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 보지만 내가 보는 모습은 내 외면의
모습일뿐이다. 아마도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걸어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때론 내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할 때가 있다. 남을 이해하기는
오히려 쉬울지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는건 바로 내 자신인 것 같다.
내가 낙관론자인지 비관론자인지 난 모르겠다.
지난 학기에 학교 생활이 너무나 힘들다고 미국에 있는 가족한테로
훌쩍 떠난 후배가 있었다. 가족마저 가까이 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어딘가 쉽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무척이나 힘들어 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가끔씩 나를 찾아 와서 고민이라든가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곤 했으니 말이다. 그 후배가 어느날 갑자기 없어졌다.
물론 작은 학교 안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수인데다가 식사 시간에 길을 가다가 마주치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에 난 한동안 그 후배가 학교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몇달후 아는 다른 후배로부터 그 후배가
훌쩍 미국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가 휴학을 하고 미국으로
가 버린 것조차도 겨우 몇 사람에게만 이야기 한 모양이었다. 같은 과
동기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많이 힘들어 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주소라도 안다면 편지라도 했을텐데
그 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참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찾아 왔다는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을 쳐다 보니 바로 그 후배가 서 있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난 그 후배가 돌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미국에서 가족들과 한 6개월쯤 함께 지내다가
이번 학기 복학하러 다시 돌아 온 것이었다. 잠시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개학하면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후배가 조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그리고 예전에 가진 그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학기가 시작되고 생활이 다시 바빠지면서 정신이 조금 없었지만
자기도 이젠 친구들이 대부분 졸업을 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던
후배와 함께 어울릴 자리가 많아졌다. 나도 이제는 친구들이 많이
떠났기 때문에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우리 학교의
단점일수도 있겠지만 서로 터 놓고 의지할만한 친구가 없으면
정말로 견디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런 이유때문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그 후배와는 친구 아닌 친구가 되어 버린 셈이다.
어느날 저녁을 먹고 나서 매점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님은 너무 자신을 숨기는 것 같아요."
"내가?"
"네. 다른 사람에게는 무척 잘 해 주려고 하고 다른 이의 속 마음을
알아 보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철저하게 숨기고 있어요."
내가 나를 숨기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때론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터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해요. 즐거운 때에는
기쁘게 웃지만 화 났을 때에는 화도 낼 줄 알아야 해요."
아마 나의 어떤 한 모습이 그 후배에게 그렇게 느껴졌었나 보다.
난 화를 내는 편이 아니다. 겉으로는 말이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대부분 속으로 삭이며 시간이 지나가 그냥 스스르 풀리기를 바라는 편이다.
하지만 후배의 말에 따르면 그게 본인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하는 상대방은 무척 어려운 사람이 된단다.
"선배가 화가 났을 때 아무 말도 안 하면 상대방도 몰라요. 그리고
또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도 모르고요. 음.. 내가 생각하기에, 그래서
누구와 사귀기 위해서는 웃음도 필요하고 싸움도 필요한 것 같아요.
아마 사랑이라는 것을 해도 마찬가지 일꺼에요.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거래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냥 스쳐 가는 사람이 아닌 솔직한 사람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잘 해 주려는 관계가 아닌 무언가를 나누는 관계라는
것 말이다. 나를 많이 죽이고 상대방에게 무턱대고 잘 해 주려는
생각이 있어서 인지 다른 사람 보기에는, 특히 그냥 스쳐 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냥 착한 사람같아 보이지만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고
나와 계속 관계를 이어 오는 사람이라면 마냥 착한 사람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생각을 나누고 그리고 때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 될까?
"그래서 선배를 보면 가끔 답답해요."
나를 스스로 들여다 보지는 못하지만 이 후배는 나를 들여다 볼 줄
아나 보다. 나의 외모를 들여다 보는 거울이 아닌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거울같으니 말이다.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사람의 인연을 묶어 주는 끈인지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나눔이라는 것을 다시
끼워 넣는 것은 많이 힘이 드는 작업인 것 같다. 사람의 성격이 한순간에
변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주는 것은 나눔의 반쪽인 셈이다. 나머지 반쪽인 받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살아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습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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