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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오늘 하루의 기도

by 피터K 2021. 5. 30.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예전에 읽었던 동화가 한편 기억이 나네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해요.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말이죠.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이 있죠. 그 태양이 하나가 아니래요.

태양들도 어떤 마을을 이루고 산다고 하네요.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돌아 가면서 지구를 방문한데요. 하나의 태양이 두세번씩 지구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태양은 꼭 한번만 태양을 방문하게 된다더군요.

그 태양 마을에 어린 태양이 하나 있었데요. 그 어린 태양은 아직

자기 차례가 돌아 오지 않아서 늘 자기 차례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먼저 지구를 다녀 온 태양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이죠.

지구를 다녀온 태양들은 자랑스럽게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하고 다녔답니다. 

'내가 지구에 갔었던 날은 인간들이 전쟁을 벌인 날이었어. 정말

볼만 했지...'

'난 말야, 어떤 나라에서 대학살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단다. 

대단하더군...'

'말도 마, 내가 간 날은 처음으로 인간들이 원자 폭탄이란걸 떨어뜨린

날이었지.. 굉장하더군...'

모두들 자기가 지구에 갔었던 날들을 그렇게 말하곤 했지요.

꼬마 태양도 아주 멋진 것을 기대했었어요. 또 그 꼬마 태양의

부모님들도 꼬마 태양에게 '너도 멋진 모습을 보게 될꺼야. 그리고

인간들은 네가 지구에 갔었던 날들을 기억하겠지...' 하고 말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꼬마 태양이 지구를 방문하는

날이 왔지요. 꼬마 태양은 기대에 넘쳐 지구로 떠났답니다.

아침 일찍부터 지구에 갔던 꼬마 태양은 아주 눈을 크게 뜨고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경했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그 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어요. 아무런 사건도 일어 나지 않았고 꼬마 태양의 눈길을

끌만한 사건이 하나도 없었지요. 꼬마 태양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데요.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기는 태양 마을로

돌아가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남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가 지구에 갔던 날을 이야기 하는데

꼬마 태양은 아무 것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 없었답니다.

시간이 계속 흘러 꼬마 태양은 지구를 떠날 시간이 되었고, 꼬마 태양은

풀이 죽은 상태로 태양 마을로 돌아 왔답니다. 

기운이 빠진 모습의 꼬마 태양을 보고는 모두들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해 주었죠. 그런 위로의 말도 어께가 늘어진 꼬마 태양의 기운의

북돋아 주지는 못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지구에 다녀온 다른 태양이 꼬마 태양에게 아주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답니다.

'꼬마 태양아, 오늘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어제 온 지구 상에서 아무런 사건이 없었던 날이어서 모두들 기뻐하고

있어. 이건 처음있는 일이래. 그래서 사람들이 어제를 전 세계에서

사고가 없었던 날로 기념하기로 했데...'

꼬마 태양은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꼬마 태양의

부모님도 기뻐해 주었지요. 이제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가

지구에 다녀온 날을 모두 기억할꺼라고 말이죠....



매번 친구에게 메일을 쓰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적어 넣곤 해요.

오늘은 또 어떤 놀라운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매일 그런 놀랍고 행복한 일만이 일어 나지는 않겠지요.

때로는 힘든 날도 있겠고, 지루한 날도 있겠지요.

그러나, 위 동화처럼 정말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는 하루도 은근히

기대를 해 봅니다. 긴장이나 두려움도 없고 깜짝 놀랄만한 선물도

없고 행복해서 웃음이 가득한 날도 아닌 그저 가만히 평화로운

날을 말입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기억되겠지요.

오늘은 일기장이 하얀 날이라고...


당신의 그런 맑은 날도 기원해 봅니다.

또한 그런 날엔 나를 기억해 주기를...



피터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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