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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가을을 위한 전주곡

by 피터K 2021. 6. 18.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이젠 아침 저녁이면 살며시 불어 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날씨가 가을 날씨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뜨겁기만

하던 여름이란 계절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일까요? 왠지 가을이란

이름이 약간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후후, 그러다가 또 다시

시간이 지나 겨울이 다가 온다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 입었던

산들의 화려한 자태를 기억하며 가을을 그리워 하겠지요.

그러기 전에 내게 다가 오려는 가을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보아야겠습니다. :)


어제 성당을 나가던 참이었죠. 저녁 식사를 늦게 하는 바람에

7시까지는 갔었어야 하는 건데도 막 효자 주택 단지를 벗어나 

성모 병원 앞을 지날 때 벌써 15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답니다.

많이 걱정했습니다. 미사 시간에 미시 해설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늦는다면 수녀님께서 무척 걱정하실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게 또 무슨 일인지 차들은 막혀서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더군요.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지요. 그런 차 안에 앉아

나도 모르게 카세트를 켜기 위하여 몸을 잠시 돌리는 순간

길가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약간은 건들거리는(^^;) 모습의 한 남자와 그 옆에서 그 팔장을

꼭 끼고 뭔가에 즐거운 듯 웃음을 얼굴에 한모금 머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말입니다. 후후, 아마도 시내의 한 복판에서

그 두 사람을 보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사람이 많지 않은 작은 길가에서 두 사람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겠죠?

그냥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답니다.

두 사람,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

나도 모르게 문뜩 떠오른 생각이었답니다. 

아마도 가을이 내게 어떤 마법이라도 걸었나 봅니다.


그렇게 잠시 낯선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잊어 버리고 있다가 

오늘 다시 어떤 이의 얼굴에서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였답니다.

너무나 신기했죠. 아, 물론 생김새라든가 그 모든 것들은

달랐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에서 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어떤 행복으로 화장을 한 그 친구에게 말이죠.

그래서 커피 한잔의 유혹으로 난 그에게서 행복의 비밀을 알아 보기로

했답니다. 

너 오늘 이상하게 참 기분이 좋아 보여.

그래? 후후후...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내게 잠시 서울에 다녀 왔던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어젠 하루 종일 이 친구가 보이지 않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하, 그랬구나, 서울로 도망(?) 가서 보이지 않았던거구나. 후후..

서울에 갔었던 이유는 물론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했던 거죠.

하하하.. 어쩜 이 세상의 모든 행복한 사람은 연애를 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

둘이서는 처음 만나는 사이는 물론 아니었죠.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만나기로 한 사이도 아니지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특별했을까요?

있잖아,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내가 먼저

도착했거든. 시간이 지나서 약속 시간이 다가 오고 이제 곧 

코너를 지나 그녀가 나타 날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말이야.

그 때 참 묘한 생각이 드는거야. 이젠 서로에게 참 많이 익숙해지고

그럴 때인데도 시간이 조금씩 더 약속 시간에 가까와질수록 나도 모르게

자꾸만 두근거리는 느낌이 드는거 있지. 마치 처음 만날 때 그 느낌처럼

말이야. 후후, 그래, 여자 친구가 조금 늦어서 날 기다리게 만들었는데도

화가 나거나 하는 기분이 보다는 계속 어떤 두근거림이 남아 있는거야.

너무나 이상했어. 

아주 사소한, 정말 어떻게 보면 참 아무 것도 아닌 느낌인데 말이죠.

늘 그랬듯이 난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웃어 버리고 

말아야 하는걸까요? 후후... 그리고 이 친구는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여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 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잠시

이렇게 기도 했더랍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제게 허락하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평생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죠. 아마도 그 친구는 그런 마음으로 평생 지낼 수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느 광고 문구의 이야기처럼 하루를 만나도

일년을 알았던 것처럼, 그리고 십년을 만났어도 일년동안 알았던 느낌처럼

늘 그런 느낌으로 살아 갈 것이란 생각이 말이죠.

그 친구의 환한 웃음 한 조각을 조금만 떼어 낸다면 그것도 죄가 

될까요? 후후... ^^;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작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어느 노부부가 있었죠.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교통 사고를 당하셔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답니다. 나이 때문이라서

그런지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는 온 몸에 온갖 종류의 

기계들을 붙이고 계셔야만 했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밤새 할아버지를 간호하셨답니다.

어느 날 늘 지친 표정으로 병실을 나오시던 할머니의 얼굴에 

왠일인지 그날따라 환한 웃음이 서려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궁금해서 할머니께 물어 보았죠.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랍니다.

할아버지가 자기를 늘 사랑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계셨더랍니다.

하지만 오늘 이제 막 간호를 마치고 나오기 전에 할아버지께

얼른 완쾌하길 바란다면서 가볍게 입맞춤을 해 드렸답니다.

그 때였답니다. 갑자기 평소와 같은 소리를 내던 심전도계의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빠른 곡선을 그리더랍니다.

후후, 그리곤 할머니께선 말씀하셨죠. 아, 그걸 보고 나니 

남편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입니다.

:)


앞으로 여자 친구를 만날 때면 심전도계를 달고 나가야 할까요? ^^;

그리고 손을 서로 잡거나 살며시 안아 주었을 때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심장의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려 주어야 할까요? :)

후후, 글쎄요...

아마 그런 감추어진 그런 모습을 기계를 통해서 보여 주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거나 혹은 살며시 안고 있다면 살짝만 귀를

귀울여도 서로의 두근거림은 느껴지지나 않을까요?

아마도 제 친구라면 여자 친구를 기다리며 몹시도 설레던 그 마음은

천사가 그녀의 귀에 속삭여 주지 않더라도 서로 느꼈을꺼라고

생각해 봅니다.



가을이랍니다. 모두가 어떤 결실을 맺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 때이죠.

봄이나 지난 겨울이 끝날 무렵 무엇을 심었는지 떠올려 보지 않더라도

또 그 때 더 많은 씨를 뿌려 둘 걸 하고 걱정 하지 않아도 

무엇인가 하나씩 얻어지는 작은 열매들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환하게 밝아지는 계절이랍니다.

난 어떤 걸 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친구와 여자 친구는 무엇을

얻을까요? 

아주 커다란 선물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으로

찾아 오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가을이 가진 그 포근함을 닮아 가려나 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가을에 사랑을 추수 하기도 하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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