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어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전에 썼던 글 중에 하나를 어느 사외보에
실을 수 있겠냐는 메일이었다. 나로서는 조금은 반가운 메일이었지만
그 뒤에 붙은 몇마디의 질문이 잠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글에 대해서 좀 알고 싶거든요. 마지막의 '나의 천사님' 이라든지...'
나의 천사님....
가끔 글을 쓰다가 어느 누군가가 생각이 나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맨 마지막에 그 사람에게 헌정하는
메모를 달곤 한다. 물론 직접적인 이름은 적지 못하고 대부분 이런 식으로
맺음을 하는 것이다.
'나의 천사에게....'
그렇지만 지금 그 천사는 내 곁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문뜩 선녀와 나무꾼이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어릴 때 한번쯤
책으로 읽어 보았거나 혹은 인형극으로 보았을 법한 이야기이다.
사슴의 도움으로 선녀들이 내려 오는 장소를 알게 되고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훔침으로써 그 선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이야기
말이다. 끝은 나도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겠다. 결국 선녀 옷을
알려 주어서 선녀가 아이들과 함께 하늘 나라로 되돌아 가는 것으로
끝이 나는지 아니면 그러다가 다시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 나라로
올라가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나는 것인지 말이다.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 건 나무꾼이 선녀를 얻기 위해 왜 옷을 가져 가야만
했는지, 그리고 또 내내 왜 그 옷을 숨겨야만 했는지, 그냥 그 생각이
떠 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흔히 천사라고 부른다.
아마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또한 지나간 추억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자신의
천사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떠한 슬픔을 주었는지
아니면 어떠한 아픔이 있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 힘든
기억들은 모두 흩어지고 아련한 어떤 느낌만 남아 그 사람을
하나의 천사로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아마도 내가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던 이도 처음엔 늘 같이
있던 천사로 그리고 시간이 지나선 잊혀지지 않는 어떤 천사로
남아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천사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천사는 자신의 날개가 있어서 어느새 마음에 두고 있다고 여기는
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어떤 곳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천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마음은 이별의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 있는 그 옷을 숨겨야만 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늘을 날지 못하는 어떤 이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되면 두 사람은 결국엔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을 시작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은 땅에 속했으며, 다른 이는 하늘에 속해 있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엔 그 날아가버리는
이를 천사로 기억하게 되는 순리일지도...
오늘처럼 비가 오고 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어 버린 날이면
가끔씩 그 천사가 그리워진다. 오후의 맑은 햇살을 그리워 하는 이유는
그 환하게 드러난 푸른 하늘 위로 얼핏 지나 가는 나의 천사의 뒷모습이나마
볼 수 있을까 하는 바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그 날개 때문에 결코 사랑해서는 안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천사의 날개를 꺽을 수는 없으니 내게 힘껏 펼칠 수 있는 날개가
돋아 나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그 하늘을 향해서 힘찬 날개짓을
해 보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렇게 한 사람의 천사가 다른 한 사람의 천사를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말이다.
하늘이 그렇게 맑고 돌아갈만한 곳이라면 나도 그 하늘로 되돌아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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