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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테크의 추억

징크스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집착하고는 한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이는 사물에 까지 말이다.

이런 집착이 조금 심해지면 징크스라는 작은 병이 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잘 되려면 꼭 먼저 그 일이 되어여 한다는... 

아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징크스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있지 않나

싶다.

 [ 오늘 홈런을 치게될 줄 알았습니다. 어제 밤에 그 꿈을 꾸었거든요... ]



비단 이런 운동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하나쯤 그런 징크스를

가지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을 가는데 자기 앞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던가(우리 학교에는 기숙사에 고양이가 많이 살아서 가끔 겪곤 한다.)

아니면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나가는데 바로 저 앞에 타야 할 차가 부웅하고

떠나가고 있다면... 웬지 그날 하루는 일이 잘 안되고 복잡해질때가

있다. 그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지 않고 꼭 이유를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아침에 그 일때문이야.... 


어느날 나에게도 이런 징크스가 하나 생겨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도 모르게 쳐다보는 벽시계...

얼마전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시계인데 이 시계에는 작은 추가 하나 

달려있다. 건전지로 가는 시계이므로 추는 물론 장식용이다. 하지만 

이 추를 동작시키기 위해서 추뒷편에 작은 쇠조각을 달고 시계에는 

전자석이 붙어 있어서 계속해서 흔들리도록 되어 있었다.

나의 징크스는 바로 이 시계의 추이다.

왜냐하면 이 추가 가끔씩 어디에 걸렸는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손으로 한번씩 흔들어주어야 하지만 또 다시 시간이 지나면

서곤 했다. 

여기서 비롯된 나의 징크스...

아침에 일어나서 시계를 쳐다 보았을때 시계추가 서 있으면

그 날 하루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음.. 물론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괜히 그럴꺼라는... 

하지만 어느날인가부터 그 묘한 징크스는 정말로 내 자신이 믿는

하나의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람은 한번 믿기 시작하면 계속 그 꼬리는 무는 버릇이 있다.

한번 시작된 그 징크스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 어디선가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해도 나도 모르게 일이 안 풀리게 되거나 혹은 일이 

꼬이기 시작을 하면 아침에 그 시계추가 서 있었는지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이다. 

징크스가 징크스로 계속 남으려면 그 일이 자꾸만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반복되는 학습에 의한 기억과 은연중 무의식의 소치로

하나의 징크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징크스가 머리속에 각인되어 지면 잘 지워지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그 사람을 지배하려한다.


나도 어느새 그 징크스에 지배되어 가면서 은근히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나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 눈을 떴을때 시계추가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나의 무의식의 생각은 또한 묘한 버릇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도 어떨때는 눈을 그냥 꼬옥

감고 있는 버릇을 말이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징크스 때문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뜨기 전, 아무도 없는 고요속에 귀를 먼저 가만히

기울여 본다. 째깍째깍... 시계추가 가고 있을까??


아직은 이 징크스를 괜한 치부로만 생각하는 나의 이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눈을 떴을때 시계추가 서 있다고 해서 아주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 조금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 병(?)은 조금씩 더 깊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젠 그 시계추를 쳐다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시계추를 쳐다보는 것만이 아니라 밤에 들어갈때도

은근히 한번쯤 쳐다보니 말이다. 

그러다 시계추가 서 있는 날이라면 난 얼른 손으로 툭 시계추를 흔들어

놓는다. 


마음속의 불안이란 그다지 쉽게 잡아 가둘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그 날, 몹시도 친구에게 아쉬움이 남아 기분이 울쩍했을때도 어김없이

그 시계추는 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분명히 기억이 난다. 그 날 아침에도 시계추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이제는 조금 그 징크스에서 벗어나 보고자 했던 나로서는

대수롭게 여기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던 터이었고, 가뜩이나 조금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서둘러 방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때였다.

결국 나는 멈추어 버린 시계추를 곁눈으로 흘려 보내고는 방문을

잠궈 버렸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친구와 안녕이라고 말하고 나서 돌아섰을때

조금은 엉망이었던 기분이 나를 감싸는 동안 문뜩 머릿속에는 아침에

그냥 세워 두고 나온 시계추가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조금은 구겨진 마음으로 방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 갔을때 나의 시선은

가장 먼저 벽에 걸린 시계에 집중이 되었다. 여전히 그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시계추...

아마도 그때는 우울했던 기분이 더욱 비참해지면서 화로 발전해 가는듯

싶었다. 전같았더라면 얼른 시계추를 흔들어 놓았을텐데 웬일인지 그날은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으로 시계추를 내 팽개쳐 놓았던 것이었다.


나는 잘된일이건 아니면 잘못된 일이건 그 원인을 많이도 가져다 붙이곤

한다. 아마 이래서 그랬을꺼야... 때론 그 논리가 너무 어색하기도 해서

마치 변명을 하려는 듯한 태도가 되기도 하지만, 항상 공학도로서 

주위에 생기는 일에 대한 작은 원인하나라도 찾아내도록 길러진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괜시리 부아가 치밀어

올라 뭔가 적당한 사유를 찾고 싶을때 그 방패가 되라고 그 시계추에

올가미를 씌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아~ 너 때문이야....


하지만 상한 기분이랄까 혹은 우울한 기분은 그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공학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그 원인이 발견되면 그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단 방법을 써서 막아

버리면 되니 말이다. 그러면 또다시 똑같은 잘못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분은 어떨까?? 불행히도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다. 여간해서는 싸운

친구와 화해를 해도, 그리고 또 그 친구가 먼저 잘못을 빌어와도 아니면

내가 먼저 잘못을 빌어도 상처 받은 기분은 조금은 오래 간다.

이 시계추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건 싸움이랄까?


너! 다음 날 아침까지도 똑딱거리며 움직이지 않으면 알아서 해!!


하지만 이 시계추는 내가 다음날 아침 눈을 뜰때까지도 나를 조롱하듯이

그대로 멈추어져 있었다. 나는 결국 또한번의 징크스에 말려들고 만것이다.



기분은 여전히 살아나지 않았다. 사소하게 친구로부터 받은 작은 우울함의

씨앗이 괜히 시계추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자꾸만 길어지는 것이었다.

징크스는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것일까?

그 날 오후도 여전히 일이 손에 안 잡힌 채 시간만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밤이 되었다. 나는 도저히 이 기분을 계속해서 끌고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바닷가 구경가자...

아마 시원한 바다를 보고 나면 기분이 풀어 질꺼야...


더위를 몰아내는 바닷바람, 그리고 주위에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사람들..

부셔지는 파도 소리... 이렇게 밤늦은 시각에 바다에 나와 본 적은 없었다.

달이 저 멀리 떠서 은은히 바다에 그 모습을 뽐내고 있는 모습도 

시원스러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의 기분을 되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숨김없이 말을 하고 들어 줄 수 있는 친구였다.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했다. 때론 나의 심각한

표정도 잘 받아 주었고, 그리고 서로 웃으면서 막힌 가슴을 쓸어주던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


이젠 조금은 마음이 다시 평온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은 밤..

오랜만에 가져 보는 그런 밤이었다. 가뜩이나 졸업때문에 어수선 했는데...

그리고 방문을 열고 불을 켜는 순간, 나에게 들려오는 또 다른 행복의

소리....  똑딱똑딱..... 시계추 소리...


이상하다면 정말로 이상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일.

시계추는 어느덧 그 힘을 얻었는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하하하... 그 순간 난 참으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묘한 징크스라....


난 그동안 이 시계추에 너무 정신이 빼았겼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의 이유모를 투정과 우울함의 모든 이유를 다 그 시계추로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시계추는 나의 상상과 징크스라는 미명아래

은근한 악역을 해 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렇게 

시킨 것이겠지... 너 때문이야... 하는 나의 대사로 말이다.

하지만 시계추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한번의 묘한 

느낌을 받았다. 시계추는 오히려 나한테 모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아~ 주인님 때문이야....


나의 징크스... 그것은 내가 시계추에게서 받는 징크스가 아니었다.

이런... 이 시계추는 나에 대한 징크스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자기는 계속 움직일 수 있고, 혹시나 내가 

기분이 우울해 지면 그만 서 버리는...


살짝 뒤집에 사물을 생각한다는 것은 가끔 행복한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여태껏 나의 징크스로만 알고 있었던 그 시계추가 정작 

나로 인한 피해자였음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후후... 


아마도 이젠 아침에 일어나거나 혹은 방에 들어 설때마다 걱정으로

시계추를 바라다 보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그 시계추를 바라 볼 것 같다. 

이 녀석아! 봐라.. 

나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잖아... 

너도 빨리 나로 인한 징크스에서 벗어나 얼른 움직여..~



똑딱똑딱....



그의 힘찬 움직임을 보려면 어서 어서 나의 마음속 한 구석에 

파 놓은 우물에 행복의 물이 가득 고이기를 기원해야겠다.


그리고, 누구나 그 우물에서 한두레박 시원히 퍼 갈 수 있기도 바라면서...




ps: 어느날 기분이 우울해 방에 들어가면 또 다시 멈추어 버린 시계추가

나한테 모라고 그러지 않을까??

   [  다아~~ 주인님 때문이잖아요....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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