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7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 힘이 들면 누군가 의지할 사람을 잡으렴... ]
친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힘이 들면 혼자 그 짐을 다 어께에
지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라는 뜻이란다. 그 친구가 내게 그 말을
해 주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 나.. 그래서 너무 그 말에 충실하게 살았나 봐... ]
글쎄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동의는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힘이
들면 다른 친구들, 혹은 나에게 와서 자신이 힘든 일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이 풍기는 묘한 뉴앙스에는
좀 동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에게 그런 말들을 털어 놓으므로써
그 사람까지, 힘들게 만들었어... 하는 그런 의중에는 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라는 이야기를 나는 믿는 편이다.
또한 이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기 전이라도 나는 참으로 충실(?)하게
그 말을 따랐으니 말이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곤란한 일, 혹은 나 혼자 간직하기에는 벅찬 일이 있으면
나는 친구들에게 많이 털어 놓고는 했다. 그러면 웬지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그러고보면, 그 친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짐을 다른 친구들에게 던져 주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그때는 참 어렸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요즈음은 그런 일이 있다면 그다지 남에게 털어 놓지를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이야기들이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나의 고민을 직접
풀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가끔 좋은 충고나 방안을 이야기하여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당사자가 아니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다. 그래서 내가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 놓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겠니??... 하는 그런 바램으로
말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후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끔은 내게 상담하러 오는
후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선배들을 많이 찾아 다녔기 때문에 그런
후배들이 별로 어렵거나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그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저 열심히 들어 주는
것이었다. 가끔은 내게 묻기도 한다...
[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되요?? ]
[ 음.. 글쎄다... 나라면 말이지..... ]
내가 정확한 길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라면..'이라는 나의 길을
보여 주는 수밖에... 그래서일까? 친구들은 힘이 들때마다 나에게 해결책을
구하러 오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줄 친구를
찾아오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참으로 그런 역할에 익숙해져 버린 것같다.
친구들 사이에 어느새 편안한 카운셀러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4학년때, 친구 하나가 무척이나 힘들어 했었다.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그랬었고, 또한 학업성적까지 좋지 않았을때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러 시장에 갔다. 내일 시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어쩌다 지나가는 길에 합류하게 되어 같이 나가게 되었다.
술잔에 돌기 시작하고, 친구들과의 대화가 무르익어갈 무렵, 친구는
우리들에게 힘든 이야기들을 풀어 놓기 시작하였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거 같아... 내가 그때 그 아이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
무척이나 심란했었나 보다.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니 옆에 있던 친구들의 대답은 이랬다.
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네가 우리 과에 잘 못 온거 하나도 없다..
무슨 생각이 다 그렇게 회의적이냐... .....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내가 조금은 부아가 치밀은 것이었다.
아마도 이 친구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 놓으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토론, 아니 격론이 되어 버렸다. 친구는 그만
자신이 던져 놓은 말에 변명하기 급급했고...
나는 그 친구에게 엄지손가락을 펴서 보여 주었다.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아니? 이건 말이야... 어디서건 힘 내라는 뜻이야...
자! 따라 해 봐... 그래... 우리 어디서건 힘 내는 거야...
모처럼, 친구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도 항상 좋은 카운셀러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작년 10월쯤, 우연한 기회에 '포항 별밤'에 나갈 기회가 생겼었다.
우리 학교에 관한 책때문이었는데, 그 책을 만들때 작가분을 조금 도와
드렸더니 '별밤'에 같이 나가자고 섭외가 들어 온 것이었다.
1시간정도 DJ와 말을 나누었는데, 방송이 되고 나서 며칠뒤 별밤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엽서가 하나 왔는데, 나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한다는 거다.
고등학생 한 사람이 보낸 엽서였다. 사실,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아니
잠시 방송에 나갔다고 이런 엽서가 날아 들어올 줄은 정말 몰랐으니
말이다. 후후... 그때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없이 연락처를 가르쳐
주라고 했다. 사실 어떤 아이이길래 그런 엽서까지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어서...
며칠뒤 그 여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고등학고 1학년 여학생이었는데
나와 연락을 하고 싶었던 정확한 이유는 자신도 잘 모르는듯 했다.
다만, 좋은 인상(?)이 남아서 한번쯤 연락을 해 보고 싶다는 사춘기
여학생의 용기였을까?
그렇지만 몇번의 전화가 오고나서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연락이 왔을때는
나는 뭔가 잘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아이에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후론... 나는 그 아이의 전화를 피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제... 실험실에 있는 동안 다시 전화가 왔다.
나에겐 어색해 져버린 전화였지만 이미 받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 보는 수 밖에....
이제 중간 고사라며, 힘이 든다고 했다. 아마 공부가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나 보다..
[ 그건, 누구나 다 겪는 일이에요... ]
[ ... 누구나 다 그런 말만 해요... 그때는 다 힘이 든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한다.. 난... 정말로 힘이 드는데.. ]
그리고 전화선을 따라 흘러드는 울음소리... 나는 정말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렇게 실컷 울고 나서 깨끗히
잊어 버릴 수 있도록 들어주는 것 뿐이에요... ]
...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때만큼 내가 그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내가 더 이상 좋은 카운셀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항상 거기에 대해서는 작은 자부심이나마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그 아이의 연락은 피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무능함을
보여주기 싫은 나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카운셀러가 되기 부담스러워하는 나의 묘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아이에게, 힘내라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어쩌면 나는 내게 참으로 완벽한 사람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멋진
카운셀러가 되기 바라는... 하지만, 나에겐 아직도 깨어야할 많은 껍질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많은 고통까지도...
언젠가 조금 더 나아진 카운셀러가 되었을때, 나는 그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들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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