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요즈음 가끔 다른 사람들의 책상 위를 보면 작은 선인장을 볼 수 있다.
그게 언제부터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때는 모니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막아준다고 해서 매일 컴퓨터앞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하나씩 구입해서 모니터앞에 놓아 두고는 했다. 그 조그마한
선인장이 정말로 전자파를 막아주던지 아니던지, 그래도 전공책과 계산기만이
굴러 다니던 책상위에 작은 선인장 화분 하나가 있다는 것은 상막한(?)
실험실 분위기를 조금은 온화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선인장을
구입한 이유는 비단 전자파를 조금이라도 막아서 건강해져 보겠다고 하는
욕심때문만은 아니었다. 선인장을 사서 모니터앞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그것을 내 책상위에 놓아 두었다. 가끔 환하게
꽃까지 피운 선인장도 보았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다만 튼튼(?)하게
자라나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전부였다.
나의 한주일의 시작은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선인장에 물을 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을 했다. 머그컵의 반잔 정도의 물을 화분에 가득 따라 주면
일주일 내내 푸른 빛을 볼 수 있었다. 물을 따라 주며 난 항상 바라곤
했었다. 나의 한 주일도 이렇게 생기있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하고..
석사 2년차로 올라오게 되면서 기숙사 방을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던
16동은 석사 신입생들에게 배정에 되면서 기존의 학생들은 다른 기숙사로
옮기란다. 나는 내 룸메이트와 떨어지기 싫어서 두 사람이 함께 들어 갈 수
있는 방을 찾았다. 마침 동아리 선배 한 분이 자기가 이번에 졸업해 나갈
꺼라며 자기 방을 쓰라고 하셨다. 그 선배의 룸메이트는 군대를 가서
이미 비어있었고... 우선 내가 먼저 그 빈자리로 이사를 했다.
5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짐도 무척이나 많아졌다. 이사를 하기
위해서 준비한 상자만으로도 모자를 정도로... 이것 저것 상자안에 무작정
담고 정리도 제대로 못 한 상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
나는 상자안에 담을 수 없는 몇가지들을 따로 들고 이사를 했다.
알람시계, 디스켓박스, 그리고 선인장등등...
선인장은 방이 정리가 안 되어서 창가에 새로운 자리를 잡고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책상위로 자리를 옮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방 정리는 자꾸만 뒤로 미루어져 버렸다. 졸업해서
방을 비워 주기로 한 선배가 실험실의 잡일이 늦어 지는 바람에 2월말이
다 되어서야 겨우 방을 비워주고 퇴사를 했다. 그동안 나는 짐도 풀지
못한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옷가지도 겨우 입을 만큼 꺼내어 놓은 상태로
번갈아 가며 입어야 했고, 필요한 책이라는가 서류들은 찾아볼 엄두도 못내던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잠시 선인장을 잊었던 것이다.
겨우 방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꽂이에 책들도 정리를 하고
책상도 물걸레도 깨끗히 닦아 내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아직도 창가에 있던 작은 선인장 화분.. 나는 선인장을 책상위로 옮겨
왔다.
이제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선인장... 하지만 그간의 무관심으로
선인장은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선인장을 살려 보려고 책상위로 옮긴
다음에는 계속 물을 주었다. 물이 흘러 넘쳐 책상위에 고일 정도로..
그렇지만 한번 말라버린 선인장은 다시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물을 주는 바람에 뿌리까지 썩어가는 것 같았다.
다시 예전처럼 푸른 빛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은 멀리한 채..
이젠 어떻게 손을 더 써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선인장은 그렇게 무관심속에 그 빛을 잃어가 버렸다. 보기에 이상할 정도로
바짝 마른 상태로... 그렇게 나한테 정을 붙여 보려던 친구하나를 잃어
버렸나 보다. 선인장은 그렇게 잊어 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또 다른 무관심으로 말라가는 것은 없을까... 문뜩 생각이 든다.
그간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 나의 작은 연락을 바라는 사람들...
혹은 나의 스쳐가는 한 마디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니면 나의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기다리는, 나와 다투었던 친구들... 아니
그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나의 마음이 다시 열기기를 바라는
그런 친구는... 없을까?? 내 주위에...
선인장은 나의 무관심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 줄 수 있지만, 사람들
마음에 심은 무관심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냥 잊혀지는 수 밖에..
이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선인장을 보며, 나에게는 누군가의
마음이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항상 작은 관심이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에게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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