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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멋진 변명 하나

by 피터K 2021. 5. 23.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아주 그럴듯한 변명이 있을까...?

가끔씩 생각하는 문제이다. 그럴듯한 변명...

때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변명을 많이 붙이고는 한다.

갑자기 편지를 쓴다거나 아니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에 손에 펜을 쥐거나 수화기를 들고서

한동안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웬일인데..?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하고... 

이런 고민없이 기분 내킬때 편지를 끄적이고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것을 다 감싸줄 그런 멋진 변명 하나만 있으면 말이다.


친구에게 음성을 가끔 남기고는 한다. 물론 나의 삐삐에도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음성이 남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무슨 용건이 있어서 남기고는 한다.


"네 배드민턴 채 좀 빌려 줘..."

"오늘 만나기로 한거, 조금 늦을꺼 같은데... 미안~~"

"야! 피터, 너 어디 있는 거야?? 교수님이 찾으시잖아...."

    << 음냐...


한번쯤 음성이 와서 새로 녹음된 것을 듣고 나면 한번쯤 처음부터

다시 듣곤 하는데 몇 개를 빼고는 모두 내게 음성을 남길만한

이유가 있어서 남은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런, 그리고 특별한 이유없이 남겨진 음성은 없을까....


"웬일이냐고? 응... 그냥... 나 원래 그냥 음성 잘 남기잖아..

후후.. 무슨 일이냐 하면, 오늘 시간이 조금 남아서 한 10분동안

바람 쐬러 나왔다가 그냥 가기 뭐해서.. 음성 하나 남기고 가려고..."


멋진 변명이랄까 그 이유가 없다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좋을듯

싶다. '그냥....'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많이 써 먹은 말 같다. 그냥...

친구에게 문뜩 선물을 주고 싶어서 산 선물이랄까, 아니면

전화를 걸어 놓고서 아무런 할 말이 없을때 뚝 내어 뱉는 말로서는

이보다 멋진 변명이 있을 수 있을까?  :)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모두 이유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가끔 객기라는 것을 부리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아직 그런 객기를 부려 볼 만한 나이인거 같기도

하다. 후후... 술을 잔뜩 마시고 길거리에서 크게 소리를 질러 본다든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마구 떠든다든가...


"야! 너 피터 왜 그러는데??"

"나?? 그냥..!"


언제 한번 멋지게 써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후후... ^_^



구차한 변명보다는,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기분일지 모를때에는

과감히 외쳐 보고 싶다. 아무리 사람이 이성의 동물이라지만

때론 내 자신이 나를 잘 모를때도 있고 그리워 하는 일이라든가

하고 싶은 일에 이상한 변명따위는 색칠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런 구차한 변명이 더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그럴때 이 한마디 변명은 얼마나 멋있는가... 




"나 너 사랑하나봐..."

"나의 어디가 맘에 들어서...? "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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