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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가장 소중한 것은...

by 피터K 2021. 6. 18.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오늘부터 하루 하루는 참 묘한 날들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이 날이 올 것인가라는

묘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주에 들어서자마자

날짜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하는 것 같고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느낌이다.


훈련소에 있을 때의 일이다.

관물함에 보면 자그마한 책상이 하나 있는데 그 책상 위에는

온갖 낙서가 적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달력이었다. 대부분 4주 특례 훈련이거나 방위병들의 훈련이

많았던 중대라 그 달력의 날짜도 4주짜리가 많았다. 

하루 하루 가위표를 해 나가면서 빨리 시간이 흘러 가기를, 그리고

어서 훈련소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론 나도 그 하루 하루들을 보면서 어서 빨리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한, 두 주는 참으로 시간이 안 갔던 것 같다. 하지만 세번째 주에

들어 서자 반을 접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훈련소 생활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금방 금방 하루 해가 저물어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사람들은 앞으로 몇 일이 남았는지 세는 것이 아니라

몇 끼가 남았는지 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열흘이 남았을 때

또 열끼가 남았을 때 자기들도 모르게 얼굴에 묻어 나는 묘한 

웃음이 있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지금의 내 모습이 그런 것만 같다.

날짜는 정해 졌지만 결코 올 것만 같지 않던 날들이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 왔다. 그렇게 차분히 카운트 다운을 하고 있으면 나도 이제

지금까지의 인생의 한 chaper를 닫고 새로운 chapter를 쓰기 시작하게 된다.

이제는 혼자 적어 왔던 인생의 일기를 두 사람이 나누어서 말이다.


살아 가는데 있어서 뭔가 기다리며 살아 간다는 것은 삶에 어떤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나면 이젠 어떤 일을

눈 앞에 놓아 두고 살아 가게 될까?

그것이 무엇이 되든지 그 하나 하나가 삶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막연함에 앞서

약간은 들뜨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리고 때론 어린 아이와 같은

설레임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기.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걸린 달력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약간은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하루에 가위표를 그려 본다.

그리고 입가에 스며드는 미소가 남들 눈에 띄일까봐 숨겨 버리고 마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하루를 접어 본다.






이 모든 것을 '당신과 함께...'라는 말로 포장해 보고 싶습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어떤 절차나 의식보다도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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