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요즈음은 저널에 제출한 영어 논문 수정에 정신이 없는 편이다.
박사 3년차가 되도록 아직 해외 저널에 논문을 제출해 본 적이 없으니
어찌보면 참 한심한 박사 과정 학생인지도 모르겠다. 핑게를 대라면
그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뭔가 독창적인 알고리듬을
세워 본 적이 없었고, 실험실 뒤치닥거리는 하느라 실무 경험만
쌓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핑게도 박사 학위라는
것을 위해서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생각하면 정말이지 별 납득할만한
변명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도 가끔씩 영어로 리포트라든가, 혹은 학부 졸업 과제 리포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저널에 낼 full paper를 영어로 적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처음 석사 과정에 들어 왔을 때 2달이나 걸려
공들여 적었던 영어 논문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어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못내 아쉽기도 하다. 특별히 무슨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논문에 사용되는 문장 하나 하나를 영어로 적는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더구나 표현력의 부족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휘력의
부족이라고나 할까 막상 필요한 단어를 꺼집어 내지 못하고 늘 오래된
한영 사전에 근근히 의지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한영 사전인데
마침 단어 하나를 찾으면서 사전의 맨 뒷장에 적혀 있는 문장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낯선...
내게 있어서 아버지란 분은 참 엄하신 분이다. 아니 실제로 엄하시지는
않다. 내 스스로 엄한 분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어느새 나의 마음에
그런 선입견(?)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어렵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것 같다.
몇 주전 집에 잠시 쉬러 갔을 때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여동생이
두 오빠를 끌고 동네 커피숍에 가자고 부추겼다. 난 사실 좀 피곤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여동생이 할 말이 있다며 나의 팔을 잡아
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세 남매가 한 자리에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여동생이 두 오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의 학교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 생활이란 무엇이든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믿는 여동생은 약간 운동권에 가까운 동아리에 들었는데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약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께는
모든 말씀을 다 드렸는데 정작 아버지께는 아무런 말씀을 못 드리고
있는가 보다. 자신이 집회의 앞 무대에 나가서 춤을 이끄는 그런
동아리에 들어 있고, 지금은 지났지만, 지난 노동절 날 연세대에 들어
간다는 말을 말이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여동생의 고민으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는 세 남매의 아버지에 관한 느낌으로
어느새 옮겨가고 있었다. 우리 세 남매는 공통적으로 아버지란 분에
대해서 어떤 '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버지 앞에서는 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는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우리에 대해서 어떤 '벽'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닐까? 아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거의 없다는 말은 아버지도 우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때론, 아버지가 우리 가족들과 약간 떨어진 존재는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과 어려움을 느끼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생각이 문뜩 스쳤다.
그날 이후 우리 세 남매는 아버지에게 우리가 가진 '벽'을 허물기로
약속을 했다. 난 내 나름대로 아버지와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어느새 굳어져 버린 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난 어버이날, 아버지께 솔직한 어떤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여전히 아버지는 내게 어려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피터에게, 새 학기를 축하하며, 1986년 2월 15일, 아빠가...'
아버지 특유의 고딕체와 같은 글씨체로 나의 빛바랜 한영 사전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그 때 아버지께서는 나와 남동생에게 이 한영 사전을
한권씩 선물 하셨다. 아버지께 받은 선물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선물을 받아 보지 못한 우리 형제로서는 참 낯선
선물이었다.
문뜩 발견하게된 아버지의 오래된 글씨에서 아버지의 부드러운 노크 소리를
듣게 되었다. 피터야, 너 거기 있니?
아버지에 대한 알수 없는 어떤 '벽'과 어려움에 관한 느낌은 아마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늘 나의 마음 속에
살아 있으며, 나의 든든한 안식처가 될 것임은 알고 있다.
또 다시 어떤 시간이 지나길 빌어 본다. 그 사이, 벽은 허물어 지고
내 힘겨운 어깨를 드리우던 당신의 어깨가 이제는 나의 어깨에
기대어져 올 때.... 그 때를 기다려 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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