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Austin/TX에서 예전에 살던 San Jose/CA까지 비행기를 타면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같은 시간을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면 베트남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넓다 보니 미국 내에서 이동을 하는데 있어서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한국 내에서 고속버스, 혹은 KTX를 타는 것처럼 흔하게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 별로 구경 거리가 없는 Austin/TX의 경우 놀러 가려면 어디 가야 하냐고 물어 봤더니 일단 공항으로 가라고 했던 우스개 소리가 있다.
Austin/TX로 이사 오기 전에도 San Jose/CA에서 비행기 탈 일이 종종 있었지만 연착을 한다거나 혹은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점점 상황이 나빠지더니 이제는 연착을 하거나 취소되는 것이 흔해졌고 어떨 때는 정시에 출발한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Southwest 항공이 점점 더 심해지는데 이 항공사는 아침부터 한 비행기가 출발을 하면 도착하자마자 여유 시간을 크게 두지 않고 바로 다음 번 공항으로 바로 출발한다. 이렇게 스케줄이 짜여져 있다보니 앞에서 10분씩 늦어지면 저녁 비행기는 한시간 두시간 늦어지는 것은 기본이 되어 버렸다. 이런 스케줄 문제에 더불어 비용을 아끼겠다고 80년대 도입된 시스템으로 파일럿, 승무원 배치를 주먹구구식으로 해 오다가 지난 2022년 크리스마스 북동부에 한파가 밀려와 몇몇 허브 공항이 마비되자 연쇄적으로 지연과 취소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게 하루 정도의 문제면 그냥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다치지만 그 이후 비행기를 다음 번 출발지로 보낼 파일럿, 승무원 배치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았고 그래서 50% 이상의 비행기가 그냥 활주로에 묶여 버린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항공사는 다음 날 거의 정상화 되었지만 Southwest 만은 이걸 일주일이 넘게 해결을 못 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의회에서 조사하겠다고 발표까지 했을까.
이런 대규모 결항은 뉴스에서나 보던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대란이 일어났던 그 크리스마스에 나도 가족 여행을 Southwest vacation을 통해 예약을 했었더랬다. 월요일 오후 비행기라 아침에 느즈막히 짐을 싸고 있었는데 큰 애가 오더니 비행편이 취소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Southwest customer에 전화 했더니 대기 시간은 무작정 늘어졌고 간신히 상담원과 연결이 되어 알아 보았더니 2-3일 내에는 대체편이 불가능했고 그 이후 편으로 예약을 바꾸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이 항공편도 정상 운행 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남은 선택은 예약 취소. 문제는 여행지에 가서 하려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것들도 다 연락을 해서 취소를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예약들은 예약시 환불 불가, 혹은 50%만 환불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는데 Southwest 사태로 취소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의외로 순순히 예약 취소와 전액 환불을 받아 주었다.
분명 이런 사태를 겪었음에도 너무 안일했던 걸까. NY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큰 애가 봄 방학 때 집에 온다고 비행편을 알아 볼 때 조금 더 싸다고 Dallas 경유 Austin으로 오는 American Airline 항공편을 예약했더랬다. Dallas에 밤 10시 도착, 11시에 다시 출발 밤 12시에 Austin 도착 예정이었는데 연착되는게 워낙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혹시라도 연착이 되면 거기에 맞추어 공항에 나가려고 구글 flight status를 통해 확인하고 있었는데 저녁 8시쯤 확인해 보니 그 전까지도 정상운행예정이던 Dallas-Austin 편이 결항으로 뜨는 것이었다.
이미 Dallas에 밤 10시 도착이라 그 이후에 당일 연결편은 당연이 없었고 빨라 봐야 다음날 아침인데 그것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모두 이미 만석. 다음 날 오후 3시 혹은 6시나 되어야 좌석이 있었다. 나와 와이프도 당황했지만 제일 당황할 사람은 지금 그 시간 하늘 어디에선가 Dallas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을 큰 아이가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10시 조금 지나 Dallas 공항에 도착한 큰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결항이래!!!!"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큰 아이에게 American Airline counter에 가서 확인하라고 했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와서 줄지어 선 사람들이 탑승구 서너개를 넘어서까지 이어져 있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고 항공사 customer center에 전화해 물어 보니 hotel voucher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날씨 때문에 결항이라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면 뉴스에서 흔히 보던 공항 노숙 밖에 없었고 다음 날 새벽 연결편이라면 혹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마저 불확실 하다면 아이를 공항에 20시간 넘게 홀로 남겨 두어야 할 상황이었다.
아들이라면 그래 그것도 경험이다 한번 해 봐라, 아니면 근처 호텔 찾아가 자고 해결해 봐라라고 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22살 밖에 안된 여자 아이라 그렇게 무작정 해 보라고 시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밤 11시 조금 넘어 Dallas로 운전해 올라 갔고 2시 조금 넘어 공항에서 큰 아이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그날 결항편이 많은지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의자에 여기 저기 잠을 자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가 자고 내려올까 싶기도 했지만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 길로 다시 밤새 운전해 내려와 새벽 6시 40분쯤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
딸아이도 와이프도 다시는 연결편 안 탈 거고 무조건 직항 타겠다고 한다. 직항편이면 지연이거나 아니면 결항 되더라도 뭔가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연결 공항에서 결항이 되면 정말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의 경우 그나마 3시간 거리인 Dallas에서 그랬으니 망정이지 엉뚱하게 Atlanta 혹은 Chicago 같은 다른 허브 공항에서 그랬다면 어떻게 데리러 갈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할 뻔 했다.
어디 조금만 벗어나려면 공항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미국에서 점점 국내선은 지연과 결항이 자꾸만 반복되고 있고 지난 2-3년간 탔던 비행편 거의 모두가 제시간에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비행기 여행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아애 처음부터 오후 비행기부터는 지연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봄방학 끝나고 돌아가는 큰 아이의 NY 도착 시간이 거의 자정인데 일주일 뒤 돌아 가는 큰 아이가 제 시간에 도착해 보기를 바래 본다. 지연되어서 새벽 2-3시에 도착한다면 아이가 NY 시내에서 그 시간에 아파트 까지 가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 날은 아이가 아파트에 들어가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주기 전까지는 잠을 못 잘 것 같다.
이제 대체 무슨 일인건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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