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나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태어 나자마자 세례를 받는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어떤 종교적 고민도 없이 처음부터 나의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천주교인으로서 바르게 살아
왔는지 따져 보면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대로 성당에 다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와서야 정말 정신 차리고 한번 잘 해 보자는 생각으로
성당에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성서 지식에 대해서는 영 아는 바가 없었고 학부 때
몇번 성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들어 보는 수준에서
그친거 같다. 하지만 올해 묘하게 학교 내에서 청년 성서 모임이
생겨서 약간은 본격적으로 성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시간에 늘 쫓긴다는 핑게로 미리 준비도 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성서 공부 시작되기 두시간 전에 겨우 성서 읽어 보고
준비를 마치지만 말이다.
성서 공부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생활과 묵상' 부분에
보내게 된다. 성서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자기 생활은
어떠한지, 또 어떤 느낌인지... 그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모여서 하다 보면 같은 질문에 대해서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거나
새로운 질문을 내 스스로 떠 올려 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참으로 재미있고 신기한건 그런 질문들이
내가 정말로 필요할 때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 조금 있다가 해야 하는 성서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 저것 써 내려 가고 있었다. 오늘 부분은 카인과 아벨에
관한 부분인데 거기에 질문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 사회와 내 안에 있는 카인의 요소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요한I 3.15-18)
난 아무런 생각없이 이 요한서를 뒤져서 3장 15절부터 읽어 보았다.
이 묵상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 할만한 내용이 있으니 이렇게 적어
놓았겠지... 라는 정말로 막연한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난 정말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오늘은 내가 이 구절을 읽을 수 밖에 없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셨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 I 3.18
요즈음 들어 생활이 엉망이다. 피곤한 일이 많기도 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때론
스스로에게 화가 날 정도로 엉망이다. 점점 아침에 일어 나는 시간이
늦어 지고 때론 끼니도 거르게 되고 열심히 체육관에 가던 시간도
다 잊어 버리고 겨우 방에서 전에 하던 간단한 운동만 하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친구에게 늘 미안하다, 노력할께 라는 말만 되풀이
해 온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노력할께, 다시는 안 그럴께.. 라는
말 후에 행동으로 옮긴게 얼마나 될까?
저 복음 말씀을 읽고 나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 오는 건 아마도
내 스스로가 말로나 혀 끝으로만 사랑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닐지...
내 자신에게 가끔씩 화가 나는 요즈음인거 같다.
이제는 뭔가 좀 달라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과 노력할께라는 말이 더 이상 공수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주님께서 오늘 내게 저 구절을 읽게 해 주심으로써
작은 벌을 내리신거 같다.
그렇게 늘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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