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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괜시리 눈이 부셨던 날에...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살아가다 보면 때론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는 한다.

이런 말은 피 천득씨의 수필, '인연'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은 참 묘하게도 엄청나게 얽혀 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삶이란 인생길에 꼭 누군가와는 한번쯤 엇갈리게 만들어져 있다.


구지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시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사랑이라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뜻과 모양새가 있기 나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고 하면 공통적으로 한가지

사실은 맞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나의 마음 속에 담기를 원하고

나도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는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그 누군가를 마음 속에 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인듯 싶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 속에 들어 가지 못하면 두 사람은 이별이라는

다음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서로의 인생이 잠시 엇갈렸다가 다시 멀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자신의 인생길에는 묘한 표지판이 남게 된다.

'추억'이라는 긴 차선의 자국이 말이다. 그 차선을 지날 때마다

씁쓰리한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아니면 그 기억이 너무 아쉬울 때도

있다. 그건 아마도 그 추억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달린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엇갈림에 있어서 또 하나의 경이로움은 아마도 

재회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추억의 빛이 희미해져 가는 줄로만 느꼈었는데

다시 한번 그 사람과 삶의 길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과연 어떠한 느낌을 가지게 될까?



나로서는 지난 며칠동안이 무척이나 가슴 두근거린 하루들이였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고 싶지 않았던

이와 다시 한번 만날 수도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 주지 않던 마음을 가진 사람. 그리고 결국에는 그 앞에서 그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떠난 사람. 그 두 사람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에 있어서 또 한번 교차하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별의별 생각이 머리 속에 떠 올랐다.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아니 어떻게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글쎄...' 였다. 아무런 마침표도 찍지 못하고마는 것이다.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내 자신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머리속은 텅텅 비어 버린 것처럼

맑기만 했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기우였다고나 할까?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질문의 상황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자신에게 '너 정말로 저 아이를 사랑했던거니?'하는 질문을 던져

볼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모퉁이를 돌다가 갑자기 부닥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말이다.


앞으로도 많은 만남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비단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말이다. 아직은 걸어온 길보다는 걸어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혼자서 걸어야 할 길이

조금 더 남았다고 느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품게 된다면, 그 때 난 너의 앞에 친구로

설 수 있을꺼야.'

가식의 연극 대사는 아니지만 나 스스로 다짐해 보는 말인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품게 된다면....



상처 받은 마음에 누군가를 심게 되는 날, 그리고 우리의 인연이 어쩌면

결코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그런 인연이라고 믿게 되는 날, 나는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바른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나도 이제는 내가 만나야만 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

인연이라는 단어가 빛바래지 않도록 말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날.

오늘은 눈부신 봄의 햇살을 너무나 많이 쳐다 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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