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을 잘 모르는 사람도 첫소절을 들으면 모를 수 없는 노래, 비틀즈의 Yesterday.
비틀즈 (The Beatles)의 맴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존 레논 (John Lennon)이 작사 작곡을 하고 1965년에 발표한 곡이다. 서정적인 음율과 가사 때문에 비틀즈의 대표곡을 뽑으라면 첫번째로 언급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28일 후 (28 Days Later; 2002)",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8;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수상)" 등으로 유명한 데니 보일 (Danny Boyle) 감독이 2019년 그 노래를 제목으로 하는 영화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 있는 아이디어로.
처음 이 영화에 대해서 접한 건 어느 영화 리뷰 유튜브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주 기가 막혔다. 가수 지망생인 남자 주인공 Jack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버스와 사고가 난 후 깨어 났는데 깨어난 세계에서는 아무도 비틀즈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노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억나는대로 비틀즈의 음악을 꺼내 왔는데 무명이었던 주인공이 천재 싱어송 라이터로 불리우면서 생기는 일들을 담아 내었다.
일부 영화 유튜브는 결말까지 다 보여 주지만 내가 보았던 유튜브는 중간 정도까지만 내용을 알려 주고 나머지는 직접 보기를 권하는 리뷰 형식의 유튜브 영상이었다. 그래서 그 리뷰 영상은 이 세상 누구도 모르고 자기만 아는 비틀즈 노래로 무명 가수가 단숨에 일약 스타가 되는 내용까지만 보여 주고 끝난다.
보통 이런 기발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드라마는 둘 중에 하나로 끝나게 된다. 먼저 용두사미처럼 시작은 원대했으나 마무리를 짓지 못해 흐지부지 끝내 버리는 경우. 드라마로는 아직도 욕을 먹는 "파리의 연인"이라든가 뇌를 100% 쓰면 어떻게 되는지로 시작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Lucy (2014)", 막강 외계인의 살육극을 보여 주지만 뒤에 가면 허무하게 무너지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탐 크루즈의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 2005)", 반전의 대가로 영화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거대한 무언가 뒤에 기다릴 줄 알았지만 허무하게 끝나버린 M. 나이트 사말란 감독의 "해프닝 (The Happening; 2008)" 등등.. 그리고 최근에 보았던 데미 무어 주연의 "The Substance (2024)"도 그런 식으로 끝날 줄 몰랐다.
반면에 끝까지 잘 마무리한 영화도 있었다. 대체로 "식스센스 (The Sixth Sense; 1999)"로 대표되는 반전 영화들이 있고 찰튼 헤스톤 주연의 1968년작 첫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 그리고 반전 없이도 최고의 엔딩을 만들어낸 "Terminator 2: Judgement Day (1991)"와 짐 캐리가 정극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1998)", 흥행은 실패했지만 지금은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Batman의 완벽한 마무리 "The Dark Knight (2008)" 등등.
세상 사람들 아무도 비틀즈 노래를 모르고 나만 안다. 영화 포스터 카피에 떡하니 써 놓고 시작하는 이야기. 그러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 다행이 이 영화는 적어도 용두사미는 아니었다. 영화 보는 내내 이게 꿈으로 끝나기만 해 봐라... 하면서 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처음 이 영화, Yesterday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비틀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바의 노래로 가득 채워진 "마마미아", 혹은 다채로운 Queen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떠올리며 말이다. 게다가 비틀즈 노래들은 영화 음악으로도 잘 사용되지 않았는데 많은 곡의 저작권을 가진 폴 메카트니를 비롯해 저작권을 가진 이들이 쉽게 영화 음악으로 허락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더더욱 비틀즈가 인용되고 Yesterday가 제목인 영화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비틀즈, 그리고 그들의 노래/상황들에 대해서 많은 "인용"을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노래를 듣지는 못한다. 그래서 실망한 관객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는 비틀즈 음악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영화 내용은 거기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얹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지 비틀즈가 아니어도 풀어나갈 수 있는 일반적인 뮤지컬 로맨틱 코메디 이야기였던 것이다.
비틀즈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없어서 실망한 관객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2600만불의 예산으로 만들어져 월드와이드 1억 5천만불의 흥행 수입을 거두었으니 영화 자체는 성공한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아무도 비틀즈 노래를 모르는데 나만 안다"라는 영화의 카피문구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었나 보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
시나리오가 조금만 삐끗하면 용두사미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생각보다는 잘 풀어 내었다. 꿈도 아니었고 모든게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 오는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 마치 마블의 멀티버스처럼 영화는 끝까지 비틀즈는 현실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건 자기가 만든게 아니라 비틀즈란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만든 곡들이며 자기는 그냥 빌려 오기만 했다고, 그래서 누구나 즐길 권리가 있다며 자기의 저작권(영화 내에서는 자기가 다 만든 것으로 되어 있으니)을 포기하고 무료로 풀어 버린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비틀즈가 누군지 모른다.
결말만 보면 꽤나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이다. 어떻게든 현실로 되돌아 오기 위해 어설프고 이상한 결말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아무도 비틀즈를 모르고 그냥 그대로 모른다라는 이 결말이 제일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끝나기 바로 직전에 남녀 주인공이 주고 받는 대사들이 영화의 마무리에 양념을 한숫가락 더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 그런 대사를 한다는게 너무 억지 같았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잘 했기 때문에 꽤나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쉽게 잘 몰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뮤지컬 "로맨틱" 코메디 영화인데 이 "로맨틱"한 부분이 잘 와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알콩달콩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마주하면서 만드는 장면들이 별로 "로맨틱"하지 않았다. 외모 지상주의라고 비난해도 할말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로맨틱 영화나 그런 매체에 열광하고 빠져 드는 건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환상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견을 달지 않았지만 영화에 대한 몰입을 깨는 "인어공주 (2023)" 같다고 할까나. 선녀인 여주인공에 비해 조금은 어수룩해 보여 선남이라고 할 수 없는 남주인공이 조금은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아래 첨부된 사진들은 전부 imdb.com 사이트의 "Yesterday" 항목의 사진 모음에 올라와 있는 것들을 캡춰해서 이용한 것이다.
자, 시작은 했는데 그럼 끝은?
그게 가장 궁금했던 영화가 그렇게 끝났다. 엉켜버린 실타레를 풀지 못해 허우적거리다가 이상한 엔딩을 만들지 않고 잘 마무리한 시나리오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던 영화. 만일 남자 주인공이 조금이라도 훈남 스타일이었다면 더 몰입할 수 있었을텐데 딱 고만큼만 아쉬웠던 영화. 주인공이 인도계 배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멍청한 표정만 짓지 않았더라도 더 좋았을텐데. 출연한 다른 영화 Tenet 같은 곳에서 보여준 과장되지 않은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 에필로그가 시작하기 전 남녀 주인공의 대화가 있는데 분위기, 상황 상 그런 대화가 나올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뜬금없이 해리 포터와 볼드모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여자 주인공 Ellie가 "누구?"라고 말을 한다. 남자 주인공의 얼굴은 다시 그 눈이 동그래지는 모습으로 바뀌고 인터넷 검색 화면이 나온다. Harry Potter. 검색이 안 된다.
영화 버전에서는 남자만 또 해리 포터를 기억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alternative ending에 보면 여자 주인공만이 해리 포터를 기억하는 걸로 나온다. 나는 이 버전이 훨씬 맘에 들었다. 세상에서 나만이 해리 포터를 기억한다? 로또 번호를 아는 것보다 더 좋을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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