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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작은 용기를 얻기 바라며...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가끔은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버겨울 때가 있다.

지금 당장의 상황뿐만이 아니라 내가 지나 왔던 길을 돌이켜 볼 때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용하게 이겨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이겨'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시 한 번 그 상황에 빠진다면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힘이 든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하나의 해결책은 있게 마련이다.

바로 '포기'이다. 아직은 그런 해결책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걸로

보아서는 아마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힘이 들었던 상황은 없었던 모양이다.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인생 자체의 포기이다.

여태까지 많은 사람이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마지막 선택인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내가 고등 학교 1학년이었을 때였다. 한참이나 대학가는 것이 힘이 드는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우리 학생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살'이었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세 명내지 다섯 명의 학생이 스스로를 포기했고

어떨 때는 신문에 그 이름이 다 실리지 못 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정말 그 때는 무슨 유행 같았다. 다행이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자살한 학생이 있지 않았지만 덕분에 밤 10시 30분까지 하던 자율(?)

학습이 한동안 폐지되기도 했다. 그 때 나온 책이 바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그만큼 우리에게 그 상황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그 시절을 보내온 것 같다. 공부 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기 보다는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상황은 대학에 와서 부닥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늘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것에도 나는 용기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을 직접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끊어 버릴 용기가 있는 사람인 셈이다.


키즈와 같은 인터넷에서는 실제 생활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의 생명을 받아 온 것처럼

인터넷에서는 아이디라는 생명을 받아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늘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그 마지막이 존재하듯이 인터넷에서도

자살이 존재한다. 아이디를 지우면 바로 자살이 되는 것이다.


키즈에서 알게 된 사람 중에 몇 사람은 여기서의 인연을 끊고

떠나 버렸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용기가 필요했을까?

나도 가끔은 Admin에 가서 Xid란 명령어를 쳐다 보고는 한다.

자살하기는 쉽다. 단지 그 명령어를 치면 되니까 말이다.

진짜 삶처럼 고통이나 아픔이 따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부음란이 없으니 말이다.

그저 조용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조용히 지워질 수 있을까?



이젠 떠날 때가 왔음을 가끔 느낀다. 아직 좋은 기억을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말이다.

그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견디기 힘든 상황이 다시 왔을 때,

나는 자살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용기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버릴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내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 가기 위한 
                       작은 용기를 얻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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