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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테크의 추억

순수의 시대?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사람이 살아 가면서 변해 간다는 것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아마도 그건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렸을 거다. 

살아 가면서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모습이 바뀌기도 하지.

음...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바뀌는 모습 중에서 

성격에 관한 것이다.

*!* 이제부터 목숨을 걸고 쓴다. 아마 이 글의 주인공이 되는

형이 본다면 난 아마 그날로 제사날이 될지도 모른다.... ^^; *!*



내가 아는 형 중에 한명은 소위 말해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무뚝뚝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나 할까? 난 이 형을 처음 보았을 때

오히려 겁이 났으니까 말이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얼굴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니까 처음에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같이 일하면서 지내다 보니 외모에서 보이는 그런 무뚝뚝함보다는

인정이 많고 맡은 일에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다만 그런 것을 잘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 음.. 일단은 좀 띄워 주고.... *!*

경상도 남자는 살아 가면서 세 마디만 하면서 산다고 그랬던가?

'밥 도(밥 줘)', '아는?(아이는?)', '자자(잠을 자자)'. 후후후...

어쩌면 그 형에게 있어도 이 세마디면 충분할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 형이 언젠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왜 변하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피앙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뚝뚝하기만 하던

사람이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태도가 하나 둘씩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와서 물어 보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혹은 무슨 선물이 좋겠느냐 하면서 말이다. 

나도 좀 도와 주는 셈 치고 내가 아는 지식들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때론 내 스스로 나중에 나도 애인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그런 팁까지 가르쳐 주었다. 실은 나도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얼마나 재미 있는 일인가, 옆에 사람이

연애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

*!* 뭘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제비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단지 그 형에 비해서 조금은 낭만적이라는 뜻임!! *!*


그렇게 사람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후후.. 무뚝뚝함에서 다정함으로,

과묵에서 웃음으로, 그리고 때론 수다로... :)

어제 저녁엔 아주 늦게까지 같이 일을 하다가 기숙사로 내려 가게 되었은데

내려 가는 도중에 이런 말을 한다.

"요즈음은 전화하면 무슨 말하는지 아니?"

*!* 아참, 이 형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했단다. *!*

"뭔데요?"  *!* 근데 실은 내가 궁금할게 없지만.... *!*

"오늘은 방에 침대를 넣어야 하는데 방이 작으니까 퀸이나 킹 사이즈는

안 되고 더블이나 그런거 넣어야 겠다는 말과 커텐은 블라인드로 할까

보통 천커텐으로 할까.. 뭐 그런 이야기 했어."

"흐흐흐.. 그래요?"

말하면서는 '흐흐흐' 웃었지만 속으로는 '푸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

지금 말하는 이 형에 모습에서 내가 처음 형을 봤을 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덩치는 무척 크지만 이런 말을

후배인 내 앞에서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어린 아이 같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할 수도

있구나... 사랑을 하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더니.... :)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순진하고 아무 꾸밈없이 보이는 모습이

말이다. 후배인 나에게 그런 아이 같은 말을 자랑삼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형이 순수하다는 뜻이 될까? 후후...

어쩐지 그 모습이 닮고 싶었다. 자랑 할만한 것이 있으면 눈치보지 않고

어리광이라도 부리면서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투정부릴 일이 있으면

핑 토라져서 투정부릴 줄 아는 모습이 말이다. 

또한 형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 흑흑.. 그 형은 곧 장가 간데.... 나두 가고파라.... T.T  *!*


내 마음 속엔 아직 그 순진함이 남아 있을까?

아직 남아 있다면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렇게

순진해 질 수 있을까? 후후.. 글쎄다....

그런 순수함이 참 멋있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은 아닐까도 싶다. 

아니, 아직은 남아 있을꺼야. 그치?  :)

언젠가는 나도 그런 순수의 시대를 맞이 하기를 바래 본다. 

비록 나도 그 때에는 후배에게 별 어린아이 같은 자랑을 늘어 놓고

있어도 말이다. :)





*!* 나도 시간이 나면 가끔 생각해 보아야겠다. 결혼하면 집에

가구를 어떤 것을 놓고, 또 어떤 침대를 들일까.. 하는 생각들..

미리 상상하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겠지?? :)  *!*




*!* 만일 그러다가 막상 결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것을

다 말해서 참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신부가 알게 되면

혹시나 이런 질문을 던지지나 않을까?

"너무 잘 알고 계시네요... 저기 혹시... 재혼은 아니세요??"

으흐흐.... 설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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