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벌써 새 건물로 이사를 온지 석달이 지났다. 처음 느끼던 어떤 어색함도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함으로 바뀌어 갔고 새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야릇한 신나 냄새도 수많이 지나 다니는 사람들의
체취 사이로 감추어져 버렸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보안 상의 이유로 저녁 6시가 되면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서 학생들에게 출입증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학생증과 온갖 카드로 배가 볼록해진
다이어리가 하나의 카드를 더 집어 삼키게 되었다.
악세사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난 생일날 친구가 작은 목걸이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목걸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무로 깍은 작은 인형(?)같은 것이 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선물한
친구의 말을 들어 보면 인도와 네팔 등을 여행하던 어느 여행가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 내게
이 선물을 하면서 친절한 충고(?)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이거, 여자를 쫓아 주는 부적이야...'
후후...
난 가끔씩 이 목걸이의 줄에다가 출입증을 매달고 다닌다. 잠시
밖으로 나갈 때마다 늘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에
출입증을 손에 따로 들기 힘들어 클립으로 목걸이 줄에 매달아 두는
것이다. 그러면 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악세사리가 되기도 한다.
저녁 6시가 넘어 건물의 문이 잠기고 나면 실험실로 들어 오기 위해서
입구에 마련된 카드 리더 안으로 출입증을 찔러 넣으면 이런 메세지가
나오며 잠시 후 자동문이 스스르 열리게 된다.
"카드를 읽고 있습니다."
"출입이 허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점점 자신을 남에게 숨기는 능력을
배워 간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 때문에 아니면 혹은 어쩌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게 되면 이야기는 그저 가벼운 농담이나 주위에서
일어난 자잘한 사건들의 소일로 끝나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거리감없이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들어
낸다는 것을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을 다시 한 사람의
친구로 알게 된 후라도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속내 마음을 잘 열지
않는 듯하다. 막상 누군가 톡을 걸어서 그냥 답답해서 속상한 이야기나
털어 놓을려고 그랬어요 라고 말을 하더라도 막상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그 이야기는 잘 털어 놓지 않을 때도 있다. 낯선 이의 어떤 마음 속을
읽어 본다는 것이 그 사람으로서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늘 친하게만 느껴 왔던 그리고 우리 사이엔 이제 허물이란 없어 라고
생각해 오던 이가 그런 벽을 쌓아 버리고 나면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 저 친구도 이제 어른이 되어 가고 있구나...
어떤 고해 성사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가까웠던 친구가
아니면 내가 모든 걸 털어 놓을 수 있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벽을 쌓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을 느끼고는 한다. 늘 가까이만 있다고
느끼던 이가 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어떤 낯선 이와 다를 바와
없다는 기분을.
그래서 인지 때론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 달라고 부탁해 볼 수 있는
출입증이 있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아니, 그냥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야... 네 문을 두드려 보고 싶어.
모든 걸 알고 싶어서 그리고 그 사람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래도 어느새 우리가 서로의 사이에 쌓아 버린 벽을 조금만 허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느새 그이의 문을 두드려 본다. 나 그냥 좀 답답해서 말이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 갑자기 아르바이트가 취소 되어서
시간이 남아 버렸는데 덩그라니 켜진 형광등만 날 바라 보고 있는
방에 있기 싫어서 널 찾아 왔는걸. 가끔은 외로운가봐. 사람이 그리운가봐.
그냥 말을 하고 싶었거든...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나도 어느새 내 주위에 벽을 세우기 시작하고 어른이 되어 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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