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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손수건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나는 약간 꼼꼼한 성격을 지녔다. 아니 어쩔 때에는 조금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그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정리 하나만은 잘 하는 편이다.

노트 정리도 정리 중에 하나여서 그런지 수업 노트 하나만은 꼼꼼히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업 노트가 필요하면 내게로 올 때가 많다. 

오픈북 시험이면 1/3 정도가 내 노트를 가지고 시험을 볼 때도 있었다. :)

그런 성격이라서 그런지 물건을 잘 챙기기도 한다. 매일 손에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데 친구가 그것을 보더니 물었다. 그러다가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다이어리는 한번도 잃어 버리지 않았고

정말 잃어 버리면 큰 일이 날꺼다.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에게 한가지 덜렁거림이 있다면 다이어리 때문에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리 챙기는데만 정신이 가 있어서 그런지

정작 손수건이나 겨울 목도리는 잃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손수건 하나가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며칠 전에도 사용을 했었는데 말이다. 며칠 시험 준비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손수건은 도서관에 있으면서 가끔 땀을 닦거나

혹은 세수를 하고 나서 사용한 기억은 있는데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한숨 돌리는 새에 찾아 보니 보이질 않는 것이다. 

이런... :(


그 손수건은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생일 선물로 친구가 내게 손수건이 2개 든 것을 선물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저녁 먹으러 간 자리에서 손수건은 놓아 두고

다이어리만 들고 나왔다. 다른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선물 받은 것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랬더니 선물을 준 친구가 잃어 버린 손수건

대신 하라며 새로 하나를 선물했다. :)

그 다음날 난 운전 면허증을 찾으러 교육 받으러 갔었는데 그 교육이란 것이

4시간짜리였고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척이나 지겨운 내용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서둘러 면허증을 찾아 나왔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교육장에 손수건을 두고 나왔구나.. :(

하필이면 잃어 버린 것 대신하라며 사준 바로 다음날일껀 뭐람..

나는 그 손수건을 찾기 위해 다시 교육장으로 갔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할 수없이 나는 그 곳 직원에게 손수건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 직원은 열쇠 가진 사람이 퇴근했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그랬다.

사실 손수건 하나에 그렇게 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선물 받은 것이라 그런지 오기까지 부리면서 손수건을 찾으려 했다.

다음날 나는 손수건 하나 때문에 아침에 택시까지 잡아 타고 손수건을

찾아 왔다. 정말 사소한 일에 목숨 걸었다는 표현이 이 경우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후후.. :)


그런 사연이 있는 손수건을 결국은 잃어 버린 것 같다. 

아쉬움도 남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다시 찾아 보기는 하겠지만

어디서 나올지 모르겠다.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올해 생일 때에는 아는 동생으로부터 또 손수건을 선물 받았다.

*!* 그러고 보면 손수건 복은 참 많은가 보다. :)  *!*

DAKS 라는 상표의 손수건이었는데 나무로 된 상자에 두개가 들어 있었다.

그 동생은 나에게 그걸 주면서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하나씩 나누어서

쓰라고 했다. 후후.. 난 선물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 손수건은 그대로 나무 상자 안에 넣어 책상 서랍 안에

잘 모셔 두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책상 서랍에서 그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하나를 잘 포장해서 친구에게 선물 했다. 동생에게서 들은

말을 전하며 말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직 책상 위 나무 상자 안에 있다. 꺼내서 사용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웬지 사용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무나 자주

손수건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애 그대로 상자에 넣어 책상 서랍 안에 

보관해 두려고 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은 잃어 버리고 나면 무척이나 속상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손수건이라는 것도 어쩌면 사소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비록 생일 선물이나 혹은 다른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용하기 보다는 그 의미대로만

기억을 하고 잘 간수하기로 했다. 이번에 친구와 나눈 손수건도 그런

의미로 남을 것 같다. 사용하지 않고 그저 나무 상자 속에서 잠만 자는

손수건으로 말이다. 다만 가끔 서랍을 열어 보고,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잃어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모을 수 있는 작은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닌 마음 속에 말이다. 마음 속에 그 장소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물건같은 것은 들어 가지 않을지 모른다.

대신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이라든가 아니면 나누었던 좋은 기억들,

그리고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손 안의 잔잔한 느낌들을...

그 안에 쌓아 두고 싶다. 

이런 것들은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결코 잃어 버리지 않겠지.. 후후..

그러기 위해서 오늘부터 어지러운 내 마음을 정리해 보아야겠다.

얼마나 큰 장소를 만들어 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 둘씩 정리하다 보면

넉넉한 장소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부터 그 넉넉함을 채우기 위해 아주 조그만한 일부터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내 보아야 겠다. 

비록 잃어 버렸지만 그 손수건에 대한 작은 정성과 고마움도 함께

말이다. 이건 결코 잃어 버리지 않을테니...



ps: 만일 손수건을 선물 받은 친구가 그걸 잃어 버렸다면 난 짜증을 낸다거나
화를 낼까? 하하..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손수건 자체보다는 손수건을 
선물한 나의 마음과 정성을 더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것만 잘 간직하고 있다면 손수건 잃어 버린 것 쯤은 참 사소한 일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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