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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친구의 결혼식

by 피터K 2021. 4. 19.

*!*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나의 나이 23 하고도 7개월...

내가 장가를 간다는 것은 조금, 아니 많이 이를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동갑인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아주 빠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을 믿는 내 친구는 지난 3월에 시집을 갔다.



지난 크리스마스때 친한 우리 멤버는 한 녀석이 생일이라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침 방학이라 서울에 모두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좁은 도시에서 벗어나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항상 만나는 곳은 종로 3가에 있는 롯데리아.

서울 극장 옆에 있는. 우리가 거기서 모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다른 곳은 지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각자 사는 곳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종로이기에...

종로에서 모인 우리는 명동으로 진출(?)을 했고 점심을 하고 카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무척 둔하기만 하던 여자친구하나가 웬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웬일이야 네가.. 하면서 카드를 받았는데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뜯어 보니 'ps'란에 눈에 띄는 한줄이

적혀 있는 거다... 


"나 다음 3월에 결혼한다... 웃지마!!  "




어쩐지 기미가 이상했다. 학교에서 지난 일년간 누구와(그때까지는

누군지 잘 몰랐다... ) 같이 다니는 것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그리고 다른 녀석들과 모일때에는 재 저러다 저 사람하고 결혼하는 거

아니야... 하고 농담 비슷하게 주고 받았었는데...

결혼은 3월 12일 토요일 서울 감사원 강당에서 한단다. 

이 친구나 결혼할 신랑분이나 모두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에

혼배 미사를 드린다는 거다. 나는 우리 친구들과 가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있는 참에 결혼 일주일전 내게 실험실로 전화가 왔다.


"피터니?"

"응, 근데... 왜 전화했어?"

"부탁이 있는데.. 혼배미사때 독서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부탁좀 하려고.."


혼배미사라는 것도 미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미사예절이 다 들어간다.

그 예절중에는 독서라는 부분이 있어서 성서의 한 구절을 읽는 것을

말한다. 마땅히 부탁할 친구가 없어서 부탁을 한단다.

난 그냥 그러마 하고 끊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괜히 수락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자 결혼식에는 남자 친구는 원래

얼씬도 안 하는 거라든데... 그런데 그런 걸 남자 친구인 내가 한다고...

신부의 남자 친구가??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굉장히 이상한거고, 우리 사이(?)를 보면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긴 하다. 우린... 좋은 친구이니까...


대학원생인 고로 나는 결혼식 당일인 토요일 아침에 

첫 비행기로 가기로 했다. 나한테 바로 자기 집으로 와 달란다.

그런데 그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밖에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는거다..

이런... 포항은 비행장 시설이 나빠서 기후가 바쁘면 결항이 쉽게 된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결혼식 참석은 그렇다 치지만 결혼식의 한 부분을

맡은 내가 못 가게 되면 어떻하지...

계속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공항에 갔더니 다행이 결항은 아니란다.

휴.. 친구 결혼식 망칠뻔 했네...

그 친구네를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 친구 집 근처 무슨

화랑앞에서 전화를 했다. 사촌 동생되는 애가 마중을 나왔다.


"지금 누나는 신부화장하러 갔어요.."


그 집에 가니 친척분들이 많이 와 계셨고 손님도 여러분 계셨다.

친구 어머니께서 주시는 미사 양식을 훑어 보면서 나는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건 좀 눈치가 이상하다.

나야 뭐 1학년때부터 이 친구와 알았으니까 친구네 어머니야 날 잘 

아시지만 친척분들은 모르지 않는가.. 지나 가면서 슬금슬금 나를 쳐다 

보시는데, 이건 재 누구지.. 하는 눈치가 보인다. 이거 영 쑥스럽게...

그러길 한 30분쯤 기가 죽어(?)있는데 친구가 신부 화장을 다 끝내고

들어왔다. 음.. 이건 완전히 패왕별희군... 화장을 거의 한꺼풀 발라 놓은

모양이었다. 난 그 친구를 보고 막 웃었다.


"야.. 너 웃지마.."

"얼씨구.. 너두 거울 봐라, 안 웃게 생겼나..."


그러면서 친구의 주먹이 내게 오고가고 낄낄거리며 웃는 동안 갑자기

찌릭하는 눈초리... 재네들 무슨 사이야??? 친척분들의 이상한 시선에

난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저요? 재랑 아주 친한 남자 친구에요.. :)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고, 난 그 차에 타고 결혼식장으로 갔다.

그런 기분 모를꺼다. 앞 두좌석에 신랑, 신부 앉아 있고 그 뒷좌석에

쭈그리고 같이 타고 가는 남자 친구의 기분... 

사실은 기분이 좋았다. 친구가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난 나의 우정을 확인 시켜 주었고

식은 신부님의 강복을 끝으로 무사히(?) 끝이 났다.

우리(나와 그 나머지 멤버들)는 신부의 얼굴만 잠시 보고 인사를 

나누고 식장을 빠져 나왔다.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지만 이제는

어엿한 한 아줌씨가 된 친구를 우리가 독점하고 있을수가 없었으므로..


지하철을 타러 내려오는 우리들의 표정은 조금 야릇했다.

좀 서운하기도 했고... 좀 아쉽기도 했고... 이렇게 친구 하나를

보내는 구나 생각하니... 


나의 첫 친구 결혼식이 여자 친구라서 조금은 황당한 것도 

있기는 했지만... 그 친구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정말이지

부러웠고, 또한 그때문에 기분은 얼마나 좋았는지....


친구하나가 떠났다는 느낌 보담은 이제 우리 친구(실은 아저씨)가

하나 더 생긴 것이 내겐 더 기뻤다....


친구야.. 꼭 행복해야 한다. 

그리구 내 결혼식때는 그 행복을 담뿍 나눠줘야 해......




PS: 그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보낸 축하 전보가 생각나네...

   >> 아들하나, 딸하나, 그리고 행복을 얻기를 빌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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