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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마음의 공간

by 피터K 2021. 4. 19.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맨 처음 삐삐를 신청하였을때, 웬지 음성사서함 서비스도 하고 싶은 

생각에 그것도 함께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나의 친구들의 대부분은 

음성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가끔 나의 삐삐에 음성을

남기고는 했다. 후후... 아주 쓸떼없는 말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성이 가끔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음...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늦어질꺼 같다던가..하는 경우에는

삐삐만으로는 연락을 할 수 없기때문이다. 그럴때는 음성 한마디만

남겨주면 되니까 말이다. 


  [ 쩝... 나 피터인데... 좀 늦을꺼 같아.. 우짜지... 미안... ]


가끔 그런 경우가 생겼기 때문에 나는 삐삐가 있는 친구들에게 너두 

음성해라... 하고 부추기기도 했다. 


삐삐를 치려다 보면 참 멋있는 인사말을 듣게도 된다. 나야 물론 나답게

별 이상한 말(?)만 녹음을 시켜 두지만... 

후후.. 그래도 팬서비스(?)차원에서 나는 인사말을 한달마다 바꾸고 있다.

내가 들었던 가장 기발한 인사말은...


  [  안녕하세요, ** 입니다. 손가락이 간지러우시면 1번을, 입술이 

     간지러우시면 2번을 눌러 주세요... 호호호.... ]    


한동안 웃느라고 아무 것도 못 눌렀던 것 같은데.... :)



이렇게 삐삐로 음성이 날아오면 차곡차곡 쌓아둔다. 가끔 고의로 지우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겨두고 다시 듣기도 하니까 말이다. 음성사서함 설명서를

보면 녹음된지 48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지워진다고 했는데 며칠, 혹은 

몇주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보아서는 그 말이 꼭 맞는거 같지는만 않다.

후후.. 아니 오히려 맞지 않기 때문에 때론 꼭 남겨 두고 싶은 음성은

오래 들을 수가 있다. 

음... 한번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졸업하는 문제로 졸업 토픽도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다른 일도 겹쳐서 

너무나도 신경쓸 일이 많았던 날...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조금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기분을 좀 풀어볼까... 하고 말이다.

말이 기분을 푼다는 것이지 푸념만 잔뜩 늘어 놓았다. :)

그리고 전화를 끊고나서 한 10분쯤 지났을까? 음성이 하나 들어온 것이었다.

들어 보았더니 방금 통화를 한 친구였다. 기운내라고... 네 마음을 너무

몰라준거 미안하다며...

참 간단한 음성녹음이었지만, 내겐 너무나 힘이 되어주는 말이었다.

더구나 그건 오래도록 지워지지도 않아서 정말 가끔씩 듣곤 했는데... :)


내 친구는 음성서비스가 나와 조금 달라서 음성이 10개까지 녹음이 된다고

한다. 10개가 다 차고 나면 음성이 더 녹음이 안된다고 하던데... 그래서

자기는 듣자마자 지울건지 아니면 남겨 둘건지 좀 고민(?)한다고 한다.

나야 10개까지 녹음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문뜩 그런 생각이 든다. 후후... 음성이 만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거라면... 그리고 딱 10개만 남겨 둘수가 있다면...

난 어떤 음성을 남겨두고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나름대로 각자에게는 소중한 것이 있겠고, 또한 그것을 담아두고 싶은 곳도

따로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나즈막히 들려주는 음성뿐만이 아니라 가끔씩 기억의 

저편으로 흐르듯이 지나가는 조그만한 추억들이 너무나 그리울때가 있다.

어딘가 쌓아 둘 곳이 있었더라면... 후후.. 자알 모아 두었을텐데...


10개의 음성또한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아니련지 싶다.

무엇을 담아두던지, 결코 그것들을 들으며 후회하지 않을...

아니, 후회보담은 수화기를 내려 놓고 싸~ 해 오는 즐거움과 감동을

남기며...


이제부터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잘 담아 둘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비록, 지금 나의 마음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로 

복잡하긴 하지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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