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특히 남자 친구들과, 뜻하지 않게
여자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 한가지는
여자를 보았을 때 어디를 제일 먼저 보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어디선가 설문조사까지 한 걸로 기억한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1위는 성과 관련된 부분이었던 것 같다.
가슴, 혹은 엉덩이 부분. 물론 얼굴 부분도 적지 않는 표를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내가 그런 질문을 받았더라면 난 주저 없이 '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왜?'라는 다른 질문이 그 뒤를 잊는다면 난 내가 늘 하는 말대로
'그냥...'이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늘 시선이 먼저 손으로 가게 되는걸...
어제였나 보다. 커피를 한잔 뽑기 위하여 4층에서 1층까지 내려 가는
동안 층계참에서 스쳐 지나 가는 학생을 하나 만났다.
그 때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는데도 난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손으로 갔다. 음...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손을 한번쯤 쳐다 보는 것은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 친구의 손을 얼핏 보는 순간 나의 시선을 잡아 채는 한가지
물체를 보게 되었다. 그건 그 친구의 손에서 반짝이던 작은 금반지 하나였다.
그건 또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 반지일까?
그러고 보면 가끔씩 훔쳐 보는 사람들의 손에는 숨겨져 있는 반지들을
볼 수가 있다. 구지 금반지만이 아니더라도 은반지도 가끔 보이고
실반지 모양에서부터 때론 혐오스러운 모습도 지니고 있다.
사연은 갖가지겠지만 어떤 것은 부모님이 사 주신 것도 있을 것이고,
혹은 애인이 사 주신 것일 지도, 아니면 학과 졸업 반지일지도,
이도저도 아니면 자기가 사서 낀 것일지도...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다들 조그만한 일들과 연관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연애를 하는 방돌이(<- 이 친구 나 덕분에 스타 되었다. ^^;
나한테 이 친구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다 있더라...) 덕분에
요즈음 들어 연애 하는 사람들의 전형을 잘 보고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행운목 화분이라든지 블라인드처럼 그들을 이어 주는
끈들을 함께 알게 되곤 한다.
어쩌면 반지라는 것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이련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의 손을 한번쯤 훔쳐 보면서, 또 거기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반지의 모양을 보며 가끔씩 생각을 해 본다.
저기엔 또 어떤 사연이 묻어 있을까... 하고...
내가 누군가의 손을 들여다 보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아마도 그건 내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는 할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시던 할머니의 그 주름진 손과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감싸 주시던 그 보드라움이 때때로
이렇게 기운없는 날이면 한번씩 떠오르기 때문일까?
20대 여인의 손처럼 매끄럽거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내게 있어선
실크보다도 부드러웠던 손이 그리워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나와 늘 이어 주고 있는
그 어떤 것을 할머니는 손에 가지고 계시지는 않았을까?
할머니의 손에선 반지가 아닌 그 어떤 것이 늘 보였으면 좋겠다.
갑자기 날씨가 선선해지고 하늘은 다시 구름으로 뒤덮였다.
가끔 구름이 흩어져 파랗게 펼쳐진 가을 하늘이 보이면
그 높이 열린 창문을 통해 할머니에게 안부나 전해 보아야겠다.
늘 제 곁에 계신거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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