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우리는 실험실뿐만이 아니라 연구실이라 불리우는 또 다른 방이 하나
있다. 여기는 책상만이 있는 방인데 주로 사람들이 공부하거나
아니면 잡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연구실은 그냥 휴게실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사람들이 공부하기 보다는 실험실에서
일하다 지치면 잠시 들려 담배를 피거나 혹은 잡담을 나누는 장소로서
이용하기 때문이다. 책상은 온갖 우편물과 서류들로 덮여 있다.
그런데 그 책상 위를 잘 살펴 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고는 한다.
바로 각자 연인들이 사진이다.
잡다한 물건들에 덮힌 모래 사장에서 눈에 띄이는 진주랄까?
아무리 책상 위가 복잡하고 어지러워도 사진이 있는 곳은 잘 치워져 있다.
후후, 마치 검열을 받아야 하는 사병들의 마음인 모양이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혹시라도 연구실에 왔다가 흐트려져 있는
사진을 보면 한마디 할지 모른다.
"누가 내 사진 이렇게 해 두랬어? 내가 이렇게 하라구 사진 줬니?"
후후후.. :)
나는 가끔 지나가다가 그 사진들을 바라 볼 때가 있는데 가장 눈에
띄이는 사진은 장가간 실험실 선배 커플의 사진이다. 둘이서 꼭 안고
있는 모습이다. 연구실 전화가 그 선배의 책상 위에 있기 때문에
전화를 받거나 걸고 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진을 쳐다 보게 된다.
그리고는 꼭 한번씩 느낀다. 참, 부럽다... 라는 생각.. :)
그 사진말고 다른 선배의 책상을 보면 또 그런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여자분 혼자 찍은 독사진인데, 선배형도 이 사진이 가끔
서류나 논문에 밀려 쓰러져 있으면 꼭 바로 세워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아끼는 마음에 그럴까? ^_^
음, 세번째 사진은 연구실이 아닌 실험실 동기 녀석의 머신 옆에 있다.
맨 구석이라서 눈에 잘 띄이지 않는 곳이라 한참 후에야 그 사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진이 있는 자리도 실험실 전화가 있는 자리라서
전화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 그러고 보니 전화 걸 때마다 난 사진 구경만 하고 있나 보다. *!*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우리 실험실에서 연구 참여를 했던 후배의
누나인데 이 후배가 내 동기와 그 누나를 소개시켜 주어서 알게 된것이다.
언젠가 그 후배 실험실에 와서 일하다가 하는 말.
"어, 이 사진이 왜 여기 있지?" :)
그럼 나? 후후.. 난 사진이 없다. 나의 책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늘 읽어야 하는 논문과 잡다한 서류들과 전공 서적들만 굴러 다닌다.
아니, 한번은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사진을 여기
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아 보려는 시도는 말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왜냐구? 어흐~~ 그런건 묻지 맙시다. ^^;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고는 느끼게
되는 감정은 하나. 참 사람들이 늘 좋은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사는구나...
이제 곧 아빠가 되는 결혼한 실험실 선배나, 빨리 날 잡아야 한다며
쭝얼대는 선배나, 또 전화비 많이 나온다며 투덜대는 동기나 모두
늘 좋은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 같다. 비록 그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 또한 그 사진을 보며
그 사진의 주인공들을 품고 있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닮아 보려고 한다.
나에게는 지금 집어 넣을 사진은 없지만 내일 이쁜 사진틀이나
하나 사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사진틀을 책상 위 제일 눈에 잘 들어 오는
곳에 놓아 두어야지. 후후..
그런데, 아무런 사진도 들어 있지 않은 빈 사진틀을???
음.. 그 사진틀 안에는 아무 사진도 안 들었지만 난 그 사진틀을
볼 때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 올려 보아야겠다.
오늘은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내일은 곧 멀리 떠나는 내 남동생,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내 여동생....
빈 사진틀에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끼워 맞추어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일꺼 같다.
비록 한 사람의 어여쁜 아가씨가 자리 잡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을 매일 갈아 끼우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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