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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기억해봐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옛날에 지하철 4호선 숙대 입구 역 앞에 극장이 하나 있었다.

그 극장 이름이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다지 좋은 극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좀 야한 영화라든가 아니면 재탕을 하는

그런 극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내게 초대권 2장이 쥐여졌는데

바로 그 극장의 초대권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Made in Heaven".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고 여자 주인공은 

탑 건에 나오는 여자였다.(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생각이

안 난다... 흑흑.. 치맨가봐..  T.T )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하다 못해 누구랑 갔었는지도)

영화 내용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멋진

사랑영화였기 때문이었다. :)


한 남자가 집을 떠나 도시로 직장을 구하러 나섰다. 도시로 가던

도중 다리에서 차가 강물에 빠진 사고를 목격한다.

안에는 어린 아이가 타고 있었고 남자 주인공은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다. 아이는 구했지만 남자는 죽고 만다.

죽은 남자는 하늘 나라로 가게 되고 거기서 하늘 나라 생활을 한다.

거기서 사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대천사 라파엘(맞나??)도 나오고

영혼들은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있고, 또한 마치 텔레포트 하는 것처럼

공간을 이동해 다닌다. 대천사 라파엘은 우리가 입고 있는 그런 케주얼

스타일 옷도 입고 다닌다. :)

죽은 남자는 거기서 생활해 가다가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나 여자는 환생할 기회를 얻게 된다.

여자는 먼저 세상으로 떠나면서 남자에게 한가지 약속을 한다.

"Remember, We've never danced together."


여자는 환생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 보낸 남자는 외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대천사 라파엘을 찾아 간다. 자기도 환생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건 대천사 라파엘의 마음대로 될 수 없는

문제이다. 남자는 계속 대천사 라파엘에게 졸라댄다. 마음이 돌아선

라파엘은 한가지 조건 하에 남자의 환생을 도와 준다.

"25살이 될 때까지 그 여자를 만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 오게 된다."


급하게 환생하게 되어서 인지 남자는 어느 창녀의 사생아로 태어 난다.

물론 여자는 한 육군 장성의 어여쁜 딸로 태어났지만...

환생 하였기 때문에 둘은 전혀 전생의 기억이 없다.

단지 이 세상에서 살아 가는 두 존재일 뿐이다.

여자는 정규 교육을 받고 또 대학을 다니면서 상류 사회 생활을 하고

남자는 빈민굴에서 창녀 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면서 삐뚤어지게

커 간다. 남자는 마침내 가출을 하고 길을 방황하게 된다.

24번째 생일날, 남자는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술에 취해 뻗어 있다.

그 때 대천사 라파엘이 나타 난다. 이제 1년이 남았다고...

환상을 본 것같이 느꼈던 그 남자는 자기가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친듯이 음악이라는 것에 열정을 쏟는다.

마침내 그 여자가 사는 뉴욕까지 오게 된 남자. 남자는 음악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음반을 취입한다.

25번째 생일날. 남자는 웬지 우울한 기분에 뉴욕의 거리를 방황한다.

여자도 파티 중에 상류 사회의 모습에 싫증을 느끼고 거리로 나선다.

두 사람은 거리에서 두번쯤 지나 친다. 화면에 우선 남자가 지나 간다.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옆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잠시 후 저 뒷골목에서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대로

다른 길로 사라지고.. 

늘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 시내의 한 복판에서 그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남자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서게 되고

그 뒤로 여자가 나타 난다. 남자는 뒤를 휙 돌아 본다.

여자는 멈추어 선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쳐다 본다.

그게 영화의 마지막 이었다. 그러면서 흘러 나오는 노래.

"We've never danced..."

자막이 올라가면서 두 사람은 까페에서 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난 그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구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하지만 유명한 영화도 아니었고 또한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아니어서 그랬는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다만 내 머리 속에서 가끔씩 되뇌어 보기만 할 뿐이다.

"We've never danced...."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가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이 세상에 오기 전 하늘 나라에서 서로 사랑한 사람이 있었던가 하고.

만일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과 어떤 약속을 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아주 사소하고, 그리고 어쩌면 무척이나 유치할지 모르지만

어떠한 약속이라도 했었길 빌어 본다.



"기억해봐... 우린 늘 서로를 맘에 품고 있었잖니...."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수많은
전생의 인연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아직도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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