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 미국 경험 이야기

10년이 훌쩍 지난 후 박사 학위를 마치고 산학 과정을 통해서 입사 하기로 되어 있던 현대전자에 2000년 3월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던 현대전자 본사가 아닌 LG 반도체 소속이었던 선릉역 근처 영동빌딩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새내기 선임연구원의 모습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인 2001년, 우리 분야에서 가장 큰 학회인 DAC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이 학회, Design Automation Conference (DAC) 라고 불리우는 이 학회는 논문 발표 뿐만이

아니라 소위 EDA (Electronic Design Automation) 이라는 우리 분야의 모든 회사들이 모여 자기네 회사의

SW tool 들을 전시/데모/소개하는 전시회도 함께 열린다. 말하자면 반도체 설계/공정 분야의 CES 혹은

E3 게임 전시회 같은 그런 행사이다. 그해, 2001년 DAC는 Las Vegas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사실 회사에서 이제 겨우 2년차 선임 연구원이었지만 박사 학위를 마치고 입사를 해서 다른 분들보다는 직급이

높은 편이었고 예전부터 너무나 가 보고 싶었던 학회였기 때문에 조금은 부장님께 조르다시피 강력히 요청을 해서

간신히 허락을 받아 내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준비하고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예약을 다 했었더랬다. 그런데 출발하기 2-3주 전부터인가

아시아나 항공 파업이 일어나면서 비행편에 차질이 생기더니 출발하기 하루 이틀 전에는 예약해 놓은 항공편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게 되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하기 전날 인가 아시아나에서 연락이 와서

예약편은 취소된 대신 특별편이 하나 생겼다며 타겠냐고 해서 간신히 Las Vegas로 오게 되었다. Las Vegas 직항편은

당연이 없었고 대신 San Francisco로 경유하는 편이었는데 가는 김에 부장님께 허락을 받아 하루 San Francisco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오래된 학교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당시 실리콘 벨리인 Santa Clara에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 네에서 하루 머물면서 이런 저런 미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렇게 정신 없게 오게 되니 91년에 왔을 때의 그런 어떤 인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신기한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Las Vegas 국제 공항에 국내선으로 도착했더니

공항 대기실부터 공항 곳곳에 슬롯머신들이 쭉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라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들을 직접, 그것도 공항에서부터 보게 되니 너무 신기했었다.

처음 슬롯머신을 해 보았는데 25센트, quarter를 넣고 하는 것을 해 보았는데 $20인가 $40인가를 바꾸어서 해 보았다.

두어 머신을 옮겨 다니다 해 보았는데 묘하게 한 머신에서 자꾸 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머신에서 계속 했는데

갑자기 땡땡땡 울리면서 기계 위에 달린 전등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머신을 보니 777 떠 있었다. 어리둥절 하고

있었는데 매니저 같은 사람이 오더니 열쇠로 기계를 열어 알람을 끄고는 나보고 손을 내밀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100 짜리 다섯 장을 쥐어 주고는 가 버렸다.

그렇게 돈을 손에 쥐고 나니 왜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되는지 알만 했다. 나도 더 욕심에 다른 기계로 옮겨가

몇번 더 하다가 $40 쯤 다시 잃고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기서 멈추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 돈으로

첫번째 캠코더를 샀고 오래동안 큰 아이의 영상을 찍어 주며 잘 사용했었더랬다.

그렇지만 이런 Las Vegas에서의 슬롯머신의 경험이 이 여정의 전부는 결코 아니었다.

피터K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