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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로마 여행 2023년 12월

이탈리아 여행기 - 둘째날 Palazzo Vecchio

by 피터K 2024. 2. 18.

 

Piazza della Signoria

 

점심 먹고 방문하기로 예약한 다음 장소는 Palazzo Vecchio. 말 그대로 궁전이긴 한데 한국의 궁궐이나 영국의 성과 같은 곳이라기 보다는 당시 도시 국가 시절 때 도시 지도자가 살던 곳이라고 보면 된다. 도시 국가 형태일 때의 말하자면 정부 기관도 겸하게 되니 크기가 엄청나지는 않지만 Duomo처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만큼 특징적이고 그 안의 특정 공간 하나를 구경하러 간다고 보면 된다.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아이들 얼굴을 가리느라 스티커를 넣었는데 저장하고 나니 해상도가 훅 낮아졌다. 사진으로는 광장의 거대함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상당히 큰 광장이다. 뒷편 Palazzo Vecchio 쪽으로 하얀색 동상이 하나 보이는데 그건 분수이다. 오른쪽 크레인이 보이는 방향으로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크레인 위치가 확장 공사 중인 구역이다.

 

Palazzo Vecchio 앞에는, 대부분의 도시 국가의 관청가, 혹은 교회 앞이 그렇듯이 커다란 광장이 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이 있는 것처럼. Palazzo Vecchio 앞 광장의 이름은 Piazza della Signoria라고 불리운다. 상당히 크기가 큰데 사진에는 그 크기가 잘 담기지 않았다. Palazzo Vecchio 쪽으로 커다란 분수가 있고 한편엔 작은 전시 공간이 있다. Palazzo Vecchio을 방문 하는 사람들이, 혹은 우피치 미술관을 가기 위한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라 도시 특유의 복작복작함을 느낄 수 있다. 광장 주변을 감싸고는 여러 가지 식당들이 있는데 바깥 편에 의자와 테이블을 준비해 놓고 손님을 받기 때문에 날씨가 따뜻하고 햇살이 좋은 날이라면 거기서 간단한 식사나, 아니면 커피 한잔이라도 한다면 하루가 풍성해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우리가 갔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즈음 살짝 추워지고 있을 때라 외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뚝 솟은 시계탑이 Palazzo Vecchio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피렌체 어디에 있든지 이 시계탑 때문에 그 위치를 쉽게 알 수 있. 사진 우측 아래 보이는 것이 입구인데 좌우에 커다란 동상이 서 있고 좌측의 동상이 미켈란젤로의 바로 그 "다비드상"이다. 지금 보이는 것은 복제품이지만 실제 원본이 1504년부터 1873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Duomo가 그 커다란 돔과 하얀색 대리석 때문에 이름은 몰라도 사진으로 보면 금방 알아 볼 수 있듯이 이 Palazzo Vecchio도 사진만 보여 준다면 아, 그래 어디서 많이 봤어라고 할만큼 피렌체의 랜드마크이다. 다른 것보다도 높게 솟아 있는 시계탑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높이만 90미터를 훌쩍 넘어가는데 특이하게도 사각형 건물에 이 시계탑만 우뚝 솟아 있다. 게다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이 시계탑에는 방이 두개 있다고 하는데 유명인들을 유폐시키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Palazzo Vecchio 대부분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구역은 시의회와 시장 관저로 사용된다고 한다.

 

보통 이런 정도의 건물이라면 거대한 정문을 가지고 있을 법한데 의외로 시계탑 바로 아래 소소한 크기로 정문이 위치해 있다. 크기는 작지만 그 입구 양편에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는데 밖에서 보았을 때 좌측에 보이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그 "다비드상"이다. 사진으로만 "다비드상"을 보았다면 그 크기가 가늠이 잘 안 되겠지만 직접 그 앞에서 서 보면 크기에 한번 놀라게 된다. 크기는 17ft (5.17미터). 이탈리아에서는 뭐든지 일단 크기로 한번 상대방을 압도한다.

 

아, 이게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야 하고 놀라서 자세히 들어다 보고 사진을 찍고 있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건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동상은 다른 용도가 아니라 원래부터 여기에 놓으려고 만든건데 완성된 후 실제 1504년부터 300년 가까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훌륭하게 만들어진거라 원본은 따로 박물관으로 옮기고 복제품이 대신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여긴 야외다 보니 세월 풍파에 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 "다비드상"은 알아 보았다. 뭐 워낙 유명하니까. "그래 이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야"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니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는 이네, "아 마이클안젤로". 미국식 발음이다.

 

그래 그 닌자 거북이에 나오는 걔.

 

 

정문에서 광장 쪽을 바라 보면 좌측에 열린 전시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을 고대 로마 시대,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상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하나 하나 조각상들이 어느 다른 나라에 있었더라면 보물급으로 취급되며 그 박물관/미술관의 주인공이 될 것 같은데 마치 여기서는, 응 이런 건 여기서 흔해... 라고 말하는 듯하다.

 

 

Palazzo Vecchio

 

Ponte Vecchio에서 골목 골목을 돌아 Palazzo Vecchio를 찾아 가는 길.

 

다른 박물관 혹은 미술관은 여러 예술품, 전시물들로 가득차 있지만 사실 Palazzo Vecchio에는 그런 것들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딱 하나. "500인의 방"이라는 커다란 장소 하나를 보기 위함이다.

 

500인의 방. Palazzo Vecchio는 이 장소 하나만 봐도 모든 걸 다 본 셈이 된다. 이 커다란 방의 좌우 벽을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가득 채우고 있고 천장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직접 그 자리에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압도감과 경이로움은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으로 보는 "500인의 방"은 아무리 봐도 그냥 미니어쳐의 한 장식같아 보인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그 방에 들어가 한가운데 서서 주변 벽화와 천장을 둘러 본다면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질거라고 장담한다.

 

"500인의 방", 영어로 Hall of Five Hundred라고 불리우는 이 공간은 가로 52미터, 세로 23미터의 거대한 공간이다. 1494년에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입해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이던 메디치 가문이 망명에 나섰을 때 공화주의자로 메디치 가문과 교회의 타락에 대해 비판하던 수도자이자 종교 개혁자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정권을 잡았던 일이 있었다. 그는 귀족제 대신 민주정과 종교개혁을 수행하려고 도시 평의회를 구성하여 이 장소에서 평의회를 개최하였다. 평의회의 구성원의 수가 500명었기 때문에 이 방의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방은 그 전에도 있으니 어떤 이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어디서도 이전 이름은 무엇인지 찾지를 못하겠다. "500인의 방"이라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라 그 이름만 살아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중에 사보나롤라는 교회와의 대립, 메디치 가문의 반격, 다른 도시와의 전쟁에서의 패배등으로 인해 실각하고 앞서 본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 당했다. 종종 아무 생각없이 사진 찍으려고 서 있던 그 장소가 알고 보면 뭔가 좋던 나쁘던 역사를 간직한 장소라는 걸 알게 된다. 

 

일단 크기와 규모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사진 아래에 있는 아이들과 그림을 비교해 보면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고개를 바짝 들어도 그림 끝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라 자세히 보고 싶다고 가까이 가면 그림이 한 눈에 안 들어 온다. 대신 전체를 보려고 뒤로 가면 그림의 디테일이 잘 안 보인다.

 

원래 이 방의 좌우 벽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두 사람이 서로의 최고의 작품으로 대결을 하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리기 위해 교황에게 소환된 후 대결은 완성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라는 화가가 제자들과 함께 새로 벽화를 그려서 완성한 것이 지금의 이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우측 맨끝에 있는,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마르시아노 전투 (Battle of Marciano)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해서 밑그림은 대부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으며 그 토대를 바탕으로 바사리가 완성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현재의 프레스코화를 들어 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프레스코화 자체도 대단한 작품이라 손쉽게 그림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멀리 떨어져 고개를 바짝 들고 나서야 그림이 한눈에 들어 온다. 크기도 크기지만 그 자세함에도 놀라게 된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 갔을까.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프레스코화에 정신을 빼앗기느라 그 그림 밑에 있던 조각상들은 미처 알아 채지도 못했다. 포스팅할 사진을 찾다가 저기에 조각상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물론 천장도 그림으로 가득차 있다. 바사리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집에 와서 피렌체 곳곳을 돌아 다니는 영화 Inferno를 가족들과 함께 보니 불과 일주일 전에 저기에 있었다는게 꿈만 같았다. 로버트 랭던 교수가 악당에게 쫓겨 500인의 방 천장 위로 도망가고 있던 중 악당이 서까래에서 미끌어져 사진 속 천장화 하나를 뚫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장면을 보고 옆에 있던 딸아이가 던진 말. "어이구, 저게 얼마짜리 그림인데...."

 

 

Cerca Trova

 

이 "500인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프레스코화 중에 그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 벽화"가 유명해진 이유는 마치 다빈치 코드의 한 장면처럼, 다빈치 코드의 원작자인 Dan Brown의 다른 소설 Inferno에서도 사용된, 어떤 특별한 비밀이 그 그림에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벽화 윗부분 언덕 위 농가가 보이는데 그 밑에 있는 병사들 중에 초록색 깃발을 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 초록색 깃발 하나에 "Cerca Trova"라고 적혀 있다. 이탈리아어로 "Search and Find"라는 뜻이란다. 찾으면 발견하리라 정도의 뜻일까. 

 

어디쯤 있다는 걸 대강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맨눈으로 찾아 보려 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원래 바닥에 서 있으면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서 최대한 줌으로 당겨 보았지만 이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정확히 그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동안 아무도 쉽게 못 찾았겠지만서도 말이다. 

 

그림을 그린 바사리가 아무런 단서도 남겨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자리에 다빈치의 밑그림과 미완성 프레스코화가 있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혹시나 그 위치가 여기라고 바사리가 남겨 둔게 아닐까하는 추측들이 있다. 실제로 X-ray 검사에 그 부분 뒷쪽으로 공간이 있다고 한다.  

 

마르시아노 전투를 그린 프레스코화의 전체 모습 (첫번째 사진). 그 그림 중간 위쪽에 보면 언덕 위 작은 농가 두개가 보인다 (가운데 사진). 그리고 그 앞에 병사들이 든 깃발 중에 초록색 깃발 하나에 저렇게 Cerca Trova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 사진). 전체 프레스코화가 워낙 크다고 해도 저 안에서 이 깃발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지도의 방

 

"500인의 방"을 지나면 여러가지 방들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방은 여러가지 명화들과 천장화로 가득 차 있다. 각 방들은 누가 썼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혹은 그 방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에 따라 이름이 붙어 있다. 이에 따라 Room of the elements, Terrace of Saturn, The Hercules room, Apartments of Eleonora of Toledo (코시모 메디치 1세가 Palazzo Vecchio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그의 아내인 엘레노르를 위한 거주 구역을 아주 아름답게 꾸며 주었다) 등이 있다. 실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일했던 거주 구역이란게 신기하기도 했다.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어 밖은 어둑어둑해 지고 있지만 실내는 현대식 조명으로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일부 구역은 조명이 닿지 않는 구석도 있어 창이 없는 구역, 있더라도 상당히 작은 크기의 방은 많이 어두웠다. 그러면 대낮이라도 실내는 그리 밝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더라도, 멋진 천장화가 있더라도 제대로 볼 수는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람 동선을 따라 계속 움직이다 보면 "지도의 방"이란 곳이 있다. 사방 벽면 전체가 각 지역별 지도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코시모 1세가 서재로 사용하면서 르네상스 시대 전의 유물들을 모아 전시도 하면서 초대된 손님들에게 보여주던 장소라고 한다. 이 정도로 꾸며져 있으면 나라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여 주고 자랑하고 싶을 것 같은 장소였다.

 

이 방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가 반대편 코너 끝에 아르메니아 지역의 지도가 있는데 이 지도 액자 전체가 비밀 통로의 입구이다.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을 구경하다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저기 비밀 통로가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는 저 비밀 통로를 아냐고 물어 왔다. 유명한거 아니냐라고 하니까 잠깐 기다려 보란다. 그러더니 잠시 밖에 나갔다 오면서 열쇠 꾸러미 하나를 들고 들어 왔다. 그리고는 직접 그 비밀 통로 문을 열어 보여 주었다.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앗싸!!

 

지도의 방 구석에 아르메니아 지도가 있는데 이 뒷편으로 비밀 통로가 있다.   

 

 

이 지도의 방을 빠져 나오고 나면 나머지 구역은 서로 비슷비슷한 복도들을 지나 출구로 나오게 된다. Dan Brown의 Inferno에 보면 단서를 얻기 위해 단테의 데드마스크를 찾아가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와는 달리 그냥 지나가던 그 복도 중간에 덜렁 놓여 있었다. 물론 유리 상자 안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영화에서처럼 힌트가 있는 뒷부분은 어떨까 싶어 슬쩍 뒷쪽을 둘러 보았는데 역시나 영화는 그냥 영화였다. 작게 설명문이 붙어 있어 이게 단테의 데드마스크라고 알려 주었지만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복도를 지나간다면 이게 그 단테의 데드마스크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관심을 덜 받는게 유물의 입장에서는 나 좀 쉬게 내버려 주라라며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출구는 2층에서 끝나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 오고 나면 Palazzo Vecchio의 두번째 정원으로 이어지는데 건너편에 ticket office가 있고 그 옆으로 locker가 있어 가방은 그 곳에 두고 들어 가야 한다. 사용료는 무료. 가방, 특히 백팩을 매고 다니는 경우 나도 모르게 옆으로 돌다가 장식물이나 전시물을 건드릴 수 있기도 하고 보안을 위해서도 들고 들어 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는 작은 전시관이 하나 더 있는데 이 곳은 무료로 들어 갈 수 있다.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들어가 보았는데 그 안에는 피렌체의 역사, 당시 성문을 잠그던 열쇠, 당시에 쓰던 여러가지 지도, 설계도, 어떻게 피렌체가 발전해 왔는지 나타내는 지도 등 상당히 흥미로운 자료들이 많았다. Palazzo Vecchio를 방문한다면 이 작은 전시관을 절대 놓치지 말자.

 

 

 

이탈리아 식당에서 주문하는 방법

 

Palazzo Vecchio의 구석 구석을 다 헤집고 나서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하늘은 어둑어둑해졌다. 이제 저녁 시간이 되었고 정말 제대로 된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갈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일단 Google Maps을 열고 주변 식당들을 검색해서 리뷰가 좋은 곳들을 몇군데 골라냈다. 많은 이탈리아 식당들은 점심 시간인 11시부터 3시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저녁 시간인 6시 30분, 혹은 7시부터 다시 문을 연다. 

 

여러 리뷰 좋은 식당 중에 고른 한 곳은 Duomo 근처의 (역시) 골목 안 로컬 식당. 7시가 다 되었는데도 손님은 우리 다섯 식구 밖에 없었다. 제대로된 이탈리아 식당에서 첫 식사인데 메뉴판을 받아 들자마자 미국에서 흔히 보아 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메뉴 구성에 잠시 당황했다. 그럼 어떤 점에서 다른지 한번 살펴 보자. 

 

일단 메뉴가 이탈리아어다.... 뭐 당연하겠다.

그 옆에, 혹은 밑에 영어로 따로 되어 있긴 하다만 말하자면 이런 거다. 

한국 식당 메뉴판에 한글로 "순두부 찌게"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영어로 spicy tofu stew라고 써 있는 식.

이걸로 순두부 찌게가 뭔지 알 수 있을까.

 

메뉴판의 구성은 미국 메뉴판과 비슷하다. 먼저 appetizers에 해당하는 부분이 첫번째에 온다. 이탈리아어로는 antipasti 라고 되어 있으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grilled vegetables, plates of cheese, olives, 혹은 여러 종류의 햄들을 모은 sampler 같은 것이 있다. 

 

그 다음은 primo piatto라는 부분으로 구지 번역하자면 첫번째 접시 정도 될 것 같다. 여기에는 파스타 종류, 리조또 같은 쌀로 만든 음식들, 혹은 여러 종류의 스프들을 포함한다.

 

다음은 secondo piatto. 역시 번역하자면 두번째 접시가 된다. 이제 메인 코스인데 생선/고기류/해산물로 이루어진 요리들이 포함된다.

 

Contorni라는 항목도 있는데 이건 secondo piatto와 함께 하는 side dish에 해당한다. 구운 감자, grilled vegetables 같은 것들이다.

 

마지막은 dolci, 즉 디저트다. 티라미수, 치즈 케잌 같은 것들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 특히 저녁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social, 친목의 시간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아주 오래 시간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한단다. 그래서 식당에서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거나 하지 않고 서버도 미국처럼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가끔씩 와서 필요한거 없느냐 식사는 괜찮은지 묻는데 이탈리아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식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런 긴 식사가 되려면 앞서 말한 각 부분을 하나씩 시키면서 전체 코스 요리를 즐기면 된단다. 그리고 이건 이탈리아 사람들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처럼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정통 코스 요리를 즐긴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primo piatto, secondo piatto 구분하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메뉴로 보고 먹고 싶은 것 하나를 고르면 된다. 피렌체/로마에 있는 식당들은 이런 여행자가 많으니 그냥 그대로 주문을 받아 준다. 

 

문제는 primo, secondo piatto 처럼 코스로 이어지는 경우 각각 양이 가늠이 안 된다는 것이다. 둘 다 하나씩 고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하나를 고르면 그 양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식당에서는 그 양이 혼자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마에 머무를 때 호텔로 돌아온 후 근처 리뷰 좋은 식당에 갔었는데 거기서는 양이 생각보다 조금 적어서 아쉬웠지만 콜로세움 근처에 있는 다른 최고 리뷰 식당은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특이한 점으로 다음의 두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선 물은 병에 든 물을 사 마셔야 한다. 물론 tap water, 수도물을 달라고 할 수도 있고 무료라고 하지만 이렇게 먹는 사람은 없다. 일단 물을 주문하면 1.5리터, 혹은 2리터짜리 생수병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당연히 무료가 아니다.

식사를 다 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주문한 음식, 생수값과 더불어 coperto라는 항목이 있고 한 사람당 2-3유로 정도가 추가 되어 있다. 이 내용을 여행 책자에서 미리 읽어봐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전에서 계산서를 보았을 때는 생각이 안나서 서버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로 "sitting fee"라고 말해 주었다. 그 때서야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구지 설명하자면 자리에 식기와 넵킨 등을 세팅해 주고 식전 빵을 가져다 주는 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이건 가져다 주는 빵을 먹든지 안 먹든지 그냥 기본적으로 붙는 비용이다. 빵 안 먹었다고 빼달라고 한다거나 하는 건 안 통한다. 그냥 텍스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다. 대신 미국처럼 15-20% 팁을 따로 줄 필요는 없다. 원래 팁 문화가 없지만 그래도 사람 당 1-2유로씩 계산에 팁을 주면 고마워하지 않을 서버를 없다. 물론 미국처럼 팁 안 준다고 식당 밖에까지 따라 나와 따지는 경우는 없다.

미국에서는 계산서를 달라고 해서 크레딧 카드로 계산하고 나면 거기에 팁을 적는 빈칸이 함께 나오는데 이탈리아 식당에서 계산하면 이 팁을 적는 칸 자체가 없다. 

 

그네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그렇게 늘 받아 왔던 것이라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이를 잘 모르는 관광객의 경우 자기도 모르는 팁이 추가 되어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에서 길을 가다 본 몇몇 식당에서 밖에 세워둔 메뉴판에 "no coperto"라고 적힌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도 coperto가 뭔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식은 그냥 보이는대로, 혹은 아는대로 먹고 싶은 걸 시키면 된다. 그리고 그 옆에 가격이 쓰여 있다. 그런데 육류의 경우 상당이 희안하게 계산되어 있다.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시키면 8온스, 혹은 12온스 크기가 나와 있고 가격이 얼마인지 나와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100 그램당 얼마, 혹은 1 킬로그램당 얼마, 이렇게 표시 되어 있다. 이 경우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기의 양으로 주문하면 되는 건가, 이 스테이크 400 그램 주세요... 이렇게?

 

궁금해서 한번쯤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물어 본다고 생각만 하다가 직접 물어 보지는 못했다. 다음에 가거든 꼭 어떻게 주문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메뉴판 Grill 항목 마지막 두개는 100g 당 얼마인지로 표시 되어 있다. 어떻게 시키는 건지 그래서 얼마나 나올건지 영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참 어려운 일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메뉴를 고른다는 건.

그래서 정통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건 뭐냐고? 아는 건 이것 밖에 없으니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리조또.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와 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가정식 이탈리아 요리?

 

 

이제 피렌체에서 하루가 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