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994년에서 98년 사이에 KIDS라는 BBS에 썼던 글입니다. *!*
지난 추석때 집에 갔을때 일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볼 기회가 있었다.
나에겐 작은 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가 석사를 졸업할때
그동안 끄적였던 글들을 모두 모아 작은 문집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정식 책으로 만들던 아니면 보통 학회지 만드는 그런
제본 형태로 만들던 그건 상관 없지만, 단지 내가 써 본 것들을
모아 간직해 보고 싶은 생각에...
아버지는 25년간 신문사에 계셨고 또 시도 쓰시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잘 아시리라 생각을 하고 여쭈어 본 것이다.
"아버지, 요즈음은 자기 돈으로 책을 낼 수 도 있다는데
그런거 해 볼려면 얼마나 들어요?"
"글쎄다.. 주위에 출판사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알아 보려면
알아 볼 수 있지.. 그런데 왜?"
"아.. 제가 써 본 것들을 모아서 그냥 한번 묶어 보려구요..
뭐 책을 낸다기 보담은 그냥 제 문집 같은 것을 가지고 싶어서요.."
"책은 그냥 그렇게 성의 없이 내는 것이 아니야. 책을 쓴다는 것은
그것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여야 하고 또 그건 글 쓰는 사람의
책임이기도 하고.."
그러시고는 내게 쓴 것이 있으면 하나 가져와 보라고 하셨다. 어디
그런 가치가 있는 것인지 보시겠다면서 말이다. 나는 사실 내가
끄적였던 글 중에서 그래도 가장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추억이라는 것은'
이란 제목의 소설을 찍어다 드렸다. 아내와의 추억을 목걸이 하나로
연결시키는 그런 이야기였다.
한참뒤 저녁을 먹으러 내려 오니 아버지는 내게 그 글을 주신다.
그런데 거기에 보니 온톤 빨간줄로 여기저기 교정을 보아 놓으신거다.
띄어쓰기부터 시작해서 반복되는 필요없는 단어의 나열들, 쓸떼없는
표현의 삽입, 지나친 형용사의 사용.... 이루 다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을 꼼꼼히 다 적어 놓으셨던 것이다.
나는 한마디로 허탈했다... 내가 겨우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일까..하고..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께 항변을 했다. 특히 표현의 문제에 있어서
말이다. 그렇게 쓰는 것은 나의 표현하는 색깔인데 저렇게 쓰는 것이 정석
이라고 해서 그것만을 무작정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 어거지가 아닌가하는
말로써...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표현을 정확히 해 내지 못하고 그저 지나친
감정의 탄식만을 나열해 놓는 것은 그 감동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내게 긴 설교를 늘어
놓으셨다. 우리는 이 문제로 저녁식사를 미루어 가면서 긴 토론아닌
토론을 펼쳤다. 역시 공학도인 나로써는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바로
표현하지 못해서 많이 아버지께 당했지만서도...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고 그 감동을 전하고 싶을때, 노을이 붉은 색이라고
해서 그 감동을 붉은 색으로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나의 표현, 나의 색깔은 그것이 아니라고,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고,
때로는 흰색으로도 칠하고 싶다고. 바로 그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냐고...
사실 나는 나만의 색깔과 개성을 가지고 싶었다. 글을 읽고, 아
이 사람의 글이구나하는 그런 나를 드러 낼 수 있는 그런 색깔을...
아버지는 나의 색깔이라는 말에는 동감을 하신 모양이었다.
어서 식사하라시는 어머니때문에 우리의 논쟁(?)은 거기서 끝나야
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나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셨다.
거기서 나는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태훈이, 너 많이 컸구나, 이젠 든든한 녀석으로..
이제 이 아버지와도 깊은 서로의 생각을 논해 볼 수 있는 그런 애로...
아버지와 나의 생각은 많이 다른 점도 있었지만, 그런 다른 차이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해 보고 인정해 보려고 많이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언제가 그런 말을 아버지앞에서 해 드릴수 있을까...
아버지 존경해요... 라고.. 비록 말로는 많이 깨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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