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오게 되어 미국 생활을 시작한 곳은 San Jose/CA, 소위 실리콘벨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엔지니어로 당연히 그리고 내가 속한 업계는 거의 대부분 이 실리콘벨리에 있으니 이 지역으로 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사 오고 나서 첫 주말, 어쩌다 근처 Panda Express에서 점심을 먹고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 앉는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바로 옆 도로 위에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를 바라 보고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그렇게 여유로운 첫 주말을 보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있을 때 주말이라는 것은 양가 부모님을 찾아 뵙거나 경조사에 다녀야 하는 그런 정신 없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아, 이런 여유가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껴 보았던 것 같다. 그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그런데 한적한 시골같던 동네가 점점 복잡해지고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 시작하더니 영주권을 받고 나서 처음 집을 알아 보던 즈음에는 처음으로 그 동네 집값이 $1M를 막 넘어 가기 시작할 때였다. 사람들 만나서 이런 저런 잡담을 할 때면 미친듯이 오르는 집값이 늘 화제의 중심이었고 다들 그 때는 집값이 미쳤다고들 했었다. 60년대 중반에 지어진 1500sf 남짓한 나무 판자집이 $1M 이라니.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 했고 $1M이 넘은지 10년이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2M을 넘어 서기 시작했고 아애 mortgage 자체를 $1M 이상 빌려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르는 건 집값뿐만이 아니라 모든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주변은 점점 복잡해졌으며 예전에 한가하게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 보던 그 Panda Express 앞 길은 늘 자동차들로 막혀 붐비는 그런 곳이 되어갔다.
그런 복잡함, 점점 빡빡해지는 재정적인 상황, 여유보다는 점점 늘어나는 생활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어갔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옮기기도 해야 했고 아이들이 뭔가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어디서 어떻게 +/-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들이 모여 Austin/TX로 옮겨 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최소한 Austin/TX로 옮겨 오고 나서는 모든 것이 다 잘 풀려서 팀 내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고 매니져가 되었으며 다행히도 그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어느 정도 재정적으로도 형편이 나아져서 어떻게 +/-를 해야 할지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은퇴를 준비해야 할지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지난 주말, 아이들 태권도 시합이 San Jose/CA에 열리게 되었다.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시합이었지만 San Jose/CA에서 열린다는 것 때문에 반쯤은 오랜만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하루 휴가를 써 가면서 가족들과 다녀 오게 되었다. 그래도 14년을 살았던 곳, 그리고 떠나온지 5년만에, 그 사이에 몇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pandemic 때문에 계속 미룰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방문이었다.
San Jose 공항에 내리는 순간 화창한 푸른 하늘과 햇살은 Austin의 하늘과 똑같았지만 화씨 75도밖에 되지 않은 날씨에 쌀쌀함을 느꼈고 긴 팔 하나 들고 올 걸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늘 생각나던 중식집에 들려 정말 오랜만에 유산슬을 먹을 수 있었고 아이들과 와이프는 Valley Fair 몰에 내려 주고 나는 후배를 만나러 Mountain View로 올라 갔더랬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을 하고는 다시 아이들과 와이프를 데리러 운전해 내려 가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길이 다 익숙했을텐데 잠깐 길을 헤매다가 이 쪽으로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계속 다가보니 만나게 된 Central Expressway. 이전 회사에 다닐 때 몇년 동안이나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다. 조금 운전해 가면서 길이 점점 익숙해져가는 순간 갑자기 숨이 살짝 가파라오기 시작했다. 그 익숙하던 길을 운전하면서 그 몇년전 그 시절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과 함께 그 때 힘들었던 순간들이 함께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공황장애라고 해야 하는 걸까. 오랜만에 온 반가운 곳에서 그리고 다시 익숙한 곳에 다가 갈수록 좋은 경험이 아니라 그 때 참 힘들었던 순간이 왜 함께 찾아 왔을까. 다행이 그 답답함은 조금 나아졌지만 와이프를 친구들 만나는 곳에 데려다 주고 아이들과 함께 예전에 다니던 애들 학교, 살던 골목을 지나 가며 11년을 살았던 예전 집을 바라 보았을 때 진정되었던 마음이 다시 한번 무거워지고 답답함이 엄습해 왔다. 그 집을 밖에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 안으로 카메라가 이동하듯 그 안으로 들어가 은행 잔고를 살펴 보며 이걸 어디서 어떻게 옮겨 사용해야 할지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걸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융통해야 할지 고민하며 식탁에 앉아 있던 나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는 모습으로.
San Jose는 비교적 행복한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선배/후배도 많았고, 그 집에서 아이들 둘이나 태어났으며 비교적 너무 늦지 않을 때 그 집을 사서 $1M이나 넘는 mortgage를 얻을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왜 갑자기 그런 답답함과 힘들었던 기분이 그렇게 몰려 왔던 것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좋은 추억만 남기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만 남지 않을만큼 그 때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짧은 여정을 마치고 Austin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San Jose 공항으로 가는 길, 와이프에게 이렇게 느꼈던 이상한 기분, 순간적으로 몰려 오던 답답함과 힘들었던 그 때의 느낌으로 훅 쓸려 들어갔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니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처럼 듣다가 내가 여전히 정색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한마디 건네준다.
"그 때 당신이 참 많이 힘들었구나."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잠깐 만났던 친구가 아이들 대학 등록금 걱정하며 loan을 얻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여기 계속 있었다면 그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걸 꾸려 나갔던 와이프도 참 많이 힘들었을텐데 말이다.
14년을 살았다면 그 곳이 제 2의 고향과 같을테고 참 익숙하고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일텐데 그 공간 한복판에서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낯섬에 멀어져가는 San Jose의 풍경을 비행기 안에서 지켜 보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에도 이런 낯섬을 다시 마추치게 될까? 조용해진 캐빈 안에서 살짝 다가 오는 졸음에 눈을 붙여 보며 마음 속으로 잠시 바래 본다. 다음에 다시 왔을 때는 반가움만 가득해 보기를. 그래도 그 곳은 행복한 추억이 더 많은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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