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악세사리를 몸에 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 물건은 나도 모르게 가지고 다닐 때가 많다.
주머니를 뒤지면 우선 손에 잡히는 것은 작은 묵주이다.
묵주는 천주교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묵주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 스님들이 가지고 다니시는 염주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묵주는 50개의 작은 구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 끝에 십자가가 달려 있다는 면에서 염주와는 다를 것이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묵주는 그 50개 중 약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10개의 구슬로 되어 있는 작은 것이다. 구슬이라고 표현을 하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로 되어 있다.
늘 기숙사 방문을 열기 위해서 주머니를 뒤적 거릴 때면 나의 주머니 안에서
잡히는 첫번째 악세사리임 셈이다.
두번째 악세사리는, 어쩌면 악세사리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나의 가장
소중한 다이어리이다. 다이어리도 일종의 악세사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내가 가진 악세사리의 범주에 넣어 두자.
크기는 약 손바닥 만한데 무척 작기는 하지만 내게 소중한 것들이
참 많이 적혀 있는 다이어리이다. 소중한 친구들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전화번호와 각종 메모들이 내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가끔은 기억나는 문구라든가 혹은 싯구들 적혀
있는 페이지에 가서는 차가워진 나의 가슴을 데워 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챙겨 볼 수 있는 악세사리는 한동안 나의 손가락을
차지하던 금반지이다. 금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선호되는 이유는
그 빛깔이 영원토록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원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금으로 된 물건들,
반지라든가 목걸이등을 선물하거나 나누어 가진다.
내게도 나의 금반지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내가 가진 버릇중에 하나는 이러한 악세사리들을 계속 만지작 거린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주머니안에 손을 넣고 있으면 꼭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묵주를 만지작거린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나의 묵주는 벌써 많이 닳았고 반질반질하게 변해 버렸다. 오히려 그런
부드러운 느낌이 더 나를 편안하게 만들고 나의 기분을 달래 주기도 한다.
다이어리는 늘 손에 들고 다닌다. 웬지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으면
무척 허전함을 느낀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꼭 책이라도 한 손에
들기를 바라고 어디 카페에 앉아 있더라도 늘 손은 컵을 만지작거리며
손이 빈 공간을 헤메는 것을 방지하고는 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다이어리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고마운 악세사리임 셈이다.
금반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손은 무척 가는 편이고 마디가
굵은 편이기 때문에 반지가 약간 나의 손가락보다는 큰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손가락 마디에 걸려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 큰 반지는 손가락에 딱 붙어 있지 못하고 늘 헐렁거린다.
그래서 가끔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익숙해지다 보니 별 신경이
안 쓰인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난 항상 손가락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고 손에 걸리적 거리지 않게 늘 새로운 위치를 잡아 주고는
했다. 일을 하다가도 걸리는 일이 생기면 나는 손가락의 반지를 빼었다
끼었다 하며 생각에 잠기고는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일을 하다가 잠시 막혀서 나도 모르게 손을 반지로 가져가는
순간 나의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손을 바라 보고는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 하나... 그래, 어제 빼어 버렸지...
순간은 가끔 영원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왜 그리도
길었는지 말이다. 내가 늘 지녀 오던 하나의 버릇 하나를 잊어 버려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반지가 어떠한 의미로 다가 오던 간에 늘 그 영원이라는 뜻만은 기억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 뜻이 이젠 변해야 할 모양이다.
금이 금으로서 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늘 반짝임을 잃지 말고
자신에게 들어 오는 빛을 반사시켜야 한다. 변하지 않는 영원의 색으로
말이다. 하지만 난 그 빛을 가두어 버렸다. 빛을 발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의미를 잃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나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릴지도 모르겠다.
늘 하던 대로 느슨해진 반지를 만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있지 않은 반지를 발견하게 될 때 난 또 어떠한 느낌을 받게 될까?
어쩌면 지금과 같이 다시 한번 찰라의 영겁을 경험하게 될까?
내게 길들여 졌던 버릇 하나를 완전히 잊어 버리기 전까지는
그 찰라의 영겁속에서 추억을 다 지우지는 못 할 것 같다.
버릇은 늘 나도 모르게 찾아 오는 불청객이기 때문에...
'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해봐 (0) | 2021.05.23 |
---|---|
손수건 (0) | 2021.05.23 |
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0) | 2021.05.23 |
넌 날 어떻게 생각해? (0) | 2021.05.23 |
기억나는 추억 하나 (0) | 2021.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