇번 경험해 보았지만 어느 식당은 음식이 빨리 나오는 반면, 어느 식당은 꼬로록 소리 날 때까지 기다려야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이럴 때는 가급적 익숙한 걸 찾게 된다.
우선 가이드 투어의 약속 장소를 기준으로 조금씩 반경을 늘려 가며 적당한 식당 찾기. 멀지 않으면서 익숙한 음식, 그리고 리뷰도 좋아야 하는 조건. 그렇게 찾아낸 곳이 일식집이었다. 바티칸 광장 쪽으로 걸어가 잠시 전경을 구경하고 나서 바티칸 외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가면 금방 바티칸 박물관 입구가 나타난다. 거기서 길을 건너 반대편 지역으로 두 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찾은 일식집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일식집일까 싶었는데 의외로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집이었다. 익숙한 메뉴, 그래서 큰 고민 없이 고를 수 있는 점심, 깨끗한 가게, 그리고 리뷰처럼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멀지 않아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어도 되는 여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식당 이름은 Sushi Kaito. 혹시라도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 점심 식사를 하실 분이 있다면 한번쯤 가 볼만한 작고 깨끗한 식당으로 추천한다.
바티칸 박물관 가이드 투어
모처럼 여유롭게 점심을 마치고 나서 바티칸 박물관 입구 쪽으로 되돌아 왔다. 박물관 입구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언덕 밑으로 내려가는 폭넓은 큰 계단이 있다. 거기가 가이드들을 만나는 장소였다. Viator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예매를 했지만 이 사이트는 현지 가이드 업체와 연결을 해 주는 역할만 했다. 그 계단 밑에서는 두 군데 가이드 업체가 각각 자기네 푯말을 들고 시간에 맞추어 예약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 중에 어느 쪽인지 몰라 거기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내 예약 정보를 보고는 저쪽 가이드 회사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 2시 30분이 되었을 때 가이드 회사는 그 시간에 예약한 사람들 전부를 모으더니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예약한 프로그램에 따라 이쪽 가이드에게 가세요, 저쪽 가이드로 가세요하며 사람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기왕 돈을 더 지불하고 가이드를 통한 투어라면 제대로 가이드를 받아 보자는 생각에 소규모 그룹으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한 가이드 앞에 모이니 우리 다섯 식구를 포함해서 우리 그룹은 12명쯤 되었던 걸로 기억난다. 대부분 우리처럼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가족 같이 보이는 두 사람은 이탈리아 다른 지방 사람이었다. 우리 그룹을 맡은 가이드는 다른 박물관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투어 하는 동안 정말 재미 있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 시간이 되어 모두 박물관 입구 쪽으로 향했는데 일반 자유 투어 입구와 가이드 그룹 투어 입구가 달랐다.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고 나서 가이드가 우리 전부를 화장실 앞으로 데려 갔다. 투어 다니는 동안 화장실 갈 기회가 많지 않으니 가급적 미리 화장실을 다녀 오라는 것이다. 그 동안 자기는 그룹 티켓 창구에 가서 입장권을 사 왔다.
가이드 투어는 산호세에 있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그리고 New Orleans의 plantation tour 때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가이드 가까이 따라 가지 않으면 설명을 듣기도 어려웠고 투어 그룹이 조금이라도 겹치게 되면 우리 그룹이 어딘지 우리 가이드가 어디 있는지 일행을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숙제가 된다. 그래서 처음엔 걱정을 했더랬다. 이 복잡한 곳에서 꾸역꾸역 밀려 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따라 다닐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간과한 사실은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는 입장권을 나누어 주고 우리들을 입구 한켠에 위치한 가이드 부스로 데려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소형 무선 마이크와 손바닥 반절 사이즈의 리시버들을 받아 왔다. 이걸 이용해서 가이드는 큰 소리 내지 않고 그냥 조용 조용 이 무선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고 우리는 리시버에 연결된 유선 이어폰을 귀에 꼽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끌고 박물관 입구가 있는 2층으로 향했고 거기서 입장권을 스캔하고 안으로 들어 갔다. 들어가자 마자 주위에 이런 저런 전시물들이 있었는데 가이드는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앞장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 갔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나선 모양으로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떤 배 모형의 앞 부분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그 옆에 있는 안내문을 슬쩍 볼 수 있었는데 사도 베드로의 고깃배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가야 하면 이건 소소한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된다.
박물관 입구 역할을 하는 건물은 시큐리티 포인트와 티켓 창구, 무선 마이크/리시버 대여 부스, 입장권 스캔을 하기 위한 공간들이 있을 뿐이고 사실상 박물관은 이렇게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야 거기서 시작한다. 꼭대기 층은 바티칸의 정원 부분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박물관 입구 부분이 바티칸 정원보다 아래 부분에 있어서 그 위로 올라간 셈이었다.
가이드는 우선 일행들을 이끌고 넓은 테라스 같은 공간으로 데리고 가서 주변 건물에 대한 설명, 바티칸에 대한 설명들로 투어를 시작했다. 그냥 우리들끼리 왔다면 와, 이 건물 멋지다, 저기 밑에 또 다른 정원이 있네 그러면서 스쳐 지나갔을 공간들에 대해서 각각 어떤 건물인지 어떤 용도인지 언제 지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시간.
무선 마이크에 대고 평소 말하는 것처럼 말해도 리시버를 통해 가이들의 목소리가 깨끗하게 들려 설명을 알아 듣기 쉬웠다. 이미 주변에 다른 서너 가이드 그룹이 있고 또 각 그룹 가이드들이 각자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도 서로 이야기가 섞이지 않고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는 정말 가이드 투어를 선택한 것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아쉬웠던 점은 가이드가 이끄는대로 움직이다 보니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 구역에서 저 구역으로 옮겨 가게 되면 아무래도 일행과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니 내가 무얼 얼마나 보고 있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박물관 전체 지도를 가져다 주고 어떻게 움직였냐고 묻는다면 난 하나도 대답을 못 할 것 같다. 지금도 참 많은 것을 보고 왔는데도 몇개 중요했던 것만 기억나고 그게 어디쯤 있었는지, 어떤 순서로 지나쳐 갔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가이드라는 쪽집개 선생님이 시험에 나올만한 것들만 꼭 찝어 준 것들만 보고 나온 셈이랄까.
어떤 점이 더 좋았는지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런 장단점이 뚜렷해서 내 결론은 자유 방문으로 다시 한번 가자이다. 또 가고 싶은 아주 좋은 핑게거리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박물관 건물들의 길고 긴 복도를 지나 결국 시스티나 성당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게 되는데 각 복도들은 스스로의 개성들을 뽐낼 수 있는 옷을 걸치고 나 좀 바라봐 달라고 유혹을 한다.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위 두 사진에서 보이는 "지도의 복도"이다. 가이드를 따라 이리 저리 복도,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이 긴 공간은 그 안으로 첫 걸음을 옮기는 순간에 헉 하고 말문이 막히게 된다.
길게 이어진 천장은 실제 황금이 아닐진데 황금색의 장식을 가진데다가 조명을 노란색으로 강렬하게 뿜어주고 있어 정말 황금 궁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 준다. 이 긴 복도 좌우로 각 지방의 지도가 가득 채우고 있어 이름 자체가 "지도의 복도"이지만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 차라리 "황금 회랑"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만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관광객들도 양편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들 천장을 바라 보면서 그 복도를 걷게 된다.
이 "라오콘 군상"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미술사 책에 보면 흔히 보게 되는 조각상이고 이름이 "라오콘"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에 더 잘 남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지만 가이드가 우리를 이 "라오콘 군상" 앞으로 데려 갔을 때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난 이미 이걸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워낙 유명한 조각상이라 아이들을 그 앞에 세우고 찍었던 사진까지 남아 있다. 그럼 이건 뭐지?
한글로는 "라오콘 군상"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Laocoon and his sons"이다. 때론 영어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쉬울 때가 있다. "라오콘"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을 섬기는 트로이의 신관이다. 트로이 전쟁 때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는 것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휘감겨 졸려 죽었다고 한다. 이를 조각한 것이 바로 "라오콘 군상 / Laocoon and his sons"이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왜 조각상이 저런 모습이며 양 편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뱀에 의해 졸려서 죽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 얼굴의 모습과 뒤틀어진 육체의 모습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이 조각상이 유명한 이유는 "박물지"를 지은 대(大)
플리니우스가 (폼페이 대폭발 때 나폴리 근처 미네눔이라는 당시 해군 기지 사령관이었는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수병들을 지휘해 폼페이로 떠났다가 화산 유독 가스에 질식해 순직한 걸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저서에 이 "라오콘 군상"에 대해 극찬을 하고 로도스 섬의 세 명의 그리스인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언급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그 "라오콘 군상"이 바로 이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묘사한 형태가 이것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혹시나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 보는 것뿐이란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그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져 왔다고 한다. 좀 더 검색해 보니 "우피치 미술관"의 그 "라오콘 군상"도 "Baccio Bandinelli"라는 작가가 1520년 경에 만든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떠나 이 작품이 유명한 이유는 이 조각상이 오늘날의 바티칸 박물관을 있게 만든 계기라는 것이다. 이 조각상은 1506년 1월 14일 (얼마나 유명하면 발견된 날짜도 정확히 기록이 되어 있는걸까)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근처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교황이던 율리오 2세는 이를 포도밭 주인에게서 사 들여 바티칸에 전시해서 일반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게 바티칸 박물관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2006년 박물관 개관 500주년 기념식이 있었단다.
이렇게 알게 된 이야기들의 확인을 위해 위키페이지를 이용하는데 이 조각상이 발견되었다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위치가 어딘가 싶어 구글 지도에 검색해 봤다가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Roma Termini와 머물렀던 호델 근처에 있어 바로 앞은 아니지만 Roma Termini에서 호텔 갈 때 근처 골목을 지나며 저편에 보이는 저 큰 성당과 광장은 뭐지하며 몇번을 바라 보았던 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로마 시내를 돌아 다니다 보면 한 골목 돌면 바로 앞에 성당, 다른 골목을 돌면 또 다른 성당이, 그것도 중세 시대쯤 지어진 것 같은 성당들이 너무 치여 보여, 하루 이틀은 우와이지만 사흘째쯤 되면 어, 여기도 하나 또 있네 수준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보던 것들 중에 하나라니....
시스티나 성당 (Sistine Chapel)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해 맨 윗층으로 이동한 후 처음 맞이한 곳이 커다란 솔방울 장식이 있는 정원이었는데 그 정원 주변으로 가이드들이 자기네 그룹을 이끌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우리 가이드도 그룹을 이끌더니 그 모여 있는 곳 한군데로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군데 군데 안내판이 서 있었는데 그 안내판은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 특히 천장화에 관한 그림들을 설명하는 안내판이었다. 거기에서 가이드는 각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서의 어떤 부분들을 나타내는지,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그 그림들을 어떻게 그렸는지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위 사진을 보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천장화 전체를 보여 주고 있는데 윗 부분 그림을 보면 각 프레임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아래로 내려 올수록 프레임 내에 사람 수가 줄어 들고 사람의 크기도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린 순서가 위쪽부터인데 그림을 바로 천장을 바라 보고 그리니 그릴 때는 프레임에 사람이 많아도 워낙 프레임 자체가 크니가 꽤나 크게 그렸을텐데 문제는 시스티나 성당이 천장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막상 서너 프레임을 다 그리고 나서 미켈란젤로가 밑에 내려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올려다 보았는데 각 사람들이 너무 작게 보여 그 인물들의 표정이나 인상을 맨눈으로는 밑에서 도저히 알아 볼 수 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 이후 밑으로 이어지는 프레임에는 사람의 수도 확 줄이고 각 사람의 크기도 확연히 키웠다고 한다. 이런 건 가이드가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선행 학습은 이렇게 했지만 막상 미로 같은 박물관을 이리저리 지나면서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있는지 잊어 버릴 때 쯤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에 도달하게 된다. 워낙 유명한 성당이라 큰 복도나 넓은 홀을 지나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상당히 좁은 계단길을 통해 도달하게 된다. 이 좁은 계단길은 가이드가 인솔하는 인원만이 지나가는 길로 일반 관람객은 다른 방향 입구를 통해 들어 가는 걸로 안다.
계단길을 통해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주의 사항이 전달되었다. 첫째, 안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란다. 그래서 안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 두번째는 안에서 15분 정도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나가는 출구가 일반 관람객은 뒷편 좌측 출입문으로, 가이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우측 작은 문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니 천장을 가득 채운 천장화와 성당 앞 뒤, 옆면까지 가득 채운 그림들로 비어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앞서 말했듯이 천장이 엄청 높아서 좌우 벽면의 그림들도 그 크기도 입이 떡 벌어질만한, 비록 Palazzo Vecchio의 500인의 방 그림 같은 스케일은 아니었지만 그와는 스타일이 정말 다른, 미켈란젤로만의 스타일로 채워진 벽화들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는 15분 정도 자유 관람이었는데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박물관 안내자들이 사람들이 들어 올 때 마다 뒤로 뒤로 들어 가라고 안내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성당의 2/3 지점부터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관람을 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이 "천지창조"를 비롯한 천장화들을 바라 보느라 다들 고개를 천장으로 향하면서.
한편으로는 가득채운 벽화들에 압도된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백도 없이 너무 가득채워서 답답하는 느낌도 일부 들었다. 명화는 좋은데 조금은 쉴 틈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시스티나 성당에서 뒷편 우측 가이드 일행들을 위한 출구로 나오면 폭이 넓은 긴 계단길을 내려 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계단길이 180도로 꺽지는 지점에서 그동안 사용하던 무선 마이크와 리시버를 반납하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계단을 내려 오면 성 베드로 광장 앞으로 나오게 된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끌고 성 베드로 대성당쪽으로 향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중간에 아래 보이는 커다란 문 중 열려 있는 한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들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새로운 무선 마이크와 리시버를 받게 된다. 박물관에와 마찬가지로 가이드의 소근소근 설명을 깨끗하게 들을 수가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예수님의 12 제자 중 첫번째 제자라고 알려진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성 베드로 사도는 로마로 전교를 위해 왔다가 붙잡혔고 로마 정신에 반하는 사상을 전파한다고 해서 십자가 형에 처해졌다. 본인이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고 해서 머리가 밑으로 가는 역십자가 모습으로 처형을 당한 걸로 알려진다. 그리고 그 유해는 당시 이교도와 그리스도 인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던 바티카누 언덕 위 코르넬리아 가도로 통하는 길 근처에 묻혔다고 한다.
신약 성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노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어로 바위/돌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된거라고 한다. 그래서 반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말씀을 이루려는 뜻인지 326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옛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진다. 당시 성 베드로가 묻힌 것으로 알려졌던 장소에 이미 작은 성소가 있었다고 하며, 그 위에 성당을 짓기 시작한다. 그 이후 1500년부터 망가지고 방치된 옛 성당을 개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일부 필요한 돌은 콜로세움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그렇게 개축과 증축을 통해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1950년 12월 23일, 교황 비오 12세가 성 베드로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언덕 위에 처음 세워진 작은 성당 위에 다시 증축이 되고 개축 되면서 원래 지하실 아래로 점점 내려 가기 어려웠는데 마침내 발굴 프로젝트를 확인하고 검증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 무덤은 1939년 비오 11세가 선종한 뒤 그 시신을 대성당 지하에 매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그 벽에 그리스어로 "Petros eni" (베드로가 여기 있다) 라는 문구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걸 발견했다고 이 무덤이 성 베드로의 무덤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공식적으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아니더라라는 증거가 나오기라도 하면 교회의 권위와 신뢰성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 베드로가 이 언덕에 묻혀 있다는 것도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전승이지 아무런 기록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이 발굴의 작업의 결과는 꼼꼼히 검토되었고 마침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건 성 베드로의 무덤/유해라고 공식 선언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고는 한다.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보면 정말 당대 유명한 건축가, 미술가는 총동원되어 이 대성당을 꾸미고 장식했던 걸로 나온다. 그 내역만 본다면 바티칸 박물관에서 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정말 성당 건물 안을 돌아 다니다 보면 하나 하나 예술 작품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성 베드로 대성당은 또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그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편에 미켈란젤로의 "Pieta, 피에타"를 만나게 된다. 아마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딱 하나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미켈란젤로가 원숙해진 나이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 불과 25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작품이기도 하단다. 성모 마리아의 어깨띠에 "피렌체의 미칼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디 2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수군대자 밤중에 몰래 성당으로 들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여기에 있던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옮겨져 온 것이다) 이런 문구를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밤 본 황홀한 밤풍경을 보고 "하느님도 이런 아름다운 작품에 당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는데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라고 후회하고 다시는 자기 작품에 이름을 새겨 넣거나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도 대부분의 박물관에서는 그 작품을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물론 우피치 미술관의 "비너스의 탄생"같이 유리로 보호되는 작품들도 있으나 거의 대부분 특별한 보호 유리 없이 직접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알람이 울린다거나 근처의 박물관 직원이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제지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원본 그대로 볼 수 있고 조각상의 경우 정면이 아닌 옆, 뒷면도 자세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피에타"는 아애 방탄 유리가 전면을 보호하고 있어 그 너머에서만 볼 수 있다. 이건 어느 정신병자때문이다.
1972년 5월 21일, 헝가리 출신 호주인 라슬로 토트라는 사람이 교황을 만나겠다고 무작정 찾아와서는 이 "피에타" 상을 망치로 15번이나 내리쳐 성모 마리아의 코 부분과 왼손 부분 전체가 박살이 났다. 인터넷에 찾아 보면 "피에타" 상이 박살 나고 이 라슬로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잡히고 있는 사진이 있다. 박살난 부분은 그 후 복원과정을 거쳤는데 지금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코는 등의 다른 부분을 떼어와서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런 방탄 유리가 생겼단다. 가까이서 보았다면 조금은 색다른 느낌이었을까. 왠지 멀리서만 보아서도 성모 마리아의 슬픔이 느껴지는데 이렇게 멀리서 보기 때문에 더 안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피렌체의 Duomo에서도 그랬지만 성당은 무덤이기도 하다. 당대 유명했던 사람들, 유명했던 성직자들은 성당의 내부에, 혹은 지하에 묻히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한국말로 "Chapel"이라고 하면 성당/교회 혹은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서 가끔씩 가지는 성경 공부 시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탈리아 내의 성당을 가 보면 정 중앙 앞 쪽에 매인 제대가 있고 그 양쪽 공간에 조그마한 반원 형태의 공간들을 볼 수 있다. 작은 건 그냥 작은 성상이 있고 그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의자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기도대가 있는 것부터, 큰 것은 큰 성당 내 작은 성당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의자들과 그 앞에 작은 제대가 놓여 있기도 하다. 이걸 "Chapel"이라고 부른다. 앞서 "피에타"가 있는 그 장소도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하나의 "chapel"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도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이런 "chapel"이 곳곳에 있다. 어떤 곳은 실제로 방문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리막으로 가려 놓고 기도 하려는 사람들만 들여 보내는 곳도 있었고, 가장 안쪽 교황좌 뒷편에 있는 "chapel"에서는 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느라 돌아 다니고 있는 순간에도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떤 "chapel"은 "피에타"같은 조각상들로, 또 다른 "chapel"은 유명한 주교/교황/성인/성녀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워낙 많은 것들이 있어 가이드가 지나 가면서 하나씩 설명해 주어도 결국엔 "아~"하는 감탄사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하나 하나를 다 알고 감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크기가 주는 그 웅장함과 압도감, 그리고 나도 모르게 경견해 지는 마음 가짐 (난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이 베드로, 그래서 영어 이름이 Peter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하느님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대한 성당만을 지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욕심, 이런 웅장함이 권위를 세워줄 것이라는 오만함 등등 별의별 생각과 느낌을 스스로 가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가이드의 안내는 성당 중간쯤 교황좌 근처에서 끝났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면 흥미를 잃는 것처럼 가이드를 잘 따라니며 그 설명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이던 이들도 대성당 중간쯤 지나고 나서는 가이드와 조금씩 멀어져 개인적으로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리 가이드는 저런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 싶을 정도로 Chapel 하나 하나 돌아 다니면서 자신이 아는 이야기들을 정말 자세히 이야기 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잘 몰랐던 이야기들, 혼자 갔더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Chapel들도 한번씩 다시 보게 된 것 같았다. 가이드가 이제 자기는 여기까지라며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구경을 다 하고 나가면 된다고 하고 우리들에게서 리시버를 걷어 갔다. 가이드에게 20유로를 팁으로 건네 주고 감사의 인사를 나눈 다음 가이드와 헤어졌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구역들, Chapel들을 더 둘러 보고 성당을 빠져 나왔다. 벌써 밖은 어둠이 내려 앉아 캄캄해졌고 그렇게 대성당 아래에 잠든 사람들은 또 하루의 기억을 접어간다.
만일 바티칸 박물관을 처음 가 보는 분이라면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를 신청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각 구역이나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첫 경험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모른다면 그냥 아, 이게 있네, 아 저게 있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 유명한 "라오콘 군상"도 어디선가 책에서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는데 그러면서 스쳐 지나가는 걸로 끝일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는 이게 왜 여기 있는지, 그래서 이것 때문에 바티칸 박물관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덛붙일 수 있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한국어 투어도 있었다. 한참 우리 가이드를 따라 가고 있는데 옆에서 한글 깃발을 든 한국분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걸 보았다.
그렇게 한번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따로 챙기기 위해 자유롭게 다녀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 성인으로 인정 받은 103 성인 중에서 가장 중심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가톨릭 성인분들의 초상/조각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한국인, 아니 동양인 성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23년 9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조각상이 봉헌되었다. 나는 기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성 베드로 대성당에 방문했을 때에는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안사람이 찾아 가 보고 싶다고 해서 그 시간에 찾아 보기로 했다. 문제는 대충의 위치만 사람들의 블로그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저녁에 찾아 보려 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에 따르면 정문에서 우측편으로 돌아 가면 바로 있다고 했는데 막상 그 쪽으로 가려니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며 길을 찾아 보다 결국 못 찾고 마침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이쪽으로 건너오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있어 물어 보니 우리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며 바리케이트 너머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바로 모퉁이를 돌자마자 얼마 가지 않아 신부님의 성상을 만날 수 있었다. 안사람은 그 앞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고 정문 쪽으로 되돌아 왔다. 제복 입은 분이 그 시간 내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이렇게 가는 길이 항상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원래 오픈되어 있는데 지금은 관람 시간이 지나서 막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을 찾으니 일부러 우리가 가 볼 수 있도록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이다. 그래서 우리만 남겨 두지 않고 자기가 계속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친절했던 직원에게 감사.
대성당 안의 다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영어나 이탈리아어가 아닌 한글로 쓰여진 성인상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뿌듯하기도,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를 비롯해 다른 한국 순교자 성인들로 인해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해 본다.
호텔로 돌아 오는 길은 근처 지하철 역이 있어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첫번째 날이 지나고 내일은 좀 더 멋진 곳으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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