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덧 1997년도
막바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문뜩 쳐다 본 달력엔 이제
남은 날들이 한줄만 덩그라니 남아 있다. 얼마 남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 때문일까? 묘한 기분들이 교차해 지나가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서울 출장을 가게 되어서 큰 맘 먹고 크리스마스를
서울에서 지내고 내려 왔다. 프로젝트 때문에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으신 교수님 앞에서 전 쉬다가 내려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는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왠지 집에 조금 있다가 내려 오고 싶었다.
내려 오자 마자 제일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은 책상과 잡다한 서류들의
정리였다. 과제 발표 준비를 한다고 벌려 놓았던 서류들의 너무나
정신없게 널려 있어서 이것을 정리하지 못하면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는 참에 책상 서랍을 뒤지게 되었는데
그 서랍 안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편지들이 수북히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떠난 친구의 첫번째 편지와 크리스마스 때 받은
카드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편지로만 안부를 주고 받던 친구의
반가운 글씨, 유일한 화이트 데이의 초콜렛까지...
잠시 정리를 미루고 편지와 카드들을 하나씩 읽어 보았다.
후후... 모든 편지와 카드에 꼭 내년엔 좋은 짝 만나라~~ 하고 적혀
있지만 그 내년이 이제 마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친구에게 받은
올해의 카드에도 그런 말이 적혀 있던데 내년에도 어쩌면 난 똑같은
글을 쓰고 있으련지도 모르겠다.
날 보고 싶다고 적어 놓은 결혼한 여자 친구의 글을 보며 나도 문뜩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이성이긴 하지만 늘 마음이 통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늦은 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득한 상상 속에 함께 여럿이 도서관에
모여 함께 공부하던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 친구의 생일에 보낸 메일의 답장도 나를 오랜 기억 속으로
이끌었다. 나의 홈페이지에 모아둔 글을 보고 옛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거기엔 우리가 함께 모여 공부하던 일들, 그리고 서로의 추억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기억들이 달빛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별빛에 물들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어쩌면 지난 일년 동안의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이제는 별빛에 물들어 가지런히 줄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게 물들기 바라면서 이제 하나 둘 곱게 접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잃은 것들이 많았던 한해였던거 같다.
아쉬움에 마음 아팠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던 1997년이 이제 저물어 간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