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이 글은 해외 연수 후 LG 반도체에서 필히 제출하라던 '해외 연수
감상문'의 전문을 옮기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감상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딱딱합니다.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딱딱한 문장인데도 자기네 홍보지에 실는다고 하는군요.
아마도 LG 반도체 사외보 2월호에 게재될 것입니다. 사진도 나온다니까
혹시 받아 보시는 분은 제 실체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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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반도체 공모전 입상 해외 연수 감상문
포항공과대학교 전자과 CAD Lab. 피터(^^;)
1881년(고종 18년) 개화된 일본을 배우기 위하여 신사 유람단(紳士 遊覽團)이
파견된 지 110여년 만에 우리는 또 다시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일본을 배우기
위하여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고대에는 그들이 우리의 문화와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 나라를 찾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기술과 노력을
배우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왕인 박사가 한자를 전해 주기
전까지는 글자도 사용할 줄 몰랐던 그들이 이제는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서
자리 매김을 하고 당당히 세계 무대에서 주연으로 살아 가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찾으러 이번 연수를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스 베네딕트 박사가 쓴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면 일본 국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또한
(but also)'이란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공격적이자
비공격적이며, 군국주의적이고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용감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리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맞이 한다." 이 책에서 표현된 그들의
모습은 처음에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베네딕트 박사가 표현하고
있는 일본인의 모습은 모순으로 가득찬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만나는 그들의 모습은 베네딕트 박사의 표현
그대로인 점이 많았다. 그들은 만나는 사람에게 무척이나 친절하고
조용하다. 우리들의 앞에서는 절대로 큰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자신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음식점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하지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예의가 바르다고 하지만 박물관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그런 모순 속에서 알맞은 자리를
찾으면 살아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감추는데 참으로 익숙하다. 길을 가다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과연 저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웬지 그런 모습에서 어떠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그들의 굳게 다문 모습이 어쩌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결코 느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연수 중에 도시바 과학관과 Sharp 전시관,
그리고 NEC 전시관을 둘러 보았는데 이 곳은 그들의 잠재된 힘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곳이었다. 작지만 정교하고 튼튼한 여러 가지
전자 제품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도시바 과학관에서
볼 수 있었던 장난감 인형은 참으로 인상 깊은 물건이었다. 1840년대에
만들어진 이 장난감 인형은 단지 태옆만으로 동작하는 것이었는데
궁수가 화살집에서 화살을 뽑아 활 시위를 당겨 활을 쏘는 장난감이었다.
이 물건은 얼마나 정교하던지 150여년 전에 만들어진 장난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요즈음 팔고 있는 아이들의 동작 장난감보다
훨씬 정교했다. 그렇듯 그들은 드러나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마치 어떤 기계가 돌아 가는 모습과 닮았다.
공작의 기계는 프로그램 된 일 이외에는 하지 않는다. 정해진 규칙과
방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모습도 그와 같다.
어디에서건 정해진 규칙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도로에서 차를 세울 때에는
정지선에 맞추어 차를 세운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지선은 '서야 할'
규칙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클락션은 다른 차량에게 주의를 환기
시킬 때에만 사용한다. 우리처럼 빨리 차를 빼라든가 어서 가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한 시내 한복판에서도 클락션 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지하철을 안내하는 승무원은 열차의 문이
닫기고 출발해서 역을 벗어 날 때까지 한 손을 끝까지 펴 들고 서 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열차가 출발하고 나면 그럴 필요가 없는 동작인
것 같지만 그것이 규칙이기 때문이다. 경비원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규칙을
볼 수 있다. 연수 중 저녁 식사 후에는 자유 시간이어서 시내 구경을 하러
갔다가 늦게 들어 온 적이 있었다. 상가의 문이 닫기고 나서 경비원이
그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데 경비실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상가 입구에 서서 정말로 상가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그들에게는 경비원의 규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모두 그들의 힘이 되지는 못한다. 규칙에 따라 살기 때문에 그 규칙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규칙이 없어질 때 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그들을 창조적인
생각으로 이끌지 못 한다. 그래서 물건은 잘 만들지만 새로운 개념의
창조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이런 모습들은 그들 전체의 모습은 아니다. 벌써 베네딕트
박사가 일본이란 나라를 파헤친지 4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들은
정체된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다. 하나 둘 껍질을 깨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론가 끊임없이 뻗어 있는
고속도로 위에서 과연 그들의 힘과 모습은 어디로 뻗어 있을지
궁금증만 더하게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한 시간으로서 1주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품었던 작은 의문의 답을 다 얻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 답을 풀 수 있는 힌트는 참으로 많이 얻었던 셈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의 하나 하나에 'made in japan'이라고 적어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그 겉 포장에 'made in korea'란
글자를 적어 넣을 수 있을 뿐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오는 비행기에
오르면서 지금은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처러머 일본을 배우러 왔지만
앞으로 100여년이 다시 흐른 후에는 일본을 배우러 일본 땅에 발을
내 딛는 것이 아니라 고대 문명을 전파해준 왕인 박사 일행처럼
그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기 위하여 발을 내 디딜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짧았지만 많은 것을 담아 올 수 있었던 연수였던 것 같다.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신 LG 반도체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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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봐도 너무 딱딱한 글이다. 내가 어떻게 이런 딱딱한 글을
썼을까? 논문만 읽고 고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보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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