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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을 - 옛 수필

아우구스투스 신드롬

by 피터K 2021. 4. 11.

*!*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헤르만 헤세가 쓴 단편들 가운데 '메르헨'이라는 단편집이 있다.

그 단편집속에 한 이야기로 '아우구스투스'란 제목을 지닌 이야기가

있는데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의 사람에 대한 일생기(?)이다.


독일의 어느 작은 지방에 한 아이가 태어났고 그 아이의 이름은

아우구스투스였다. 유복자였고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그 옆집에는 손풍금을 타는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그 아이의 생일날

찾아와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에게 작은 선물을 한다. 잠시후 자기

집에서 풍금소리가 날때, 그때 아이의 귀에 대고 작은 소망을 한가지

말하세요, 아이에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요... 할아버지는 돌아가고

정말로 풍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는 아우구스투스의 

머리맡에 앉아 무슨 소원을 빌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것 저것 생각하는

동안 풍금소리는 작아지기 시작하고 어서 소원을 빌어야하지만 무슨

소원이 이 아우구스투스에게 가장 좋은 건지 정하지 못한 어머니는

초초해지기 시작한다. 풍금소리가 멈추기 직전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귀에대고 가만히 속삭인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런 사람이 되렴... 풍금소리는 이제 멈추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커 가면서 그 소원대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된다. 나쁜일을 저질러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 일을

했을까하며 넘어가게 되고 그를 만나는 여인은 모두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된다. 그러는 그는 수많은 여인을 사귀고 또 금새

버리고... 나이가 들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또 자신이 버린 여인들의

비참해진 삶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지친 몸을 이끌고 옛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아들이는 것은 그 풍금치는

할아버지... 그의 무릎에 기대어 그 옛날 꾸던 꿈들을 다시 꾸며

그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할아버지는 묻는다. 그래,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삶이 어떠냐고... 마지막 풍금소리가 사라지기전

그는 할아버지에게 다른 소원을 빌게된다. 할아버지... 이젠

제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이 글을 읽고나서 나는 친구와 '아우구스투스 신드롬'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건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며 남에게 사랑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말이다. 사실 그 친구와 나는 그 말을

만들어 내면서 그 단어를 우리자신들에게 써 먹었다.

너와 나는 '아우구스투스 신드롬'에 걸린 거야...


그 친구도 그랬고 나도 그랬지만, 난 누군가에게서 무척이나 사랑받고

싶어 했다. 힘들때 어께를 다독거려줄 그 누군가.. 심심할때 나의

무료함을 훌쩍 날려보내줄 그 누군가가... 내게 있었으면 하고...

나에게도 그 풍금을 연주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그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많이 했었고...

하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또 그 사람을 알아가고 

정을 느끼고 친해지다보면...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난 내 자신에게 위로하곤 했다.

아니야 사랑이라는 것을 베풀며 사는데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거야...하고.


정말 그럴까? 한동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자신은 너무나 비참해

지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난 이렇게 해 주는데 그 애는 아무 말없이 그저 스쳐지나간다거나

인사만 하고 웃어주는 얼굴만 보여주는... 그리고 선배이상으로는

접근을 전혀 허용안 하는..

난 이기적이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다 이기적이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사랑받기를 원하고 한가지를 주면 한가지를 받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줄까하고 한번쯤 생각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내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뭔가 숭고한 것을 기리고

또 그런 인간상을 존경하고, 하지만 때론 내 자신도 그런 모습을

멋있다고 느끼고 글을 쓰지만, 나에게서 '아우구스투스 신드롬'이란

병을 빼앗아 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은 되돌려 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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