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때의 DAC 경험이 미국으로 취업을 하고 싶다는 아주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전공 자체가 EDA 였고,
이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 회사들, 삼성 반도체, LG 반도체,
현대전자에서 in-house tool로 자체 개발해서 설계에 사용하는 부서들이 있었다. 하지만 98년 IMF를 거치면서
이런 부서들은 정리가 되었고 많이 축소되어 있었다. 특히 내가 산학으로 합류하게 되어 있던 LG 반도체의 부서는
IMF와 현대전자와의 합병을 거치면서 더 이상의 개발보다는 기존 EDA tool을 관리하는 역할로 변해 갔고
기존의 개발 인력들은 회사를 떠나 미국 회사로 옮겨간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Millenium Bug,
즉 Y2K bug issue로 미국으로의 취업이 그렇게 힘든 시기가 아니었다. 임시로 몇년 동안 취업비자의 수가
두배로 증가했고 911 전엔 많은 것들이 여유로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산학을 하던 나는 일단 현대전자로 입사를 해야 했고 더군다나 박사 병역 특례에 묶여 있어 적어도 3년은
현대전자에서 근무를 했어야 했다. 그래서 다른 분들과 같이 바로 미국으로 취업을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DAC에서의 경험은 아주 강력한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냥 마음 먹은대로 바로 되지는 않았다. 일단 병역 특례로 인해 2003년 3월까지는 현대전자에서 근무를
해야 했고, 미국 취업을 위해서는 먼저 나를 뽑아줄 회사를 찾아 취업비자 스폰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영어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을 쉽게 비교해 보자면 이렇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 아주 일 잘하는 엔지니어가 있는데 한국으로
취업을 해서 온다고 생각해 보자. 그 분이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면 아니면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면접조차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원하는 사람 누구나 다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하려고
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엔지니어링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게 나한테 맞는 것인지,
그게 어떤 회사인지 등등의 정보도 알아야 도전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게 마찬가지로 내가 미국으로의 취업을 원한다면 이 기본적인 세가지, 언어 능력, 일할 수 있는 취업 비자, 그리고
그런 일자리가 있는 회사를 찾아 내는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우선 언어 능력, 즉 영어 실력. 최소한 미국 회사에 취업해 일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사람들과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내 주장을 잘 펼치고 함께 결정할 정도의 의사 표현이 되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그냥 단순히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모든 업무를 영어로 한다고 생각하면 제일 쉬울 것 같다. 사실 옛날부터 영어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하는데 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영어 공부 시작을 위해 강남역에 있는 파고다 영어 학원에 등록을
하고 첫 레벨 테스트 같은 것을 보았는데 결과는 처참하게도 1C. 1/2/3 레벨이 있고 각 레벨마다 A/B/C 세부
레벨이 있었는데 1C라고 하면 그냥 바닥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레벨 테스트를
위한 질문이 너 오늘 아침에 무얼 먹었니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별로 깔끔하게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DAC 이후 미국 회사에, 특히 내 분야의 미국 회사에 취업해서 일을 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정리하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첫 걸음마를 내딛게 된다. 그게 2001년 여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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